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픈도어선교회는 최근 기독교를 핍박하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한 인도인이 핍박을 받은 사연을 소개했다.
인도 기독교인 여성 프리타가 힌두교인들의 공격을 받은 뒤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온몸의 통증이었다. 손이 제일 아팠다. 그녀가 아픈 손을 내려다 보았을 때, 그녀의 손가락 4개와 손바닥에 깊은 상처가 나 피가 사방에 묻어 있었다.
프리타는 자신의 딸 미라이 역시 깊은 상처와 검은 멍이 든 채 옆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술 취한 남자들, 쇠막대기 등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머리맡에 있던 아들은 “의사들이 우리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우리를 치료하지 않겠다고 해요. 이제 우리가 어디로 갈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앞서 프리타는 목사인 남편 나빈과 함께 교회 성도인 비니타의 집을 방문해 기도하고 있었다. 비니타는 어린 딸을 데리고 있었다. 얼마간 기도하는데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지더니 “기독교인들은 어디 있지?”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한 무리의 남성들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고, 불과 몇 초 만에 술에 취한 이들이 작은 집을 가득 채웠다.
그 무리의 리더는 나빈의 셔츠를 잡고 “우리는 기독교인들이 여기 있는 걸 원하지 않아!”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다른 남성들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부수기 시작했다. 그들 중 한 명이 비니타의 아기를 붙잡아 땅에 던졌다.
그 때 아기가 소리를 질렀다. 프리타가 아기를 위해 앞으로 달려가자, 한 명의 남성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 그는 들고 있던 쇠막대기를 그녀의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프리타의 남편 나빈은 기독교인들을 공격하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어느 날 그가 한 남성의 손에서 복음서 한 묶음을 낚아챘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나빈은 그것을 찢어 그 남성의 얼굴에 던지며 “우리는 여기에서 당신의 외국 신들에게 관심이 없다”고 외쳤다.
그는 기독교인들이 자신에게 가까이 오지 않기를 원했지만, 그들은 계속 찾아왔고 마을의 일부 친구들은 기독교로 개종하기도 했다.
프리타는 어느 날 기독교인들이 늘 말하던 하나님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됐다. 그들의 딸 미라이는 어린 시절부터 피부병과 이로 인한 심각한 정신적 충격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부부는 힌두교 사제가 제안한 금식, 기도, 모든 종류의 의식에 참여하며 힌두교 신에게 기도했다. 그러나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
그런데 마을의 기독교인들은 미라이를 교회로 데려가라고 제안했다. 프리타는 기도하는 신부에게 딸을 데려갔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딸의 상태가 호전됐다. 그러나 그 사제는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다. 나반은 결국 술을 끊고 힌두교 우상을 만드는 일을 그만두고 기독교로 개종해 목사가 되었고, 프리타도 기독교인이 되었다.
이후 마을의 일부 사람들이 그들에게 교회에서 모이지 말고, 목회를 중단할 것을 종용했다. 그들은 기독교는 외국 종교이고 반인도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다 마침내 그 위협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병원에서 비니타가 프리타의 침대 옆에 앉았다. 그녀의 아기는 그녀의 무릎에 있었고, 다행히 심각한 부상 없이 시련을 이겨냈다. 비니타는 운이 좋지 않았다. 그녀의 머리와 손에도 피가 묻어 있었으나 프리타처럼 심하게 다치지는 않았다.
그녀는 오픈도어선교회 인도 현지 파트너를 통해 다른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오픈도어선교회는 프리타와 가족들에게 법적 지원을 제공했으며, 이후 그들을 공격한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프리타 가족에 대한 공격은 단 한 번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오픈도어선교회 지역 파트너들은 코로나19 폐쇄로 기독교인에 대한 공격이 줄어들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수백 명의 기독교인들이 심지어 코로나19 집합 제한 기간에도 그들의 신앙 때문에 물리적인 공격을 받았다.
인도는 오픈도어가 매년 선정하는 기독교 박해국가 중 10위를 기록했다. 오픈도어는 나반과 프리타 같은 인도인들을 대변하는 캠페인을 시작했으며, 이들은 코로나19와 극단적 박해로 위기에 직면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