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 교회처럼 복음으로 세워가는 교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복음을 삶으로 나타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데살로니가 교우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환난 중에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다. 말씀을 받은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을까? 6절에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누구를 말할까? 바울을 비롯한 실라와 디모데를 본받는 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거듭나면 먼저 영적인 리더들이 보인다. 리더들이 전해주는 말씀을 듣고, 그들의 삶을 본받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영적으로 성숙하게 되면 주님을 본받고, 주님을 닮아가고 싶은 소원이 생기기 시작한다.
우리 교회 새벽예배에 많은 성도분들이 오신다. 아침이 바쁜 시간인데, 자매님들이 예배드리고, 집에 가서 아이들 등교 준비와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기도하는 자매님들이 있는 가정이 얼마나 복된지 모르겠다. 감사한 것은 청년들도 참여하고, 무엇보다 형제님들이 나와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감동이 된다. 가정의 제사장이 새벽을 깨워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존경스럽다.
부모님이 예배드리는 모습,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모습은 자녀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 아이들은 아빠 엄마의 신앙을 본받게 된다. 아빠 엄마의 신앙을 본받고, 나중에는 예수님을 본받게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먼저 눈에 보이는 부모와 영적 리더를 본받고, 리더의 영향을 받아 신앙이 자라서 주님을 닮아가게 되는 것이다.
바울과 실라와 디메도도 서로 삶을 나누고 의지하며 복음을 전했다. 세 명의 리더들이 데살로니가 성도들과 함께 삶을 나누면서 환난 중에도 말씀을 받을 수 있도록 격려하고 위로해 주었을 것이다. 신앙은 나 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을 나눌 수 있는 소모임에서, 보고 배우며 상호 의존과 상호 영향을 통해 형성되어지는 것이다.
가정을 생각해 보라. 어린아이는 내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인지를 스스로 알 수 없다. 나의 존재가치와 정체성은 엄마와 아빠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확립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신앙의 정체성도 마찬가지다. 삶을 나눌수 있는 소모임에서 리더와 서로의 삶을 본받고 주를 본받는 모습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데살로니가 교우들이 말씀을 받고 영적 리더들과 주를 본받은 삶을 살게 되자 그들 안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본이 되었다'는 말은 '본보기가 되는 공동체'가 되었다는 말씀이다.
흥미로운 것은 바울이 직접적인 복음 전파와 삶으로 전하는 간접적인 복음 전파에 대해서 인상적인 묘사를 한다. 8절에 보면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들렸다고 말한다. 데살로니가 교우들의 복음 전파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까지 울려 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8절 후반절에 뭐라고 하는가?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직접적인 복음 전파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에 전해졌다. 그러나 성도들의 믿음의 소문이 어디까지 갔는가? 각처에까지 전해진 것이다. 로마와 에베소까지 훨씬 더 멀리까지 전파된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의도적으로 대조해서 비교하고 있다.
몇 년 전에 이동원 목사님과 함께 영국 기독교 사적지를 다녀온 적이 있다. 영국을 영적으로 깨웠던 위대한 인물들이 사역했던 장소를 중심으로 연구 투어가 진행되었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가 기억에 남는다. 존 웨슬리는 회심하고 나서 이런 말을 한다. "온 세계가 나의 교구다". 그는 이 비전을 가지고 영국 전역을 돌며 복음을 전했다. 새벽에 일어나 2시간씩 기도했고, 그가 전도한 사람들에게 소그룹 모임에 들어가서 훈련받게 했다. 그는 하루에 30킬로미터나 말을 타고 다니면서 4~5번의 설교를 감당했다. 50년 이상 순회전도자로 4백만 킬로 이상의 거리를 여행했고, 4만 번 이상의 설교를 했다. 임종하면서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이 세상에서 가장 최상의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이다". 존 웨슬레는 1791년 88세를 일기로 65년간의 사역을 마무리하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한 역사학자는 영국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이런 평가를 했다. 영국이 프랑스와 달리 영국 역사에 피의 혁명이 없었던 이유는, 존 웨슬리나 윌리엄 부스, 죠지뮬러와 같은 복음 전도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돌보고 섬기는 구제 사역이 있었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하고 복음대로 살아가고 순종하는 영적인 지도자들 때문에 영국의 역사는 프랑스처럼 피의 혁명을 경험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영국의 사적지를 투어하고 나서 마지막 날 밤에 조별로 런던을 관광할 기회가 있었다. 런던 시내를 투어하고 밤에 택시를 타고 호텔로 오려고 하는데 한 팀의 택시가 호텔 가까이에서 두 블록을 빙빙 돌더란다. 그래서 요금을 올리려는 수작인가 해서 마음이 안 좋았다. 호텔에 도착해서 40파운드 요금을 내니까 기사가 10파운드를 돌려주더란다. 자기가 좀 헤매었으니까 10파운드를 깍아 준다고 하면서 돈을 내주더란다. 그 순간, 택시 안에서 택시 기사가 우리를 속이고 있다고 의심한 마음이 너무 부끄러웠단다. 그날 밤 그 팀은 영국신사도를 만난 감동으로 은혜로운 밤을 보냈다. 이동원 목사님은 그때의 감동을 담아 시 한 편을 써 내려갔다.
갑자기 떠오르는 바다 건너 한반도의 택시들
언제나 그런 신사도를 우리 땅에서 만날른지
그땅 수많은 교회들의 존재의 의미가 부끄러운 밤
복음은 수용했어도 복음의 문화가 없는 땅이 슬프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신사적이어서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던 것처럼
대한민국 사람들도 영국 못지 않게 신사적이 되는 그 날이 하루 속히 당겨지길 바란다
한국 신사도의 기적이 일어나길 갈구한다
그렇다. 한국에는 복음의 열정은 있을지 모르지만, 복음의 문화는 없다. 영적인 신사도와 복음적인 삶이 너무 부족하다. 한국교회가 다시 복음의 열정도 회복하고, 복음대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기를 소망한다. 우리 모두가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복음을 전파하고 기쁨으로 말씀을 받고 복음을 살아내서 진정한 신사도가 이 땅 가운데 일어나길 바란다.
최철준 목사(나주글로벌교회)
#최철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