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디아스포라와 종교·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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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은 누구일까?

기독교회와 상이한 유대 회당(베를린) ©조덕영 박사 제공

예수는 유대인이었을까? 그렇다. 유대인이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순수한 의미의 유대인은 아니었다. 유대인의 상징이 된 인물인 유다의 장자 엘의 아내가 되었던 다말은 가나안 여인(창 38:6)이었다. 남편이 사망한 후 다말은 시부(媤父) 유다와 동침하여 쌍둥이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다. 전후 사정은 복잡하나 일종의 민망한 근친상간이었다. 이 베레스(룻 4:12)가 다윗과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다. 다윗의 증조모 룻(룻 1:2-5)이 이방 모압 여인이요 그의 남편이 된 보아스의 모친으로 기록된 여리고 성의 기생(창기) 라합도 다윗과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으니 우리식으로 말하면 다윗과 예수도 성골의 유대인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유교에 물든 우리 식 족보 관념으로 따지면 민망하기 이를 데 없는 족보다.

유다의 후손만 유대인도 아니었다. 유다의 증조부 아브라함은 히브리인으로 지칭된 최초의 인물이었으니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아브라함 자신이 우상을 섬기던 도시 갈대아 우르 출신이요 아브라함에게는 자녀 이삭 말고도 이삭의 배다른 형 이스마엘과 동생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즉 유대인을 범 히브리인으로 확장하면 그 범위는 생각보다 크다.

창조주 하나님은 왜 계시의 말씀인 성경 속에 어쩌면 민망할 수도 있는 아브라함과 유다와 그의 후손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의 적나라한 계보를 숨김없이 밝히셨을까? 보편적 인간 족보는 조상의 부끄러운 사실들은 변명하거나 되도록 숨기려 든다. 그 적나라한 기록 자체가 성경의 독특성과 계시적 권위를 상징한다. 또한 하나님은 물리적 태생과 표면적 유대인이 신앙의 관점에서는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님을 보여주신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메시지에 그 어느 민족보다 완고하게 귀를 닫은 민족이 유대인이라는 아이러니도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렇게 유대인이 율법에 대한 준수를 넘어 율법에 대한 사랑의 민족이라면 기독교의 예수는 사랑의 율법으로 나아간 십자가를 진 하나님의 독생자였다.

다시 주목 받는 유대인, 탈레반도 유대인?

교회에 십자가가 있다면 회당에는 다윗의 별이 있다(이탈리아 베네치아 유대박물관 외경) ©조덕영 박사 제공

그런데 지구촌은 다시 유대인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바로 탈레반에 의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함락은 다시금 유대민족을 소환하였다. 탈레반이 실은 유대인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때마침 인도와 미얀마 접경 지역에 디아스포라의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지파가 존재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탈레반(Taliban)은 1994년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에서 결성된 이슬람 수니파 무장 정치조직이다. 구소련이 후퇴하고 탈레반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했으나 뉴욕 쌍둥이 무역센터 건물 테러 사건 후 미국이 개입하면서 다시 게릴라전을 펼치다가 최근 미군 철수와 함께 아프가니스탄을 실질적으로 재 장악하였다. 탈레반은 파슈툰어로 '학생들'이라는 뜻이다.

조선일보가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사실은 유대인의 후손이라는 이스라엘 주류 학자들의 주장”이 나왔다는 것이다. “예루살렘 포스트는 지난 9일(현지 시각) 이스라엘 히브리대 인류학자와 유전학자의 분석 결과 탈레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프가니스탄 최대 부족인 파슈툰 족이 알고 보면 이스라엘로부터 뻗어나간 일족이라는 증거가 나왔다” 했다.

