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량 칼럼] 설교는 선포인가? 설득인가?

교회일반
편집부 기자
워싱턴영광장로교회 정인량 목사

십수년전 암스텔담 화란 왕궁옆 아브라함 카이퍼 기념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교회는 예배당으로서 기능을 잃은지 오래되었고 교회당 일부는 기념품가게가 자리잡고 있어 개혁주의 교회의 요람으로서 명성이 퇴색되어 관광명소로 전락되어 있었다.

그러나 예배당안으로 들어선 나는 외마디 탄성을 지르지 않을수 없었다. 설교단이 나선형으로된 계단끝 천정높이로 치솟아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카이퍼는 천상에서 울려퍼지는 듯한 하나님의 말씀을 구원받은 죄인들과 구원받아야 할 죄인들에게 뇌성벽력과 같이 선포하였을 것이다. 이런류의 강단은 다시 보지 못하였다.

요즘은 어떻게 바뀌였는지 알수 없지만 한국에서는 남서울교회나, 사랑의교회 정도가 높다란 강단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밖의 교회들은 강단이 점점 낮아져서 강단과 회중의 차이가 없어진지 오래되었고, 강대상은 거추장스러운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있다. 이같은 강단(Platform)의 변화는 곧 설교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변증하고 험증하는 설득자로서 탈바꿈하였음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이다.

그러면 과연 오늘날의 설교학과 설교가 총애하는 설득이 설교의 본연인가? 하는 것이다. 어느 설교학자가 "설교는 궁극적으로 선포이지만 그 과정은 설득이어야 하며 일방적인 선포방식으로부터 설득방식으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때 입니다."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궤변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설득의 과정을 거쳐야만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설교가 회중을 지나치게 의식하여 설득에 나서게 될때 설교는 한낱 기술이 되고 방법이 된다. 따라서 회중을 두려워하게 되고, 때로는 아부하게 되고, 말씀외적 요소들을 가미시켜 인본주의적 강연이나 강의로 전락될 위험이 다분하게 된다.

설교가 선포인 것은 설교의 행위가 사람으로부터 출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는 일인 까닭이다. 동시에 설교자는 사람으로 부터 위임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부터 위임받은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선포하는 일에 중심을 두어야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설득의 방법으로만 전하여야 한다면 성령의 역사를 기대할 것이 없을 것이다.

아브라함 카이퍼를 위시한 전 시대의 설교자들이 말씀의 선포에 주력하였던 것은 설교자가 그 본분을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오늘 설득의 달인으로 설교잘한다는 사람들은 많아도 엄위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여 범죄한 인생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는 설교자들은 좀체로 찾아보기 어렵다. 변증하고 설득하는 일은 교육을 통하여서지 설교를 통해서 할 일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 사람들이 때로 지옥을 맛보고 때로 천국을 맛보아 그 삶 전체가 송두리째 바뀌는 일을 사모해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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