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삼대지’(three-point) 설교는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아왔다. 왜 그랬을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본문에 충실하지 못한 설교가 될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에 그렇다. 주일날 설교자가 정하는 본문마다 세 가지의 대지가 항상 들어있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2] 솔직히 말해서 딱 세 가지 대지로만 구성되어 있는 본문은 거의 발견하기 힘이 든다. 그런 점에서 마 7:7절은 삼대지 설교를 하기 가장 좋은 최적의 구절로 설교자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아왔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3] 우리 모두가 다 잘 아는 성구이다. 여기엔 딱 세 개의 명령형이 나온다. ‘구하라!’(ask), ‘찾으라!’(seek), ‘문을 두드리라!’(knock) 삼대지 설교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맞춤형 본문을 어디서 찾을 수 있으랴! 설교자들이 고르는 본문마다 이와같이 딱 세 개의 동사만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이제 마 7:7절 본문으로 만든 설교 개요의 실례를 소개해보자.
[4] 이 본문으로 설교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다음과 같은 형태의 개요로 설교를 하곤 한다.
*세 가지 기도 방식
1) 구하라!
2) 찾으라!
3) 문을 두드리라!
[5] 하지만 이 본문이 위의 개요처럼 ‘기도의 세 가지 방식’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것이 맞을까? 사실 이 본문 역시 삼대지 설교를 위해 주어진 말씀이 아니란 점에 유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구절이 ‘평행법’(Parallelism, ‘병렬법’)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기차의 두 레일이 항상 같은 간격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면 기차의 안전은 심히 위협을 받을 것이다.
[6] 또한 스키 선수가 양쪽의 균형을 잘 잡아야만 넘어지지 않고 제대로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글이나 말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때는 문장구조가 균형을 맞추어야만 논리적이고 상대가 제대로 이해할 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평행법’이란 ‘의미가 비슷하거나 상반된 어구(語句)가 동사나 명사나 접속사나 전치사로 연결되어 짝을 맞춘 글귀’를 말한다.
[7] 이는 서술을 장중하게 할 뿐 아니라 음악적 묘미도 더해준다. 마 7:7절에 나오는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는 세 개의 명령형 동사는 ‘세 가지의 기도 방식’(three modes of prayer)을 말하려는 게 아니고, 똑같은 의미의 세 가지 동의어(synonym)이다. ‘구하라’와 ‘찾으라’와 ‘문을 두드리라’는 의미상에 있어서 차이가 전혀 없다.
[8] 단지 문학적인 형태상 하나만 언급하면 뭔가 허전하기 때문에 같은 의미의 다른 두 개의 동사를 덧붙임으로 하나의 동사가 가지는 어색함을 달래려 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정말 세 개의 대지로만 구성된 본문을 찾기란 더욱 하늘에 별 따기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한 개나 두 개의 대지만 들어있는 본문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중세 시대 영국에서는 삼대지를 뽑아낼 수 있는 본문만을 골라서 설교하기도 했다고 한다.
[9] 본문에 없는 삼대지는 활용하지 않겠다는 선한 의지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자가 어떤 본문을 정했든지 상관없이 주일만 되면 어김없이 세 가지 대지의 설교가 강단에서 선포되고 있으니 기적 중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만일 본문에 대지가 딱 하나 밖에 없다면 어찌 되겠는가? 30분 설교에 맞추기 위해서 본문에 전혀 존재하지도 않는 두 개의 대지를 설교자 본인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모두가 한두 번은 다 경험했던 바일 게다.
[10]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는 ‘비성경적 설교’(unbiblical sermon)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존 스토트의 말마따나 억지로 삼대지를 만드는 것은 전후좌우 살피지 않고 꽉 끼는 재킷을 끼어 입는 것과 같다. 삼대지 설교자들은 지금도 매주 성경 본문 속에 들어있지 않은 세 개의 대지를 만들어내느라 고뇌하고 있다. 이번 주 다음 주, 지구의 종말이 오기까지 말이다.
[11] 이제 마 7:7절의 내용이 포함된 강해설교를 작성하면서 삼대지와 원포인트 설교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를 비교해보라. 강해설교가 되려면 먼저 원포인트의 핵심 메시지가 포함되는 최소 구절까지를 본문으로 선정해야 한다. 때문에 설교를 준비할 때 최우선 과제는 마 7:7~12절까지를 본문으로 잡는 일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2]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13] 이 본문으로 세 가지 대지의 설교를 구상하는 것이 옳지 않음은 이미 살펴보았다. 7절 한 절만을 본문으로 하면 ‘구하면 주실 것이다’라는 원포인트의 메시지를 추출할 수 있다. '기도하는 자의 의지와 열심'에 따라 하나님의 응답이 결정된다는 의미이다. 응답해주시는 하나님보다 기도하는 인간에게 초점이 가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본문을 전체 문맥의 흐름에 맞게 해석을 하면 사람의 행위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와 선하신 의지’가 주된 역할(primary role)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4] 다시 말해서 본문에서 주도권(initiative)을 잡고 계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본문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핵심 구절이 7절이 아니라 11절임을 발견할 수 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초점이 이 구절에 맞춰져 있음을 빨리 눈치 채야 한다.
[15] 이 내용은 우리가 하나님께 구해야 할 이유가 뭔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게 바로 우리가 구해야 할 이유이다. 그래서 전체 문맥에 따라 본문을 바르게 해석한 내용을 기초로 핵심 메시지를 작성하면 다음과 같다.
[16]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의지하면서 계속 구해야 한다.” 딱 하나의 핵심 메시지가 추출됨을 볼 것이다. 이제 삼대지 설교와 원포인트 설교의 차이가 보이는가? 맛이 다르다. 그렇다. 성경 본문의 진미를 제대로 맛본 이들은 원포인트의 설교가 아닌 삼대지 설교를 더 이상 행할 수도 들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고 살자.
신성욱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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