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8일 대한해협 해전의 영웅 최영섭 예비역 대령이 향년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마침 잠재적인 야권의 대선 후보로 꼽히는 차남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정치 입문과 맛물려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최영섭 대령은 아들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오랜 군 생활의 업적만으로도 '역사적 인물'로 평가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는 대한해협 해전 이후에도 6·25전쟁동안에 발발한 서해안 봉쇄작전, 여수 철수작전, 인천 상륙작전, 제2인천상륙작전 등 해군의 주요 작전에 참전하며 세운 공로로 금성충무무공훈장을 비롯한 4개의 무공훈장을 받았다.

1928년 4월 2일 강원도 평강군 고삽면에서 독립운동가 최병규(1909-2008)와 전근성의 장남으로 태어난 최영섭은 고향에서 소학교를 졸업한 후 담임 선생을 따라서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학으로 학비를 벌면서 동경시립제2중학교(우에노)를 다니던 중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고 미군의 대 공습이 시작되자 귀국하였다. 고향에 돌아와서 유진보통학교와 평강중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다가, 해방 이후 소련군이 진주하는 것을 보고 38선을 넘어 월남하였다.

1947년 해군사관학교 3기생으로 입교하여 1950년 소위로 임관하면서 백두산함의 갑판사관으로 부임하였다. 백두산함은 6.25전쟁이 발발하던 6월 25일 오전 해군통제부 사령관으로부터 동해로 긴급 출동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구월산정(YMS-512)과 고성정(YMS-518)을 지휘하고 묵호 근해로 출동하여 적 함선의 상륙을 저지, 격멸하라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 그날 오후 8시 경에 대한해협 부근에서 남하하는 미식별 선박을 발견했다. 함선에 국기와 선수도 표시하지 않은 채 선박의 갑판 뒤쪽에는 중기관총 2정을 거치하고 수병복을 착용한 수많은 무장 병력이 승선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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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함 함장 최용남 중령은 “북한군의 1,000톤급 수송함정으로 600여명의 북한군이 승선한 채 남하 중에 있으며 상륙을 기도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해군 본부에 타전했다. 해군 본부가 이 내용을 경무대에 있는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하자,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적의 함정으로 판단되면 쏘라”는 지시가 하달되었다. 이에 백두산함이 위협 사격을 가하자, 적선은 대응사격을 가해왔다. 이때부터 쌍방 간에 치열한 포격전이 전개되었고, 26일 오전 1시 38분경 적선은 포를 맞고 침몰하였다.

백두산함이 대한해협 해전에서 거둔 승리는 거의 무방비 상태이던 부산항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게 된 전략적인 사건이었다. 이날의 승리로 후방을 교란하기 위한 게릴라 부대를 사전에 격퇴한 덕에 연합군 최후의 보루로서 지원 병력과 물자 조달의 핵심 관문이던 부산항을 지킬 수 있었다. 노먼 존슨은『한국전쟁」(1991)에서 "701함의 대한해협 해전은 6·25전쟁의 분수령이 되었다. 만약 북한군 무장선박이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부산에 상륙했더라면 전쟁의 양상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라고 평가하였다.

이렇게 동해안의 해전에서 예상치 못한 실패에 직면한 북한 해군은 더 이상 그들의 작전 방침인 무장 게릴라 병력의 상륙을 지원하지 못하고 서해안에 산재한 도서지역 침투로 작전계획을 선회했다. 한편 최영섭은 6.25전쟁동안 서해안 봉쇄작전과 여수 철수작전, 서해 도서 탈환작전과 인천상륙작전, 동해안 진격작전과 성진 철수작전, 제2차 인천상륙작전 등 거의 모든 해전에 참전하여 전공을 세웠다.

