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 정신분석은 우리의 현재 최대 관심사인 성혁명-프리섹스 운동의 핑계의 하나가 되어 왔다. 때문에 가능한 사실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우선 말하고 싶은 것은 프로이트 정통 정신분석 또는 전통적 정신분석은 성해방을 옹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신분석이 성욕(리비도)의 “억압”으로 노이로제가 생긴다고 해석한 것이, 성해방론자들이 성해방을 정당화하는 핑계가 되고 있다.
정신분석은 인간행동의 설명에 있어 다음 네 가지 “가설”에 기초한다. 가설이라고 하지만, 정신분석이 실제 치료효과가 있기 때문에 매우 유용하다. ① 마음의 구조에 있어, 무의식이 의식보다 인간행동을 주로 지배한다. ② 마음은 자아, 초자아, 이드로 구성된다. 이드는 사람으로 하여금 본능적 욕구를 만족시키기를 요구하는데, 만족시키면 쾌락이 오고, 아니면 불쾌가 온다. 인간은 고통(불쾌)을 피하고 쾌락을 목표로 나아가려 하는데, 이를 쾌락원칙(pleasure principle)이라 한다. 초자아는 “아버지-사회”가 훈육하는바 윤리로서, 양심과 이상(ideal)을 따르라고 자아를 압박한다. 문제는 자아이다. 자아는 이드(본능)와 초자아(윤리)의 요구에 직면하여 현실의 상황에 비추어, 판단하고 행동을 기획 수행하고, 평가하고 피드백을 받아 교정하는 기능을 한다. 이렇게 현실(사회)에 적응(adaptation)하여야 하는 요청을 현실원칙(reality principle)이라 한다, ③ 인격은 발달 내지 “성숙”한다는 것이다. 성숙이란, 삶에서 피치 못할 스트레스(트라우마)를 자아가 경험과 학습을 통해 마스터해 나가는 과정이다. 소아기에는 대개 부모의 훈육으로 성숙해 나가고, 커서는 학교교육과 사회에서의 경험을 통해 성숙해 간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소아기적 정신 상태는 무의식화 된다. ④ 자아는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효과(쾌락)를 보는 방향으로 행동을 결정한다. 예를 들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부인(denial)이라는 메카니즘이 있는데, 이 방법은 일시적으로 평안을 누리게 해주지만, 기억상실증이라는 불행을 초래한다. 그런 의미에서 바람직한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방어 메카니즘은 승화, 중용, 유머 등이다. 프로이트는 인류 문명의 발전은, 한 개인의 인격의 발달처럼, 원시적이고 소아기적인 본능의 억압에 있으며, 억압에 따르는 필연적인 불만은 어찌되었던 견디어져 왔다고 하였다. 그러나 성혁명가들은 억압의 “해방”에만 관심이 있지, 그 이후의 무정부상태 같은 후유증은 고려하지 않는다.
이제 짐작되듯이, 정신분석은“쾌락원칙”(pleasure principle) 보다, “현실원칙”(reality principle)에 따라 살라고 요청한다. 즉 무의식에 억압된 “원시적인” 리비도(성욕)에 대해 통찰하고(깨닫고), 자신과 사회를 위해 성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하여 창조하고 생산할 것을 요청한다. 즉 여기서 “현실”이 과연 무엇인가 규정하는 것은 매우 지난한 일이다. 정신분석을 시행하는 의사가 말하는 현실은, 환자가 살고 있는 현실 사회의 규범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혁명가들은 이 규범을 “권위주의적” 억압이라고 본다.
“쾌락원칙”에 따라 성혁명을 하자고 주장한 정신분석가는 공산주의자(마시스트) 빌헬름 라이히 한 사람 뿐이다. 그는 프로이트 제자로서 1920년대부터 막시스트 성해방 운동을 하였다. (본 에세이 시리즈 제2편 참조) 그의 주장이 하도 문제가 되어 그는 1930년대 국제 정신분석학회에서 추방되었다. 그즈음 그는 독일 공산당에서도 쫓겨났다. 그는 나치스에게도 쫓겨 결국 미국으로 갔다. 그는 미국에서 “자유를 누리면서” 온갖 성해방 활동을 하였다. 예를 들면 킨제이처럼 소아의 성욕을 실험하는 아동학대를 자행했다. 그는 결국 사기죄로 감옥에 갇혀 있던 중에 죽었다. 이후, 1950년대에 정신분석을 막시즘에 통합하여 “성해방”을 주장한 학자로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프로이트-막시즘 철학자들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마르쿠제와 아도르노 등이다. 마르쿠제는 68학생혁명 당시 멘토로서 학생들에게 혁명사상을 고취하였다.
정신분석은 인간행동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는 학문의 하나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성혁명가들은 정신분석을 자기 좋도록 곡해하였다. 그들은 쾌락을 “삶의 본질”이라고 우기면서 쾌락을 억제하지 말고 쾌락원칙을 따르자고 주장한다. 필자가 보기에 그들은 정신분석을, 이드에 사로잡힌 자신들의 정신 상태를 정당화 내지 합리화하는데 이용하는 것 같다. 죄인인 인간들은 추구하는 바가 서로 비슷하다. 그러나 우리는 쾌락원칙에 따라 살면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 역사적 또는 개인사적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현실(reality)을 사실, 펙트, 내지 진실로 본다면,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진실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다. 성해방이나 쾌락이 아니라,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한다.”
민성길(연세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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