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부자 청년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그가 "(예수에게) 달려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마가복음 10:17, NIV)라고 들었다. 남자의 간절함과 성실함이 엿보인다"고 밝혔다. 그가 보기에는 부자 청년의 질문도 만점짜리 질문이었다. "선하신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런데 왜 이 부자 청년은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기를 원하는 그 간절한 소망을 뒤로하고 결과적으로 예수님에게 등을 돌릴 수 밖에 없었을까? 랜디 알콘은 "그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이야기한 후에 우리는 종종 간과되는 놀라운 사실을 읽게 된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이 사랑을 할 때, 사람들은 자신들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기 마련이다. 부자 청년을 보시고 그가 온전하게 되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간파한 예수님은 그가 온전한 길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느니라… 가서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런 다음 와서 나를 따르라"(막 10:21, NIV).
이에 랜디 알콘은 "우리 중 많은 사람들과 달리 예수님은 영원한 실재를 분명히 이해하고 있으며 그 지식은 부자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알려 준다"며 "이 청년과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좋은 삶 사이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알 수 있다. 바로 그의 재산이었다. 그는 이미 풍성한 삶을 살았다면 예수님에게서 더 많은 것을 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질문은 그가 살아온 삶에 대한 불안, 불만족을 암시한다"고 했다.
부족한 것을 몰랐던 청년, 재산이 많았던 청년은 그러나 영혼 깊은 곳의 불만족을 느끼고 있었고 예수님을 찾아와 영혼의 목마름을 해소하길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재산이 온전함에 이르는 길에 장애가 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랜디 알콘은 "하나님은 사랑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와 영원하고 풍성한 삶 사이에 장애물을 제거하기를 원한다"며 "물론 예수께서는 부자에게 재산을 기부하라고 명하심으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셨다. 그러나 동시에 거짓된 재물의 신으로부터의 해방을 주심으로써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셨다"고 했다.
하지만 근심하며 돌아서는 부자 청년의 모습은 이야기가 비극으로 전개될 것을 암시했다. 랜디 알콘은 "'이에 그 사람의 얼굴이 떨어졌다. 그가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가니라'(막 10:22). 부자가 자신이 소유했다고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는 그를 소유했다. 돈은 그의 신이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마태복음 6:24, NIV)"고 했다.
랜디 알콘은 "그 남자는 자신의 부에 집착함으로써 자신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며 "그는 더 이상 틀릴 수 없었다. 그는 예수님이 그것을 버리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실제로 그에게 자유와 기쁨, 그리고 진정한 생명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또 랜디 알콘은 "부자가 재물의 속박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고개를 돌리시며 슬퍼하신다"며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쉬우니라'(막 10:23, 25, NIV)"고 했다.
이어 "많은 책과 설교, 심지어 일부 주석에서도 예루살렘에 '바늘귀'라고 불리는 좁은 통로가 있었다고 주장한다"며 "낙타가 통과하기 전에 자신이 짊어진 모든 짐을 내려야 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낙타가 무릎을 꿇고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부자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지만 모든 짐을 버리고 겸손하게 천국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이 모든 것이 매우 영적으로 들리며 실제로 끝없는 온라인 기사는 그러한 문이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해설자 William Barclay는 때때로 이 아이디어의 출처로 인용되지만 Barclay는 이 주장을 문서화하지 않는다"라며 그는 단순히 '그것은....' 물론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실, 이를 뒷받침할 믿을 만한 역사적 참고 자료를 광범위하게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고대인들이 '바늘의 눈'이라고 불렀던 문이 실제로 있었다는 증거를 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바느질 바늘에 대해 일반적인 단어를 사용했으며 '눈'으로 번역 된 것은 '구멍'을 의미한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할 가능성을 부정하기 위해 창의적인 방법을 고안할 필요는 없다"며 "분명히 낙타는 바늘귀로 들어갈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님이 유머러스하게 묘사한 요점이다"라고 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충격을 받았다. 왜 놀랐을까?
랜디 알콘은 "그들이 놀란 이유가 예수 시대에 부는 하나님의 승인의 표시로 여겨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들의 논리는 이러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인정하시는 부자가 천국에 가기가 어렵다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멸시하시는 가난한 자가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랜디 알콘은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하나님으로서는 하실 수 있다'(누가복음 18:27, amp)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자신의 충격적인 말씀을 인정하셨다"며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 불가능하다. 예수님은 부자와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제공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그렇게 하셨다"고 했다.
부자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을 수 없다는 예수의 말씀에 기가 막힌 베드로는 예수님께 공격적인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당신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왔습니다!"(막 10:28, NIV). 이에 예수님은 베드로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전토를 버린 자는 이 세대에 백 배나 받지 아니할 자가 없으리라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전 핍박과 더불어 내세에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막 10:29-30).
이에 랜디 알콘은 "예수께서는 여기서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 중 일부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분을 따르는 데 방해가 되는 다양한 형태의 부, 그것이 돈, 재산, 안전, 가족, 명성 또는 인기의 형태로 오든 그 부에서 돌아서야 한다고 지적하셨다"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단기적인 보상과 영원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얻는 생명은 우리가 남기고 간 어떤 것보다 훨씬 뛰어나다"라고 강조했다.
랜디 알콘은 "언뜻 보기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이기심을 완전히 무시하라고 우리를 부르신다고 상상할 수 있다"며 "사실 그분의 부르심은 그 반대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생명을 포기해야 하는 이유, 즉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공급하신다"고 했다.
끝으로 "우리는 공허한 삶을 포기하고 좋은 삶을 붙잡는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풍성한 삶을 누리기 위해 궁핍한 영적 삶을 포기한다"며 "이것은 팝 병 자루를 받는 대가로 코카콜라의 소유권을 제안받는 것과 같다. 바보만이 그 제안을 거절할 것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