1961년 5.16이 성공한 후 최영섭은 해군을 대표해서 국가재건최고회의 총무 수석비서관으로 차출되었다. 이듬 해 10월 11일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포항에서 해병대 상륙훈련을 참관한 직후 2000t급 병력 수송 호위함(APD81함)을 타고 울릉도를 방문하였다. 당시 도동항은 번듯한 접안시설조차 없는 어촌 마을이어서 풍랑이 거세지자 보트 접안에 어려움을 겪었고, 이 과정에서 박정희 의장이 보트에서 떨어져 바다물에 빠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때 기골이 장대한 최영섭 대령이 얼른 들어가서 박정희 의장을 업고 뭍으로 나왔다.

그후 민정 이양 과정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같이 일하자고 권하자 "각하, 저는 한강을 건너 온 사람이 아닙니다"라는 말로 거절하고 해군으로 복귀하였다. 권력을 좇지 않고 천직인 군인의 길로 돌아간 것이다. 지난 4월 해군에서는 이와 같은 그의 공적을 기려 최영섭 대령의 일대기를 담은 <지략·용기·덕망을 겸비한 최영섭 대령>이라는 제목의 평전을 출간하였으며, 5월에는 최영섭의 자서전 <바다를 품은 백두산>이 연달아 출간되었다.

최영섭 대령의 가문은 병역 명문가로 유명하다. 그는 자서전 <바다를 품은 백두산>에서 이렇게 밝혔다. "필자의 3형제는 모두 직업군인으로 복무했다. 둘째는 해병 대령, 셋째는 해군 부사관으로 전역했다. 아들 4형제 중에 장남 재신은 해군 대위, 차남 재형은 육군 법무관 중위, 3남은 공군 군의관 대위, 4남은 육군 소위로 복무를 마쳤다. 형제, 아들, 손자의 군 출신 성분이 육·해·공·해병대 등 모든 군종을 망라하고 있다. 필자가 통합군 사령관인 셈이다."

이어서 "참모장인 맏며느리를 정점으로 일사불란하게 위계질서를 지키고 있다. … 설날 가족 모임은 이렇게 진행한다. ①국기 게양 ②국기에 대한 경례 ③국기에 대한 맹세 ④애국가 제창(4절까지) ⑤묵념 ⑥예배 ⑦강화(講話) 순이다. 강화는 통합군 사령관이 한다."는 집안의 독특한 분위기도 소개하였다.

이토록 평생을 투철한 애국심과 독실한 기독교 신앙으로 살다간 고 최영섭 대령이 마지막으로 남긴 육필 유언은 세 가지였다. "(재영아) 대한민국을 밝혀라!, (가족들은) 재신이 지도 하에 인화(人和3로 뭉쳐라. 祈幸福(행복을 기원한다)"이라고 썼다. 그리고 날짜와 유언자 ‘최영섭’을 쓰고 맨 마지막 줄에 ‘대한민국 해군 만세’라고 적고 유서를 마쳤다. 대선 출마 여부를 놓고 고민하는 차남 최재형 전 감사원장에게 전하는 격려의 메시지와 장남 재신을 비롯한 가족들에게 전하는 당부와 해군에 대한 염원이 담긴 내용이었다.

