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 하나님 나라로서의 유토피아, 주체가 사람
세계 복음화를 위한 교회의 역할 강조하지 않아
전도·교회 확장 의미 소멸시키는 반기독교 사상”
한국개혁신학회(이은선 대표)가 4일 147차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코로나19로 인해 서면 발표로 대체됐다.
이날 김은홍 박사(백석대 선교신학)는 유사 ‘하나님 나라로서의 유토피아 사상에 대한 선교적 변증’이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김 박사는 “오늘날에 엄청난 세계적인 사태들이 연속하여 일어났고, 이슬람권의 부흥운동과 국내에서는 반기독교 운동 확산 등으로 한국교회와 선교운동은 힘겨운 도전과 응전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며 “코로나19 감염의 확산 이래로 글로벌 아젠다(Agenda)는 ‘생존’이 되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는 기독교 교회도 예배에 대한 문제보다 ‘살아남는 것’을 더 중하게 여기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특히 “코로나19 충격의 여파로 인해 세계의 위기는 경제를 비롯하여 모든 영역에서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며 “이러한 세계적인 혼돈과 불평등한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어 기업이나 국가가 살아남기 위해 앞으로 충격적인 정책과 대안을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다. 더욱이 이러한 충격은 우리의 정신을 앗아가 감각이 무뎌진 상황에서 교회의 예배와 집회가 세속 정부에 의해 관리 감독받는 상황을 맞고 있다. 세상 권력을 향하여 영적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기독교 교회는 오히려 존립마저 위기에 놓여있지만 이에 대한 적절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현실에 암담하기만 하다”고 했다.
이어 “이 시대에 교회는 세계 선교와 복음전도의 열매가 상실되어가는 시대적 상황에 어떤 대안을 내놓아야 할 것인가”라며 “한국에는 교회의 수, 천만 성도, 새벽을 깨우는 열심, 남에게 뒤지지 않는 헌신 등 자랑거리는 여전히 많다. 그러나 세상에 대하여 교회의 지도력과 공공성 그리고 영향력이 급격히 약해지는 부정적인 인식의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그 해결책을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신학은 답을 내놓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유토피아는 플라톤의 「국가」에서 이상국가를 꿈꾸던 것을, 토머스 모어는 그의 소설 「유토피아」(1516)에서 근대 16세기에서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노동의 열악한 조건과 피폐된 삶의 상황을 벗어나 극복하려는 욕망에서 허구적인 이상 국가를 그린 내용이다. 그가 상상한 섬의 이름이 바로 ‘유토피아’(utopia)”라며 “16세기 유럽에 이루지 못한 이상적인 행복한 나라이지만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를 그린 내용이다. ‘좋은 장소’(eu-Topos)와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장소(ou-topos)라는 두 단어를 조합하여 ‘어디에도 없는 나라’(U-Topia)를 만든 것이다. 이것이 나중에 제임스 힐턴(James Hilton)의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 1933)에서 이상향으로 표현되었다”고 했다.
이어 “오늘날 한국선교는 교회성장을 중시해 오면서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신자의 수, 건물이나 땅, 시설, 자본이 불어나는 점을 가지고 교회가 성장한다고 말하는 이론은 단지 비대해져 갈 뿐 존재성이나 영향력 및 지도력은 빈약해 지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두 가지의 요인을 찾을 수 있다”며 “하나는 교회가 세상에 대한 영적 지도력의 부재와 공공성의 미흡함과 사회적 책임성의 부재에 대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교회가 세속 사회에 대한 책임을 바르게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상 국가 건설을 위한 혁명이론, 분별 없이 유토피아를 목표로 세우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유토피아 오류의 핵심은 유한한 이 세상이 전부라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반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과 저 세상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며, 영광의 하나님 나라이며 영광의 하나님 나라를 모두 취한다”며 “유토피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의식하지 않는 반면 하나님의 나라는 파루시아(parousia)를 대망하는 신앙에 기초한다. 이점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은 유토피아와 하나님 나라를 구분하는 경계선”이라고 했다.
