기독 정치인과 공직자는 타종교의 종교예식에 참여해도 괜찮을까. 타종교 종교예식과 타종교인의 장례식에 참여한 기독 정치인과 공직자에게 허용되는 행위는 어디까지로 볼 수 있을까. 마음으로 타종교의 신을 숭배하지 않고, 겉으로도 숭배행위를 하지 않으면서 단지 종교예식에 참여하는 것이라면 괜찮을까.
14일 한국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미래목회포럼(미목)이 주최한 제17-5차 정기포럼에서는 기독 정치인과 공직자의 타종교 종교예식과 타종교인 장례식 참여 문제와 참여 시 견지해야 할 원칙, 태도 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있었다.
미목 대표 오정호 목사(새로남교회 담임)는 인사말에서 “저희 교회가 있는 지역에는 대전행정타운, 대덕연구단지 등이 있어 공무원들이 많다. 여러 행사가 있을 때 기독교인 공무원들은 어떻게 참여해야 할지 늘 제 마음에 하나의 이슈로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선거, 정치의 계절을 앞두고 신앙이 신실한 성도들을 보호하는 것은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의 책임이며, 타종교인들에게 우리의 매뉴얼, 가이드라인을 알려주어 쓸데없는 갈등을 잠재우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며 “기독교회가 신앙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진리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이들을 뒤에서 후원해주는 응원그룹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미목 부대표 이동규 목사를 좌장으로 진행된 포럼에서는 이상원 박사(전 총신대 교수, 현대성윤리문화교육원 원장,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가 포럼 주제인 ‘기독교인 공직자와 타 종교예식 참여’에 대해 발제했다. 이상원 박사는 우선적으로 “기독 정치인과 공직자가 타종교가 신봉하는 신에 대한 경배를 표현하는 종교의식, 예배의식에 참여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 이외에 어떤 다른 신도 경배하는 것을 금지하는 제1계명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마음으로도 하나님 이외의 다른 신을 두어선 안 되며, 신상이나 신위 앞에서 절하거나 합장하는 등 타종교가 요구하는 신 숭배행위도 해선 안 될 행위”로 보았다.
정치적 필요와 공무수행의 목적으로 단순한 의례로서, 형식상 타종교의 신을 숭배하는 행위를 하는 것 역시 단호히 반대했다. 이 박사는 “제1계명은 다른 계명들과 마찬가지로 행위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다른 신을 숭배하는 행위 자체가 제1계명을 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음으로는 타종교의 신 숭배를 하지 않고, 신을 숭배하는 행위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하게 타종교의 예배의식에 참여하기만 하는 것에 대해 그는 “숭배의식에 관전자로 참여하는 것은 제1계명을 범한 행위라고까지 보기 어렵다”며 “그러나 참여를 자제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제안했다.
첫 번째 이유는 “타종교가 예배의식에 초청하는 목적은 진정한 마음과 태도로 동참해 달라는 뜻을 담고 있을 것이며, 기독 정치인과 기독 공직자도 마음으로는 타종교를 거부하면서 특정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참여하는 태도는 기독교인의 처신에 어긋나는 위선적인 태도다. 이런 위선적 태도는 장기적으로는 정치적 신뢰나 공직자로서 신뢰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두 번째 이유로 그는 “기독 정치인이나 기독 공직자들이 대게 평신도 지도자들이거나 신앙의 선배일 가능성이 많고, 고린도전서의 ‘믿음이 강한 자’ 범주에 들 때가 많아 이들의 처신이 교회의 ‘믿음이 약한 자’들을 ‘시험’에 들게 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시험’이란, 믿음이 약한 자들이 ‘어떻게 평신도 지도자가 타종교 숭배의식에 참여할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거나, 또는 ‘기독교인이 타종교 예배의식에 자유롭게 참여해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원 박사는 “그러므로 기독 정치인과 기독 공직자는 타종교 관계자들에게 솔직하고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고, 신 숭배의식에 참여하는 것을 유보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다. 그러면 타종교 관계자들도 이해할 것이며, 이런 태도가 장기적으로 타종교와 관계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타종교인의 장례식에 참여해 조문하는 것에 대해 이 박사는 “어느 종교든지 장례예식은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신을 숭배하고 고인의 사후 행로를 결정하는 종교적 목적과 남은 자들이 고인을 잃은 슬픔으로부터 점차 벗어나 일상의 삶으로 돌아오는 것을 도와주는 현실적인 목적”이라며 “기독교인은 전자의 의미에서 의식에 참여해서는 안 되지만, 후자의 의미에서 고인의 남은 유족들을 위로하는 조문을 하는 것은 마땅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타종교 장례예식의 조문 방법에 대해서는 “고인에 대하여 절하는 방법으로 조문의 뜻을 표현하는 것은 고인을 신으로 숭배한다는 의미가 있을 수 있으므로 삼가야 한다”며 “특히 유교 장례예식의 경우 고인은 귀신으로 승화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고인에 대해 절하는 것은 곧 귀신을 숭배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경계했다. 타종교의 장례예식에서 분향하는 것은 “유교 예식의 경우 고인의 혼을 불러들인다는 종교적 의미도 있으나 시신에서 나는 냄새를 제거한다는 의미도 있다”며 “따라서 분향의 종교적 의미에 부담이 크다면 분향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고, 장례식장에서 꼭 필요한 냄새 제거라는 의미를 담아 분향한다면 허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불교의 장례예식에서 합장을 하는 것에 대해 이 박사는 “부처에게 절을 한다는 의미도 있으나 살아있는 사람들과 서로 인사를 나눈다는 의미에서 불교 특유의 인사법이므로, 사찰 관계자들과 만나 합장으로 서로 인사를 나누는 것은 불교의 문화를 존중해준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허용될 수 있다”고 봤다.
