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영 신학의 대표적인 문제 4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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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 신학은 성도가 부유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하나님이 바라신다는 가르침이다. 번영 신학의 전도사들은 기도를 넘어 아예 하나님에게 물질적 번영을 요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웨이크포레스트에 위치한 Southea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교수 데이비드 W. 존스(David W. Jones)가 복음연합 사이트에서 번영 신학의 몇 가지의 오류에 관해 설명한 글이 눈길을 끈다.

다음은 번영 신학의 대표적인 문제 4가지를 소개한다.

1. 기도는 하나님의 팔을 비틀어 우리에게 번영을 주시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번영 복음 설교자들은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약4:2)라는 구절에 주목하며, 그들은 우리로 하여금 삶의 모든 분야에서 성공을 위해 기도하라고 촉구한다.

개인적인 축복을 위한 기도가 본질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행위에 대한 번영 신학의 과도한 강조는, 기도마저 욕망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변질시킨다. 즉, 번영 신학 안에서의 기도란 하나님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기 위한 도구이자 수단이다.

그러므로 기도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닌 인간이 된다. 흥미롭게도 번영 설교자들은 기도에 대한 야고보서의 가르침 중에서 다음의 후반부를 자주 무시한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 4:3).

하나님은 그분의 이름을 존중하지 않는 이기적인 요구에 응답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모든 간구를 하나님께 아뢰어야 하지만(빌4:6), 번영 신학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조종하려는 헛된 시도까지 하도록 만들며, 또한 인간의 갈망에만 너무 많은 초점을 맞추기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는커녕 이기적이고 피상적인 기도만을 하도록 유도한다.

이것은 “당신의 뜻이 이뤄지게 하소서”라는 예수님의 기도와는 동떨어진 행위이다.

2. 크리스천이 물질적인 보상을 얻기 위해 기부한다.

번영 신학자들이 가진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기부에 관한 집착이다. 그들은 아낌 없이 헌금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진정한 번영이란 인류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며, 우리는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부름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박수를 받기에 마땅한 그런 언행은 순수한 자선에 기초하지 않는다. 헌금에 관한 그들의 가르침은, 로버트 틸톤(Robert Tilton)이 말한 ‘보상의 법칙’에 근거를 두고 있다.

마가복음 10장 30절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진 이 법칙은 크리스천이 타인에게 관대하게 베풀어야 하며 이는 하나님이 돌려주신다고 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무한 증대하는 번영이 쌓인다는 주장이다.

번영 복음이 가르치는 기부 교리는 매우 잘못된 동기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눅 6:35)라고 가르치셨고, 번영 신학자들은 큰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주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3. 예수님의 속죄는 물질적 빈곤이라는 ‘죄’까지도 해결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와 질병, 슬픔과 애통, 그리고 빈곤까지 갈보리의 예수님께 맡기심으로써 모든 고통을 이미 다 해결하셨다는 속죄 범위에 대한 이러한 오해는 주로 번영 신학을 옹호자들이 저지르는 오류이다.

먼저, 번영 신학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삶에 대해 근본적인 오해를 한다. 예를 들면, 그들은 예수님이 ‘멋지고 커다란 집’을 가지고 있었고, ‘큰 돈’을 소유했으며, 심지어 디자이너가 만든 옷을 입었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삶에 대한 왜곡된 생각은 자연히 그의 죽음에 대한 비뚤어진 착각으로 이어진다.

두 번째로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구절을 피상적으로 읽으면 마치 바울이 물질적 부의 증가를 언급하는 것 같지만, 전체 문맥에 비춰볼 때 사실 바울은 정반대의 원리를 가르치고 있다. 실제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속죄를 통해 너무나 많은 것을 성취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구세주를 위하여 각자의 부유함까지 버려야한다고 가르친다. 그렇기에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고전8:14)이라며 가난한 형제들에게 자신의 부를 나누라고 촉구하는 것이다.

4.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물질적 번영을 위한 수단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창12, 15, 17, 22장)은 번영 신학의 신학적 토대이다. 번영 신학자들은 언약의 시작을 잘못 이해함으로써 언약의 적용까지 완전히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으로 인한 유산을 주로 물질적인 측면에서만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번영 신학이다. 즉 번영 복음에 따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은 가장 큰 목적은 그를 물질적으로 축복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신자들은 아브라함의 영적 자녀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물질적 축복을 이미 상속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14절을 보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갈라디아서 3장 14절의 후반부는 완전히 무시한다.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약속하는 것은 물질적인 축복이 아니라 구원이 가져다주는 ‘영적인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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