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조선의 문화적 상황
예수께서는 네 가지 씨앗이 떨어지는 서로 다른 형태의 토양을 말씀하신 일이 있다. 길가, 돌밭, 가시덤불, 그리고 옥토와 같은 개념이다. 옥토에 떨어진 씨앗만 잘 자라서 삼십 배 혹은 육십 배, 혹은 백 배의 결실을 한다고 하셨다.
씨앗이 떨어진 토양에 따라 그 결실이 달라지는 것처럼 복음은 떨어진 문화적 토양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지게 된다. 아펜젤러가 입국한 조선 말기의 문화적 토양은 어떠했을까? 인간적인 눈으로 보기에 조선의 역사적 상황은 암울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 조선은 감추어진 보화였다. 복음을 받아들이기 위한 모든 여건이 무르익었고 옥토와 같은 땅이었다. 그야말로 ‘조선’(朝鮮)이라는 이름이 말해 주듯, 아침의 찬란한 햇살처럼 곱고 아름다운 보화였던 것이다.
1. 유교적(儒敎的) 토양
조선은 창건 초부터 고려 말에 극심하였던 불교의 폐단을 없애기 위하여 배불숭유(排佛崇儒)1) 정신을 국가의 지도이념으로 삼았다. 초기에 민심을 통일하는 수단으로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의 가르침을 따라 충(忠)과 효(孝)를 근본으로 하는 삼강오륜(三綱五倫)2) 사상을 적극 장려하여 유학(儒學)이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조선의 교육은 성리학(性理學)에 바탕을 두고 있다. 유학(儒學)의 한 계보인 성리학은 중국 송(宋)대에 성립된 것으로 주자학, 송학, 도학, 이학, 정주학 등 여러 명칭으로 불린다. 종전의 유학이 실천적, 윤리적 성격이 강하다면, 이 성리학은 인간의 올바른 행위와 원리와 근거까지 깊이 탐구하는 것이다. 성리학은 다른 유학에 비하여 이론적, 철학적 성격이 강하며 특히 인간의 본성이나 우주의 원리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
성리학의 교육철학의 특징은 인간(人間)과 자연(自然), 우주(宇宙)를 연관하여 논하는 것이다. 성리학에서는 자연 우주의 움직임을 성실(誠實) 그 자체로 인식한 것이다. 천체의 운행, 사계의 순환과 같이 지금까지 한 번도 오류가 없었던 우주의 질서는 바로 인간이 본받아야 할 길이었다. 이처럼 자연의 운행질서와 인간이 하나가 되는 상태가 성리학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인간에게 있어서 자연, 우주처럼 성실함 그 자체는 오직 성인(聖人)에게만 해당하고, 나머지 인간들은 그와 같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는 존재였다. 따라서 대부분의 인간은 성실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삶의 기본자세로 삼아야 하며, 이런 자세가 바로 인간의 길로 여겨진 것이다. 이를 도와주는 것이 곧 교육(敎育)이며, 교육이 없이는 인간의 길도 모색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바로 성리학에서 말하는 교육철학의 핵심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주로 양반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졌다. 오늘날과 같이 초·중·고등교육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 독립된 교육기관으로, 정부 주도의 성균관(成均館), 향교(鄕校)와 같은 관학(官學)과 서원(書院), 서당(書堂)과 같은 사학(私學)이 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하였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성리학의 질서를 사회 전반에 확산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조선 사회에서 유학(儒學)은 대부분의 양반에게는 입신양명(立身揚名)3)의 도구로서 받아들여진 것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미주]
1) 불교(佛敎)를 배척하고 유교(儒敎)를 숭상함.
2) 삼강(三綱) 오륜(五倫)
군위신강(君爲臣綱) : 신하는 임금과 나라를 섬기는 것이 기본이다
부위자강(父爲子綱) : 자식은 부모님을 정성껏 섬겨야 한다.
부위부강(夫爲婦綱) : 남편과 부인은 도리를 지켜야 한다.
부부유별(夫婦有別) :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분별이 있어야 한다.
군신유의(君臣有義) :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리가 있어야 한다.
부자유친(父子有親) : 부모와 자식 간에는 친애가 있어야 한다.
장유유서(長幼有序) : 나이가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 사이에는 차례가 있어야 한다.
붕우유신(朋友有信) : 친구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3) 출세하여 세상에 이름을 떨침.
김낙환 박사(아펜젤러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전 기독교대한감리회 교육국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