한편 대한민국 해군의 최초 전함인 백두산함과 해군사상 최초로 승리를 쟁취한 대한해협 해전의 배후에는 '대한민국 해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손원일 제독이 존재한다. 손원일(1909-1980)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장(현 국회의장)을 지낸 손정도(1882-1931) 목사의 장남으로 평안남도 강서에서 출생하였다. 중국으로 건너간 아버지를 좇아서 길림 문관중학교와 남경 중앙대학 항해과를 졸업하였다. 그 후 중국 해운공사에서 근무하던 중 1927년 중국 해군의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3년 간 독일에서 수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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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에 일시 귀국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서 옥고를 치루고, 이듬 해 출감하자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서 해운사업에 종사하다가 1945년 광복이 되자 귀국하였다. 귀국 후에는 조국의 바다를 지키기 위한 해군을 창설할 뜻을 품고 '해사대 임시 사무소'를 설치하였다. 미 군정이 실시되자 당국과의 협의 끝에 1945년 11월 해안경비를 담당할 해방병단을 창설하고 초대 단장에 취임하였는데, 이것이 한국 해군의 모체가 되었다.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당시 해군 병력은 3000여 명으로 늘어났고 보유 함정수는 105척(총 1만3000t)이었다. 이렇게 해군은 창설되었으나 무장을 갖춘 전투용 함정은 단 한 척도 없었다. 미군이 인도한 노후한 소형 보병 상륙용 함정, 일본군이 남기고 간 소 해정, 민간용 소형 화물선을 전용한 경비정 등이었는데, 대부분 장비가 노후해서 작전 가능한 배는 절반도 되지 않았다. 해군은 여순반란사건을 진압하면서 전투력을 갖기 위해서는 포를 장착한 함정의 필요성을 통감했다.

이에 손원일은 미국과의 협상으로 37척의 비전투 함정을 인수했지만, 전투함 지원을 거절 당하자 함정 구매를 위한 모금운동을 전개했다. 1949년 6월 1일 '함정건조 각출위원회'를 결성하고 해군 장교는 월급의 10%, 병조장은 7%, 하사관과 수병은 5%씩을 각출하고, 해군 가족을 중심으로 조직된 '해군 부인회'에서도 바자회를 통해 얻은 수익금 전액을 기부했다. 모금운동은 일반 국민에게까지 확산되어 4개월 만에 1만5천달러를 마련했다. 소식을 접한 정부도 4만5천달러를 출연하여 6만달러가 확보되었다.

생전의 최영섭 대령은 그때 일을 이렇게 증언했다. "당시 장교 월급이 쌀 한 말 값도 안 되었어요. 대포 달린 군함을 사자며 월급의 10%를 공제했을 때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군인이 없었어요. 해군 장병들이 성금을 더 내기 위해 고철을 수집하여 고물상에 팔기도 했지요. 해군 장교와 부사관 부인들이 바느질과 빨래를 해주고 양복을 고쳐 주어서 번 돈도 보탰지요. 아마 이렇게 모은 돈으로 배를 구입한 예는 세계적으로 없을 겁니다." - (이근미, 「백두산함의 생애」, <월간조선> 2003.8)

이에 손원일은 15명으로 구성된 함정 구매단을 이끌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1949년 10월7일, 롱아일랜드주 킹스포인트 해양대학의 실습용 함정인 화이트헤드(Whitehead) 호를 1만8천달러에 구매했다. 권주혁이 쓴 《바다여 그 말하라》에는 구체적인 사실이 기록되었다. 이 배는 정원 73명, 만재 배수량 450t, 길이 52.9m, 폭 7.06m, 속력은 최고 18노트인데, 이미 오래 전에 뉴저지주 호보켄 부둣가에 있는 하버보트빌딩회사라는 조선소로 옮겨져 있었다. 배는 몹시 낡아 녹이 많이 슬었을 뿐만 아니라 기관을 가동한 지도 2, 3년이 넘은 고물선이었다.

인수 요원들은 중위에서 중령까지 모두 장교였다. 인수 요원들은 배에서 숙식하며 미국인 작업반장의 지시에 따라 낮에는 페인트 칠, 기관 수리 등의 잡일을 담당하였다. 함정 수리가 끝나자 이들은 배의 앞부분에 줄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서 흰색 페인트로 크게 「701」이라고 썼다. 이 시간 갑판부 이성호 중령(5대 해군 참모총장)과 김동배 소령은 킹스포인트에 있는 해양대학교에서 3인치포 운용 훈련을 받았다. 12월 24일 701호는 호보켄 부두에 정박된 밧줄을 풀고 맨해튼 섬의 남쪽을 돌아 롱아일랜드 서쪽 해안에 있는 미국 해안경비대 제8부두에 정박하였다.

