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100주년기념사업특별위원회가 27일 오후 3시 ‘냉전과 한국 기독교’라는 주제로 온라인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온라인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된 이날 행사에선 김동진 교수(트리니티칼리지)가 ‘한반도 평화와 냉전의식 극복을 위한 한국 기독교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김 교수는 “1945년 2차 세계대전에서의 일본의 패배로 한반도는 해방을 맞이했으나, 한반도의 북쪽은 소련군, 남쪽은 미군이 통제하는 분단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며 “분단 상황은 서로 다른 국민국가 이상을 가진 좌파와 우파 간의 갈등을 본격적으로 심화시켰고, 1948년 대한민국(한국),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북한)의 수립, 6.25 전쟁 (1950~)을 거쳐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열강들 간의 냉전 속에서 지속적으로 구조화되었다”고 했다.
이어 “1953년 휴전협정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정부는 상대에 의한 전쟁의 재발가능성 및 냉전 의식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권위주의 정권을 합리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쟁의 경험과 더불어 뒤이은 냉전 시기 이러한 이데올로기 정치는 남북한의 일반인들에게 있어 상대에 대한 적정체성을 강화시켰다”며 “양 정부의 상호 간뿐 아니라 자국민을 향한 강압적이고 적대적인 통제 아래 일반인들 간의 접촉 및 대화는 극히 제한되었다. 이 결과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 세계적 냉전 종식 과정, 그리고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및 21세기 여러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상호 간의 적정체성 및 냉전 의식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기독교는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개신교 선교사들이 차례로 입국하기 시작하는 19세기 후반부터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며 “한국 기독교인들은 남북관계 또는 냉전 시기 동서관계에 있어, 분단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또는 ‘북한’이라는 국가 정체성, ‘자본주의’ 또는 ‘사회주의’라는 정치적 정체성, 그리고 최전선 냉전의식을 공유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이러한 기독교인들의 최전선 냉전의식은 한국 기독교인들의 집단 정체성과 결합되어 체험적 반공주의를 등장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기독교를 비롯한 세계 종교는 개인, 사회, 국가의 경험을 넘어 기독교의 가치와 규범, 그리고 이상을 공유하는 집단 정체성을 가진다”며 “물론 국민국가에 대한 근대적 이해와, 종교의 초월성 사이에는 일정한 긴장상태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초대 기독교인들이 기록한 문서들을 보면 예수가 전한 평화의 가르침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며 “바울은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라 말한다(롬:12:14~21). 이그나티우스, 클레멘트, 폴리캅, 순교자 유스티누스,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오리겐 등 많은 초대 교부들이 전한 하나님 나라 시민의 정체성은 당시 로마제국의 국가 가치인 팍스 로마나(Pax Romana)와 정면으로 충돌했다”고 했다.
또한 “로마제국의 팍스 로마나는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pacem, para bellum)는 명제로 대변될 만큼,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힘의 평화를 추구했다”며 “팍스 로마나는 상대국만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제국 내부에서도 국가안보를 명목으로 시민들을 억압하면서 심각한 구조적 폭력을 발생시켰다. 더 나아가서는 이런 구조적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황제를 신격화하고 황제 숭배를 생활화하는 문화적인 폭력이 나타나기도 했다”고 했다.
김 교수는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에 있던 초대 기독교인들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초기 기독교인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며 “일본은 대동아 공영권을 외치며 한반도를 비롯한 주변국들을 정복해 나갔으며,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폭력으로 억압했다. 또한 로마시대의 황제숭배와 유사하게 일본 천황을 신격화하고 일본의 국가정체성 강화를 위한 신사참배를 강요해 나갔다”고 했다.
이어 “이만열(1938~, 역사학자이자 교회사학자)은 당시 한반도의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런 일본의 폭력적 지배에 맞서는 가장 최선의 길은 평화이며 평화의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임으로써 민족의 해방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고 말한다”며 “이들 한반도 초기 기독교인들이 가진 신앙은 기독교의 양적 성장뿐만 아니라, 1919년 3.1 만세 운동과 같이 평화로운 방식의 독립운동을 확산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기독교인들은 천도교 등 다른 종교인들과 함께 한반도 전역에서 3.1운동에 가담하였으며, 전국의 교회가 지닌 조직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일제의 국가 폭력적 현실에 맞서 하나님 나라를 선언했다”고 했다.
그는 “한반도에서 여전히 최전선 냉전 의식이 지속되고 있고, 남북한의 적대관계가 여전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며,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평화 프로세스의 노력은 존재론적 불안을 불러오는 것처럼 보인다”며 “그러나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만큼이나 한반도 평화는 국가나 개인의 통제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미 하나님 나라 안에 그러나 아직 아니’라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신앙과 같이, 평화는 이미 우리와 함께하고 또한 언제든 불현듯 더 다가올 수 있다”며 “문제는 이러한 평화로운 한반도로서의 변화를 지속시키고 현실화함에 있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존재론적 불안을 극복하고 함께 참여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라고 했다.
또한 “이런 차원에서 여전히 한국 기독교의 역할이 있다”며 “냉전시기를 지나 죄책고백을 했던 한국 기독교인들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과 용기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적대적 경쟁관계의 일상화에 대응하여 오늘날에도 계속되는 평화의 한반도에 대한 희망의 일상화로 이어져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세계적으로 냉전이 종식되었지만, 냉전의 최전선으로 여겨지던 한반도에서의 분단과 휴전, 그리고 최전선 냉전의식은 여전하다. 남과 북을 가르는 비무장지대는 여전히 남북한 일반 시민들의 만남을 가로막고 있으며, 북한은 핵무장, 한국은 한미동맹 및 군사력 강화를 통해 물리적 안보를 추구하는 한편, 여전히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그러나 2021년 암울한 한국의 현실에서도 여전히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은 한반도를 넘어 세계평화의 희망이며 동시에 이미 우리에게 도래한 희망”이라고 했다.
아울러 “한반도에서 냉전의식의 극복은 얼마나 많은 한반도 사람들이 분단구조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존재론적 불안을 극복하고 이러한 희망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인가에 달려 있다”며 “이러한 차원에서, 평화의 하나님 나라 희망을 일상화하는 기독교인들은 적대적 경쟁관계의 일상화를 극복하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변화를 지속시키는데 분명 기여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