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집 대표 김경열 박사(총신대)가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구약에서의 "의"(체데크, 츠다카)와 "공의"(미쉬파트)'란 제목의 글에서 개역성경에서 일관되지 않은 번역으로 혼동을 일으키는 단어인 '의'와 '공의'에 대해 명확한 구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박사는 먼저 "구약성경에서 흔히 "의"와 "공의"로 번역되어왔던 단어들, 체데크(츠다카)와 미쉬파트는 대단히 번역이 어려운 단어들이다"라며 두 단어가 의미론적 중첩을 보여주기 때문이고 문맥에 따라 다소 사회학적, 신학적 의미가 달라지는 이유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로 인해 개역성경의 번역은 중구난방, 대혼란, 뒤죽박죽이다"라며 단적인 예로 이사야 51장 1절에서 8절을 들었다. 해당 본문에서는 츠다카/체데크와 미쉬파트가 번갈아 나오고 있다.
김 박사에 따르면 체데크/츠다카가 "의"가 되었다가 "공의"가 되었다가 하면서 오락가락 일관성이 없고 심지어 미쉬파트 조차 "공의"로 번역되어 츠다카와 용어상의 의미에서 별반 차이를 감지하지 못하게 했다.
김 박사는 "이런 비일관성이 이사야 전체에서 계속되고, 아니 구약 전체에서 마찬가지"라며 "두 개념이 정말 신학적으로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구약학자들은 잘 알고 있는데 이 중대한 이 단어를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번역을 해버리니 안타까울 뿐이다"라고 했다.
이어 "그러면 체데크/츠다카는 무슨 개념인가? 미쉬파트는 무슨 개념인가? 이 둘은 나란히 등장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즉, "의와 공의" 이런 식으로 병렬된다. 따라서 둘은 동의어 반복으로 의미론적으로 중첩되지만 엄연히 다른 영역의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먼저 미쉬파트에 대해서는 ""공의"보다는 법정적인 "법도"의 개념이 분명하다. 동사 샤파트가 "판결하다, 재판하다"인데 그것의 파생명사가 미쉬파트이기 때문이다. 그 단어는 더불어 사법적 정의의 개념인 "공의"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김 박사는 전했다. 또 "따라서 미쉬파트는 "법도, 판결", 혹은 "사법적 바른 판결을 위한 기준, 즉 사법적인 공의"라는 면에서 "공의"일 수 있다"고도 했다.
반면 체데크/츠다카에 대해서는 "이 단어가 수백년 동안 학자들이 논해온 단어인데 아직까지 명확한 의미론적 범주로 확정된 것은 없다"면서도 "이것을 일단 "의"로 규정하고 이야기를 풀어가겠다"고 밝혔다.
김 박사는 "구약의 "의"(츠다카) 개념 연구의 획기적 공헌자는 100년전의 오래전 학자인 크레머(Cremer)다. 그의 연구는 기존의 모든 의에 대한 개념을 전복시켰다"라며 "크레머는 의를 "바른 관계에 있는 상태"로 규정했다. 어떤 것이 제자리에 있는 상태, 반듯한 상태를 뜻한다. 이것은 다른 말로 "관계의 신실함(일관된 충성심)"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의는 따라서 행동의 측면에서 율법을 준수하는 "규범 일치의 상태"다"라며 "하지만 이때 규범(율법)이란 바른 관계를 정립하고 판단하는 기준과 수단에 불과하다. 의는 관계의 신실함을 뜻하므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무를 다하여 유지되는 바른 관계가 바로 "의"(츠다카)이다"라고 덧붙였다.
결국 그는 "구약의 의(아마 신약도) 개념은 관계적 개념으로 "바른 관계"를 뜻하고, 그것은 규범(율법)의 준수를 통해 측정되고 평가된다는 뜻이다"라고 했으며 반면 미쉬파트는 "저는 "법도" 혹은 "(사법적) 공의"로 번역되어야한다고 제안한다. 이것은 명백히 법정에 국한된 정의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김 박사는 두 용어의 혼란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체데크/츠다카 = 의, 정의, 미쉬파트 = 법도, 공의"로 구분해서 이해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해당 용어의 의미 구분에 도움이 될만한 그림을 올리며 "사진의 왼쪽은 "대체로" 미쉬파트라 본다.(공평: 법정에서 부자를 편들지 말며 가난하다해서 봐주지 말고 엄격히 법 집행하라). 오른쪽은 "대체로" 체데크라 생각한다.(평등: 그러나 그 가난한 사람을 위해 경제적으로 넉넉히 돕고 자발적으로 서로 나누고 사회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 우리 사회에서는 이 둘 다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