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Einstein)은 평소에 교회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고, 교회에 대하여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히틀러 치하에 독일이 미쳐 돌아갈 무렵, 독일 '고백교회' 지도자들의 기도와 신앙고백 그리고 외로운 항거를 지켜보면서 교회에 대한 평소의 선입견을 완전히 바꾸게 된다. 아서 코크래인(Arthur Cochrane)이라는 사람은 "히틀러 치하의 교회의 고백"이라는 책에서 아인슈타인이 한 잡지에 기고했던 성명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나는 히틀러의 나치 혁명이 한창일 때 자유를 지지하는 수많은 논설을 써 온 신문에 기대를 갖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나치 혁명 후 단 몇 주 만에 언론들조차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만이 히틀러의 계획을 가로막고 나섰다. 그 이전에 나는 교회에 대하여 어떤 형태라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나치와 맞서 분연히 항거하며 외롭게 싸우고 있는 저 교회에 대하여 나는 엄청난 애정과 감탄을 느끼고 있다. 한때 내가 무시하던 교회에 대하여 이제 나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고 서슴없이 고백하는 바이다. 교회는 세상의 소망이다. 나는 교회를 사랑한다."
교회는 역사 가운데 세상의 소망이 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했다.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할 교회가 때로는 주님의 기대와 사람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교회가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교회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성경에 보면 바울과 선교팀의 전도로 세워진 데살로니가 교회가 나온다. 교회는 1년도 되지 않은 신생교회였다. 그런데도 데살로니가 교회는 놀라운 영향력을 발휘했다. 7절에 보면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본이 되었다는 말은 본보기가 되는 공동체가 되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8절에 하나님을 향하는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까지 퍼졌다고 한다. 로마와 에베소까지 퍼진 것이다. 말로 전했던 복음 전파는 마게도냐와 아가야까지 이르렀는데 그들의 믿음의 삶에 관한 소문이 훨씬 더 멀리 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믿는 자의 본이 되어, 각처에까지 믿음의 소문이 나길 바란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믿음으로 소문난 공동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첫째로, 어려움 중에도 말씀을 놓지 않아야 한다.
바울이 복음을 전했을 때 그들은 어떤 상황에 있었을까? 6절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어떤 환난이 있었을까? 복음을 전했을 때 복음에 대한 상당한 저항과 박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 때문에 받는 박해와 핍박을 이겨내지 못했다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고난은 영광으로 향하는 피할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이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고난 속에 있다는 것은 장차 그들이 받을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환난이 오고 고난이 오면, 낙심하고 절망해야 하는데, 그들은 어떻게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을 수 있었을까? 데살로니가후서 1장 6절에 보면 데살로니가 공동체가 환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영적 비밀을 밝히고 있다. 7절에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실" 것이다. 우리가 고난과 환난을 당할 때 견딜 힘이 어디에 있는가? 바로 이 말씀에 있다. 환난을 받는 우리에게 감당 할 수 있는 안식을 주신다고 약속하신다.
비슷한 고백을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서 말한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을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이 고난을 감당할 수 있는 안식을 주시는 줄 믿는가? 그리고 능히 감당하도록 고난보다 더 큰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가?
우리가 그런 하나님을 믿는다면 환난 중에도 성령이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을 수 있다. 고난 뒤에 하나님이 주실 영광이 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성령이 주시는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길 바란다. 말씀 속에서 위로를 받고 말씀 속에서 고난을 이길 힘과 소망을 받는 것이다.
한 형제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경제적으로 아주 힘들었다고 한다. 경제적으로도 힘든데, 병에 걸려서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치료받을 돈이 없었다. 그로 인해 한동안 우울증을 앓았다. 그런 와중에 교회에서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전도 폭발 임상 훈련을 진행하는데, 훈련자로 섬겨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다. 고민이 많이 되었다. 목사님들을 대상으로 훈련자로 섬긴다는 것이 부담도 되었고, 지금 자신 안에 은혜가 없는데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단호하게 거절하고 싶었지만, 목회자의 간곡한 부탁에 훈련자로 섬기면서 복음을 전했다. 목사님들 앞에서 전도 대상자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회복이 되었다. 낙심되고 우울하고 상한 마음이 사라지고 성령이 주시는 기쁨이 회복된 것이다.
이 형제가 회복된 이유가 무엇인가? 복음에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자리에 있다 보니까 회복과 충전이 된 것이다. 수도관은 메마르지 않는다. 왜 그런가? 물을 공급하는 통로로 쓰임 받기 때문에 물이 항상 차고 넘친다. 우리가 교회에서 여러 모양으로 섬길 때 지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일하심의 자리,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삶의 문제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는가? 활력과 기쁨이 회복되기를 원하는가?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로 나아가 보라.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가 임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지금 있는 곳에서 예배와 성도의 교제의 자리로 나아가 보라. 환난 중에도 주시는 위로와 감당할 능력을 경험하게 될 줄 믿는다.
최철준 목사(나주글로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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