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묵상 책갈피] 코너를 통해 신앙도서에서 은혜롭고 감명 깊은 내용을 선택해 간략히 소개합니다.
길 한가운데서 짖어대는 개처럼 설교자들은 열심히 설득해댑니다.
“당신에게 천사의 위안과 행복한 마음을 줄 수 있는 저희 교회로 오십시오.”
“부인, 이쪽으로 오십시오. 저 교회는 당신 같은 분에게는 너무 딱딱합니다. 우리에게 와 보십시오. 우리는 선택 교리 같은 것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선생님, 제 말씀을 한번 들어보시죠. 우리 천년왕국파에 한 번 와보시지 않겠습니까? 은사를 주장하지도 않고 칼빈주의 같은 것도 없습니다. 절대로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부인이 언젠가 내게 이렇게 말을 한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예수님께 나아가고 싶어요.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요.”
그녀는 우리 모두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그것을 찾지 못했기에 당신은 교회 문을 기웃거렸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혹 당신은 교회 문을 기웃거리는 것 이상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안에서 봉사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안식보다는 스트레스만 쏟아집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평안을 주실 것이라고 했음에도, 그렇지 않은 사실로 인해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그 결과 당신은 세상과 교회로 인한 혼란은 물론, 이제는 그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으로 인해 더욱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휴!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니!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복잡한 종교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3장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을 창백한 얼굴을 지닌 마음 약한 어린 디모데처럼 생각했다면 이 부분을 읽어보십시오. 그러면 그분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될 것입니다. 거기서 당신은 그분의 자녀들을 매춘부로 팔아 버린 악한 자들에게 진노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섯 번을 걸쳐 그들을 위선자라고 부르며 다섯 번에 걸쳐 소경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일곱 차례나 맹렬히 비난하고 있으며 그들의 파멸에 대해 예언하십니다.
그러나 빗발치는 비난 가운데서도 눈을 크게 뜨고 놀라는 제자들에게 단순한 믿음의 본질을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복잡한 기독교에 대해 그리스도가 제시하신 실질적이고 간단한 대안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23:8~12)
당신은 자신의 믿음을 어떻게 단순화시키고 있습니까? 어떻게 혼란을 제거합니까? 날마다 잠에서 깨어날 만한 가치를 어떻게 발견하고 있습니까? 단순함입니다. 중간에 있는 누군가를 없애는 것입니다.
스스로 진리를 발견하십시오.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8절).
스스로 신뢰를 발전시키십시오.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9절).
스스로 그분의 뜻을 분별하십시오.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10절).
맥스 루케이도 「내게 남은 날이 일주일밖에 없다면」 좋은씨앗 P150~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