12월 26일 오전 10시, 한국 해군의 최초 전투함정인 초계함 백두산함의 명명식이 열렸다. 한국 정부를 대표한 장면 주미 대사와 손원일 제독을 비롯하여 교민, 미군 승조원 등 30여 명이 참석하였다. 마스트에 태극기를 게양한 뒤 한 목소리로 애국가를 부르던 일행은 모두 목이 메었다. 명명식이 끝나자 백두산함은 태극기를 펄럭이며 함장 박옥규 중령(제2대 해군참모총장)의 지휘에 따라 뉴욕 항구를 빠져 나왔다. 항해 끝에 1950년 1월 24일 하와이의 호놀룰루 항에 도착하였다.

백두산함은 이틀 후 진주만의 해군 수리창으로 이동하여 앞 갑판에 3인치 대포 한 문을 장착하려고 대기하였는데, 3월 중순이 되어서야 장착되었다. 3인치 포를 앞갑판에 설치한 후 오하우 섬 앞바다에 나가 몇 발을 쏘아 보며 포의 성능을 시험하였다. 3월 20일 하와이를 출발한 백두산함은 괌의 아프라 항구에 들러 美 해군으로부터 3인치 포탄 100발과 기름을 구입한 뒤 한국으로 향했다.

이렇듯이 백두산함은 국민의 정성과 염원이 담긴 '국민 함정'이었다. 정비를 마친 함정은 항해를 시작하였고 1950년 4월 10일 진해항에 입항하자, 대한민국 해군의 첫 번째 전투함대를 지켜 본 국민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해군 가족과 국민의 성금으로 마련한 백두산함이 6.25전쟁 해전사에서 첫 승전보를 전해 온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기적 같은 드라마였다. 대한민국 해군의 산 증인이던 최영섭 대령이 후일 "하나님이 지키신 대한민국"이라고 증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편 손원일은 백두산함을 사고 남은 돈으로 3척의 함정을 더 사서 PC-702(금강산함), PC-703(삼각산함), PC-704(지리산함)이라고 명명하고, 정비를 위해 6월 25일까지도 하와이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에 이승만은 호놀룰루 총영사인 김용식을 통해, 손원일에게 “군함과 함께 해로로 귀국하라”는 훈령을 내렸다. 그렇게 해서 추가로 구입한 3척의 함정도 7월 16일 진해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6.25전쟁에서 손원일 제독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맥아더 장군이 이끈 인천상륙작전은 영흥도와 덕적도를 탈환해야 구사할 수 있는 전략이었다. 손원일의 지휘 아래 한국 해군은 1950년 8월 두 섬을 탈환하는데 성공했고, 손원일은 인천상륙작전부터 9·28 서울 수복작전까지 전장에서 함정과 해병대를 진두지휘했다. 서울 수복 작전 후 “국군과 유엔군은 수도 서울을 탈환했다”는 포고문을 발표한 것도 그였다.

1953년 6월 해군 중장으로 예편한 뒤, 그 해 8월 제5대 국방부장관으로 취임하였다. 해군에서는 장보고·이순신과 함께 추앙받는 '3대 제독의 1인'으로 꼽힌다. 대한민국 해군은 그의 공적을 기려 2006년에 도입한 214급 잠수함의 이름을 손원일급으로 명명하고, 경남 창원시에 위치한 해군 진해기지 사령부 영내에 손원일 제독의 동상을 세웠다.

1980년 운명한 손원일 제독은 “사랑하는 내 조국을 위해 나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한다. 그들은 모두 바르고 굳건한 신념으로 해군을 만들어 보려고 힘썼고, 오늘의 해군으로 발전하는데 밑거름이 됐다고 확신한다. … 나라 없는 서러움보다 더한 것은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다시는 내 조국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잘 지켜주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유언을 남겼다.

김형석 목사(전 총신대 역사학 교수,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사)대한민국역사문화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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