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6개월 만에 다시 1천2백 명대로 치솟으면서 우려했던 제4차 대유행의 둑이 터졌다. 이는 지난해 1월 코로나19 국내 유입 이후 1년 6개월 만에 최다 확진자 수를 기록한 것으로 방역 당국도 4차 유행기에 접어들었음을 공식 인정했다.
최근 코로나19의 확산은 ‘델타형’ 변이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번진데다 백신 접종 속도가 변이 확산을 따라잡지 못해 발생했다는 지적이 있다. 그런데다 여름철에 접어들면서 젊은 층의 외부 활동량이 많아진 것이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지난주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를 발표한 후 방역에 대한 긴장감이 풀어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선진국에 비해 백신 접종률이 여전히 낮은데도 정부가 “곧 코로나가 잡힐 것”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와 함께 거리두기 완화책을 발표한 것이 ‘방역 해이’를 불러온 셈이 됐다.
지난해 5월에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었다. 정부가 ‘생활 속 거리두기’ 시행을 발표한 후 이태원 클럽 발 집단감염이 속출했다. 문 대통령이 “이제 터널의 끝에 와 있다”고 한 마디 할 때마다 코로나가 유행병처럼 급속히 확산하는 신기한 상황이 연속되기도 했다.
지금의 확산세를 진정시킬 방도는 국민 각자가 더욱 철저히 방역 수칙을 지키는 것과 방역 당국이 백신 접종을 늘려 급속도로 번지는 변이 바이러스를 차단하는 길밖에 없다. 특히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는 젊은 층의 접종 시기도 앞당겨야 한다. 하지만 백신 물량이 태부족한 게 문제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 달 새 백신 접종 속도가 다시 느려지고 있는 현실은 엎친 데 덮친 격이라 할 수 있다. 방역 당국이 백신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속도를 내다 보니 또 다시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백신 공급 부족 사태가 이대로 쭉 이어지면 20~40대의 접종도 그만큼 늦어져 불안 요소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갑작스럽게 닥친 천재지변이 아니다. 따라서 이전 1~3차 대유행기의 실패를 거울삼았다면 얼마든지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백신 접종이 정상 궤도에 달했다고 믿고 거리두기 완화와 함께 유흥, 체육시설 등 다중 이용시설에 대한 그동안의 규제를 한꺼번에 다 풀었다.
물론 영세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 등에게 돌아가는 고통과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여주려는 의도였겠으나 결과적으로 더 큰 피해와 고통을 전가하고 말았다. 그동안 방역 당국에 무슨 의학적 기준과 근거가 있기나 한 건지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가 지난 실패를 뼈저리게 반성하지 않고 반복한 결과라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의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에 대해 일각에서는 민노총에 엄중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민노총이 총리와 질병관리청장 등의 간곡한 요청을 무시하고 지난 3일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 8천여 명이나 모여 불법 집회를 연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다만 그들에게 먼저 잘못된 신호를 준 건 정부다.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와 다중 시설 규제 완화 발표가 이들에게는 시기적으로 더 없이 좋은 명분과 구실을 준 셈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감염병 방역에 대응하는 정부의 편향적 자세에 있다. 보수와 진보, 네 편과 내 편 사이에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지난해 개천절 보수단체가 주최한 정권 규탄집회 때 경찰은 버스 300여 대로 차벽을 세워 도심을 마치 성처럼 둘러쌌다. 경찰 1만1,000명을 동원해 행인과 차량을 검문하는 등 비상계엄을 방불케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개천절 보수단체 집회를 앞두고 이들을 직접 겨냥해 “반사회적 범죄”라고 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국회에서 집회 주최자를 “살인자”라고 지칭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이번 민노총 집회를 앞두고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비판 여론이 비등하자 집회가 끝난 지 이틀만인 5일 “방역 지침을 위반하는 집단 행위에 단호한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한 마디 했다. 이마저도 민노총을 직접 지칭하지 않았다.
감염병 대응 마저 내편 네편으로 가르는 ‘방역 정치’의 전형은 이번에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경찰은 지난해 보수단체 집회를 주최한 인사 대부분을 구속 수사해 재판에 넘긴 반면에 이번 민노총 집회 책임자는 이제까지 6명을 입건한 데 불과하다. 신규 코로나 확진자 수로만 따져도 지난해 집회 때는 75명, 올해는 794명으로 무려 10배가 넘게 나왔는데 이토록 다른 온도 차를 뭐라 설명할 것인가.
지금의 코로나 확산세가 지속할 경우 거리두기는 3단계에서 최악의 경우 최고 위험 수준인 4단계로 높아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국민의 일상은 일시에 ‘셧다운’ 상태가 된다. 교회도 3단계 하에서는 좌석 수의 20%까지 모일 수 있지만 4단계가 되면 예배 등 모든 종교모임은 비대면으로 전환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당국의 방역 실수와 거듭된 정책 실패를 온 국민이 떠안게 되는 꼴이다.
이번 코로나 대유행의 표면적 원인은 ‘변이 바이러스’의 급속확산과 젊은 층의 느슨한 방역인식에 기인한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책임은 정부가 과거의 방역 실패를 되풀이하며 여전히 방역을 정치화한 데 있다. 그러고도 제대로 된 사과나 반성 하나 없는 정부가 이번에는 중대 방역 수칙을 한 번이라도 어기면 바로 운영을 중단시키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적용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방역 실패가 부른 대참사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데 누가 누구에게 ‘으름장’을 놓는 것인지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