타종교의 장례예식에 참여해 영정 앞에 서서 기도나 묵념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기도나 묵념을 할 때 하나님께서 남은 유족을 위로해 주시고 장례절차를 잘 치르고 하루속히 슬픔을 극복하고 일상의 삶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내용으로 기도한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며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시는 한편, 비기독교인들에게도 일반은총적인 차원에서 은혜를 베푸실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패널로는 김신호 전 교육부 차관(노은성결교회 장로), 이관직 교수(총신대 신학대학원 은퇴교수), 윤성민 교수(강남대 목회영성리더십학과 주임교수)가 참여했다. 김신호 전 차관은 “발제자가 소개한 카이퍼와 도예베르트의 영역주권론이 정의하는 사회는 ‘살아있는 인간들로 구성된 유기체’이고, ‘서로의 개별성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지만, 사회 속에서 국가의 영역과 교회의 영역이 서로 충돌할 때 국가의 정치적 주권이 그리스도의 왕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법에 의거하여 행사되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며 “결국 국가영역이 교회영역에 승복할 수밖에 없다는 기독교 정치 철학적 논리로, 함께 연구하고 토론해야 할 흥미로운 숙제”라고 했다. 이어 김 전 차관은 “저는 크리스천 리더로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최선을 다하며 살자’는 모토를 가지고 살았다”며 “정의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결과에 감사히 승복한다는 의미이며, 그 이상은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이관직 교수는 “저는 합장에 대하여 허용적인 입장을 취한 이 박사의 입장에 대해 견해의 차이가 있다. 합장의 행동에는 불교의 정신이 함축되어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또 “공직자가 공적인 영역에서 자신의 종교에 편향되게 유익을 주는 대신 타 종교들에 불이익을 주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공직의 기독교 신앙에 기초한 개인적 행보에 대해서는 존중해주는 것이 성숙한 사회와 국가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이 교수는 “기독교인 공직자의 타종교 예식 참여 문제는 술잔이 오가는 회식 모임이나 주요 행사를 앞두고 고사 지내는 것, 명절마다 행해지는 불신자들의 제사 의식이 여전히 편만한 한국의 불신 사회와 직장 환경의 기독교인들이 갈등하며 씨름하는 문제와 연결된다”고 말하고 “기독교인으로서 공직에 부름을 받는 자들은 자신을 공직자로 부르시고 사명을 주신 이는 하나님이심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성민 교수는 “국가의 영역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왕권으로부터 독립된 것은 아니며, 특별히 말씀 계시 아래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라고 질문하고 “한국사회에서 집단적으로 어떤 한 종교로 ‘종교 편향’이 생기면, 종교에 따라 이익과 불이익이 생기는 종교차별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헌법 중 국가공무원법 제59조의 2, 지방공무원법 제51조의 2의 ‘종교 중립의 의무’를 명시해 놓고, 문화체육관 광부에서 공직자 종교차별 신고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 교수는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도예베르트의 ‘영역 주권’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유럽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정치사상”이라며 “한국교회가 ‘영역 주권’이라는 하나의 잣대와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 1909~1998)의 선교적 교회론이라는 또 다른 잣대 등으로 이 문제를 포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는 기독교인(벧전 2:15)과 기독교의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가진 기독 정치인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서 공직 사회는 더 많은 신학적, 사회학적, 비교종교학적인 잣대들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어 실행위원 설동주 목사의 마침기도로 모든 일정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