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책갈피] 성령의 활력을 빼앗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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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묵상 책갈피] 코너를 통해 신앙도서에서 은혜롭고 감명 깊은 내용을 선택해 간략히 소개합니다.

영적 두루뭉술함을 양산하는 또 다른 원인은 교회 성장을 위해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저자세이다. 말바 돈은 우리에게 “침묵하지 말고 전도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모든 교리적 정의들을 최소한으로 축소해야지만 더 빠르게, 그리고 더 효과적으로 전도가 이루어진다는 느낌이 든다.

특별히 도시 외곽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막연하게 소개해주면 그들이 교회에 더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교회를 유지하고 부흥시키는 일에 성령을 의지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교회는 성령에게 전권을 위임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령을 의지하면 성령이 자신을 마치 전파 매체의 부흥사들처럼 광분하게 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사람들은 성령의 불이라는 개념에 거북스러움을 느끼고 전적으로 그것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예배에서 성도들이 도를 넘어 흥분하게 될 때 예배의 취향이 저마다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까지 그런 현상을 용납할 수 있을지 논쟁이 일어난다. 성도 간의 예의를 매우 중시하는 사람들은 예배 도중 너무 지나치게 기쁨을 표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영적인 두루뭉술함으로 예배의 규범을 지키는 것이 오순절의 고전압 회로 주위에서 노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여긴다.

또한 자신의 깊숙한 영적 삶을 너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다른 교인들을 실족하게 할 위험이 있다. 오늘날 화려한 세대 속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 부인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한다.

우리는 경건한 능력의 신비를 받아들이는 데 주저한다. 대신 진리를 설교하는 문제에만 집착하고, 그 진리를 정의할 때도 우리가 소화할 수 있는 성경적 사실에만 한정시킨다. 오직 경건의 신비만이 생명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영적 활력을 위해 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당신은 신앙의 사실들을 알고 있습니까?”가 아니라 “당신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성령님과 계속 접촉하고 있습니까?”이다.

캘빈 밀러 「성령이 이끄시게 하라」 브니엘 P14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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