파슈툰 족의 관습 중 태어난 지 8일 지나 할례를 하는 것, 안식 계율을 지키는 것, 고기와 우유를 같이 요리하지 않는 것, 형사(兄死)취수제를 택하는 것 등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관습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작은 나라가 아니다. 남한의 7배에 달하는 면적과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수천만 인구를 지닌 국가다. 수백 개 씨족 중 최대 부족 파슈툰 족의 인구만 해도 수 천 만명에 달한다. 이들 파슈튠 족은 파키스탄과 아프간, 인도 등지에 살고 있다. 파슈튠 족이 이스라엘의 후손이라는 연구는 1800년대부터 여럿 있었다. 파슈툰 족의 고대 부족 법전과 유대인들의 전통이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샬바 웨일 히브리대 인류학 박사는 “둘 사이의 연결성에 대해 확실한 증거가 있다”고 했다. 탈레반이 이슬람 이전의 전통 등을 지우려 노력했지만 여전히 그 흔적은 남아있다는 것이다.

보도는 또한 “예루살렘 포스트가 이런 내용의 보도를 한 데 대해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셈법이 숨어있다”고 말하고 있다. “아프간을 점령하고 정권을 이양 받은 탈레반 지도부는 지난 7일 이스라엘만 ‘빼고’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다고 입장”을 밝혔기에 이스라엘 측에서 탈레반에 화해의 손길을 내민 것 아니냐는 추측이다. 만일 탈레반이 이스라엘의 주적 이란과 손을 잡을 경우 관계가 더 복잡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니파 이슬람인 탈레반이 시아파 수장 국가 이란과 손을 잡는 일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보도처럼 예루살렘 포스트 기사 마지막에 “역사적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유대인과 파슈툰 족 사이의 위화감을 낮추고 앞으로 더 강한 관계를 위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율법 속 시련을 딛고 일반 은총을 누리는 디아스포라 유대인, 그리고 복음

아프가니스탄이나 인도와 미얀마 국경 지대의 이스라엘 지파 보도도 모두 역사 속 이스라엘 민족의 이산(離散, diaspora)과 관련되어 있다. 이 질긴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가 유대교를 견지하면서 특이한 공동체를 유지했다고 기독교의 눈으로 무조건 백안시할 필요는 없다. 사도 바울이 바로 다소의 디아스포라 유대인 출신이었고 초대 기독교회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그 회당을 접촉점 삼아 복음을 전파하였다. 히브리 구약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여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연결 고리를 제공한 <칠십인역> 성경도 알렉산드리아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관련된다.

사도행전을 보더라도 이미 2천 년 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단단한 지역 공동체들을 이루고 있었다. 율법과 공동체적 금기 사항 때문에 자신들이 진출할 수 없는 영역을 벗어나 유대인들은 오늘날까지 진출 가능한 경제, 사회, 문화, 예술, 과학 등을 중심으로 크게 두각을 나타냈다. 모든 인류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컴퓨터의 USB도 바로 이스라엘 장교 출신 도브 모란(Dov Moran) 작품이요 역대 노벨상 수상자 중 대략 3분의 1이 유대계다. 노벨평화상을 제외해도 총 150명이 훨씬 넘는다(생리 의학 48명, 물리학 44명, 화학상 28명, 경제학상 20명, 문학상 12명, 2007년 통계: 명확히 확인된 숫자만 이 정도이니 이보다 더 늘어날 수 있음).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유대인보다 훨씬 많은 인구를 보유했음에도 여태껏 노벨 과학상, 문학상 한명 배출하지 못한 우리 민족을 부끄럽게 한다. 비록 디아스포라 시련 속에서도 어느 민족에게도 없는 창조주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 구약 율례를 준수한 일반 은총의 결과였다. 이제 그 영향력은 세계 정치에까지 만만찮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앗수르와 바벨론 정복 시대로부터 시작하여 헬라와 로마 시대 그리고 이후에도 지속된 이들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는 당연히 아프가니스탄에도 이르렀다. 8세기, 무슬림 치하 물탄(Multan, 아프가니스탄 동부 지금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카불, 칸다하르 그리고 발흐(Balkh)와 사마르칸트(지금의 우즈베키스탄 도시)에는 유대인 공동체가 진출해 있었다(A Historical Atlas of the Jewish People, edit. Eli Barnavi, 81). 특히 발흐는 예로부터 이원론적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배화敎)의 중심지였으며, 그 개조(開祖) 조로아스터(BC 6세기경)는 발흐 성(城) 내에서 영면하였다. 이곳은 알렉산더 대왕(재위 주전 336∼주전 323)의 동정(東征) 이후 그리스 식민 도시국가가 되며 박트리아라 불렀다. 한(漢)나라의 장건(張騫)은 이 지방을 대하(大夏)라 했고, 7세기 이곳을 방문한 당(唐)의 현장(玄奘)은 그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서 이 나라를 박갈국(縛喝國)이라 부르며 승려가 무려 3,000명이 넘는 불교 융성지(隆盛地)라 기록하고 있다.