김 박사는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왕국의 통치자 하나님이 주체이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갖는 내세에 대한 믿음이나 소망의 유무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며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그들의 의식 속에는 세상종말과 그리스도의 파루시아는 없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식이나 영원한 세상을 사모하는 마음 없이 단지 지금(now)과 여기(here)만을 취하거나 세상의 실제 역사와는 관계 없는 신화적이거나 윤리적인 점만을 취한다. 이것이 유토피아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유사 하나님의 나라로서의 유토피아가 정통 신앙을 위협하는 점은 주체가 사람이라는 것”이라며 “이미 세뇌된 의식과 만연된 사상 속에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내세에 대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은 전혀 찾을 수 없다. 세계 복음화를 위해 하나님이 세운 교회의 역할을 강조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후켄다이크가 제시한 ‘미시오 데이’ 신학이 선교의 교회 설립과 전도를 강조하는 교회가 해야 할 복음화를 제거한 결과가 결국 이렇게 나타난 것”이라며 “이 점에서 개혁주의 선교신학은 유토피아의 오류와 혼돈된 사상의 틀 속에 갇혀있는 크리스천들과 뭇 사람들에게 변증적 교육을 통해 그 틀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유토피아 이데올로기가 현 지상의 희망인 것처럼 유혹하는 신학을 차단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유주의 신학을 토대로 전개된 종말론은 하나님 나라가 현재적이냐, 미래적이냐 하는 것을 논제로 삼았다. 결과적으로 어떤 신학이라도 파루시아를 부인하면 유사 기독교의 아류이지 정통신학은 아니”라며 “왜냐하면 이것은 ‘새 언약(New Covenant)에 기초한 선교적 교회의 본질’을 통째로 부인하는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신약성서의 종말론은 이러한 양자택일적인 종말론이 아니”라며 “언제나 양자 모두를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현 세상에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자들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유토피아 건설은 굳이 성경말씀에 기초한 기독교 신학이나 교회가 아니어도 가능할 수 있는 점을 크리스천들은 인식해야 한다. 비록 동기와 과정은 다를 수 있으나 세상의 정치 이데올로기(사회주의·공산주의), 진보적인 사업들, 사회복지, 특히 타종교들이 추구하는 거의 동일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인권과 자유 그리고 풍요와 번영을 위한 요소들로 구성되는 유토피아는 인류의 삶에 필요불가결한 것이지만 인류의 궁극적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 결국 유토피아를 목표하는 신학과 교회라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없어도 이룰 수 있는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유토피아는 현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신학사상이 아닐 뿐 아니라 도리어 복음전도와 교회의 설립 및 확장의 의미를 소멸시키는 반기독교적인 사상인 것”이라고 했다.
또한 “이처럼 유토피아가 궁극적 목적이 되는 것은 하나님 나라로 위장하여 몰래 들어온(갈 2:4) 것이므로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며 “따라서 신학은 제 분야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에서 유토피아가 내포된 사상을 찾아내고 파악해서 유토피아에 대한 선교적 변증을 해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 “선교의 목적은 세상의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예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유토피아의 프레임 속에 갇혀있을 때에 천 마리의 소를 제물(왕상3:4)로 드린들 무의미하며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스러운 예배는 불가능하다”며 “하나님께 예배하면서 오히려 진노를 산다면 이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지 않도록 지상에 교회를 세우고 소망을 전하며 온전한 영광의 하나님 나라를 목표하는 것이 선교 변증이다. 교회는 이러한 메시지를 세상의 정치·경제·문화·사회·교육 등 전 영역에서 성경적 종말론이 기초된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김 박사는 “오늘날에 진보적 대안으로 제시하는 유토피아를 현대신학과 교회가 받아들인 결과 복음의 본질과 생명력을 잃어 세상에 선한 영향을 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며 “따라서 인본주의를 향해 질주하는 유토피아 사상을 경계하고 세상의 궁극적 목표가 유토피아로 향하는 관성적인 흐름을 차단해야 한다. 유토피아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 유토피아가 하나님의 나라로 인식되게 하는 모든 연구와 교육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선교, 즉 세상의 복음화와 인간화를 이루어나갈 대리자(Agent)임을 명심해야 한다”며 “교회는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도록 예수님의 파루시아 때까지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벧전 2:9)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이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켜야 하는 선교적 사명을 수행하는 방법이기 때문(마28:19~20; 눅4:18~19)”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