신라의 승려 혜초(704? 700?~780)는 지금의 파키스탄 페샤와르와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을 포함한 인도 펀잡 지방에 위치한 건타라(建駝羅, Gandhara)국까지 이르렀으니 고구려 출신 당나라 장수 고선지(?~755)와 함께 파미르고원과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지금의 아프가니스탄까지 밟은 역사에 기록된 한반도 출신의 유이한 두 인물이었다. 사실 한반도뿐 아니라 8세기 무렵 동양인으로 아시아 대륙 중심부를 누빈 이런 인물들은 없었다. 이들 한반도 출신 두 인물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 유교, 불교 등 인류의 대표 종교 모두를 접한 인물들이었음이 분명하다.

모택동, 신라, 가야, 일본까지 모두 유대계?

유대인의 디아스포라는 중국 당나라까지 이르렀고 마오쩌둥(모택동)도 유대계라는 주장도 여기에 기인한다. 한반도의 신라와 가야도 유대인들이 세운 나라라는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이니 유대인의 디아스포라가 얼마나 온 세상에 뿌리내려 오는 지 알 수 있다. 심지어 일부 일본인들 사이에는 자신들이 유대계요 예수·공자 무덤도 열도에 있다는 황당한 주장이 난무하니, 인간의 편향성은 인간이 보기보다 어리석은 측면이 많음을 보여준다.

종족 분별은 언어와 문화와 종교적 특성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잔인한 순장(殉葬) 제도가 일상화 되었던 신라와 가야를 유대계열이나 기독교 계열 국가나 종족으로 보는 것은 예수나 공자가 열도에 왔었다는 일부 일본인들 못지않은 상상력의 비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 율례에 그런 법은 전혀 없지 않은가. 다만 개인적으로 한글과 일본의 히라가나와 가다가나가 히브리 문자를 채용했다는 주장(고 조철수 박사 등)은 학술적으로 상고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여 진다. 그만큼 한글과 일본문자는 히브리 알파벳을 놀랍게 닮았다.

기독교와 유대교

다윗의 별이 보이는 유대 코셔(합당한) 카페(베를린) ©E. S. Cho

기독교는 분명 육적 혈통의 종교가 아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유대교에 어떤 비장한 부채 심리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다만 유대인들이 역사의 끈질긴 시련 속에서도 구약 율례를 따라 일반 은총의 탁월함을 구가한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히브리 민족 아브라함을 친구 삼아 그의 손을 잡고 인류 구원의 여정을 시작하셨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를 그 깊은 것까지 통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역사와 신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놀랍고 즐겁고 무궁무진하며 기이하기까지 하다.

조덕영 박사

일반은총과 구약 율법에 천착하는 유대인들이 이제는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가 곧 메시아임을 깨닫고 복음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한다. 그들이 그리 기다리는 약속과 성취의 핵심은 모두 "살아있는 토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2:19-21), "안식일의 주인"(막 2:27-28)이신 예수에게서 보이지 않는가. 그래도 유대인과 유대교를 “가족 유사성”과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그들도 복음의 빛 아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기독교회와 유대 회당(Synagogue)만큼 양측은 분명 상이하다.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Th.D., 전 김천대·안양대·평택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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