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교회 이재훈 목사가 4일 주일예배 설교를 통해 하박국 강해를 마무리했다. '나의 밭을 사슴과 같게 하소서'(하박국 3:17-19)란 제목의 이날 설교에서 이 목사는 하박국 3장을 하박국 선지자의 믿음의 정수를 보여주는 장이라고 소개했다.
이 목사는 "하박국 선지자가 1장 시작할 때 그는 하나님 앞에 항의하는 도전하는 질문으로 시작하였지만 이제 3장 마지막 부분에서는 하나님을 찬양 하고 있다. 그는 악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 같은 그런 상황 속에서 두려워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왔지만 3장을 마무리할 때는 선하신 하나님께서 승리하실 것을 믿음으로 감사하는 고백으로 마치고 있다"고 했다.
이 목사에 따르면 하박국 1장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그 불투명한 미래로 인하여 염려함으로 시작했으나 3장에 이르러서는 하나님 앞에 경배 드리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목사는 하박국에게 어떻게 일어난 변화에 주목했다. 이 목사는 "그 사이에 그는 하나님께 질문하였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과정 속에 그는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었고 신뢰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 하박국의 위대한 고백을 읽으며 감동하기는 쉽지만 우리 자신이 이러한 고백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목사는 머리로만 아는 믿음과 행하는 믿음 사이의 간격을 재확인했다. 그는 "머릿속으로 아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머물러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저 정보로서 머릿속에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다라는 것을 안다고 하나님을 아는 것은 아니다. 하박국도 그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깊은 기도와 질문 속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며 그리고 그의 영혼 속에 찾아오신 하나님의 임재로 인하여 그는 하나님께 대한 깊은 신뢰를 하게 되었고 진정 하나님을 아는. 정보로서가 아니라 친밀함으로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게 된 것이다"라고 했다.
하박국의 고백이 담고 있는 의미도 곱씹었다. 이 목사는 :하박국의 이 고백은 어떤 고백인가"라며 "무화과나무의 싹이 나지 않고 포도나무 올리브 나무에 어떤 열매도 없고 우리의 양과 소가 없어도...이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생계 자원이죠. 모든 것이 없다는 것은 절망이다. 이 절망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은 절망입니다.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하게 되는 그 백성들, 그 절망 속에서 그는 기뻐한다고 고백했다.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했다. 자신의 힘이 되시는 그 하나님을 노래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하박국의 고백 속에 담긴 믿음의 비밀 세 가지를 소개했다. 첫째로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 한분만으로 기뻐하는 신앙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 목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어떤 것, 그 무엇, 하나님게 주신 그 축복을 기뻐하시 게 아니라 하나님 그분을 또 그분만을 기뻐했기에 이런 고백이 가능한 것이다"라며 "만약 하나님께서 주신 어떤 것을 기뻐했다면 그 모든 것이 상실되었을 때 절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그리고 올리브나무 양과, 소 모두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이 우리에게 사라질지라도 그 하나님이 여전히 살아계시다면 우리는 그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욥의 시험도 동일한 유형이라고 했다. 이 목사는 :욥도 동일한 시험을 받게 되었다. 받은 시험의 본질은 사단이 하나님께 욥을 가지고 도전한 내용이 무엇인가? 욥이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욥에게 주신 많은 축복 때문이 아닌가? 만일 욥에게서 그 모든 것을 빼앗아 상실하게 된다면 욥은 하나님을 배반할 것이다. 이전처럼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사단이 준 도전이었다"라고 했다.
이 목사는 "욥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을 시험하실 때 반드시 이 과정을 적어도 한번은 겪게 하신다. 우리에게 모든 것이 다 사라졌다 할지라도 하나님 그 분을 우리는 사랑할 수 있는가? 그 분을 기뻐할 수 있는가? 왜냐하면 언젠가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 그 분 앞에 서야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든 소유 심지어 사랑하는 가족, 나에게 주어졌던 모든 축복,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 그 분만을 바라보는 영혼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할 때가 오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조의 내용도 소개했다. 이 목사는 "인간의 제1되는 의무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 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인간의 참된 의무이다. 인간이 창조된 목적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가? 무엇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겠는가? 시편에서는 감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했다. 하박국은 하나님을 그 분을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각성 운동의 선구자 조나단 에드워즈의 아래글을 인용하기도 했다. "인간의 가장 적절한 행복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인간이 육신적인 출생으로 받은 것들로 하나님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다시 태어나야 하나님을 즐거워할 수 있다."
이 목사는 "저는 거기에 더하여 거듭난 영혼일지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을 통과하면서 이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삶을 경험하게 된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 일평생의 믿음의 삶은 하나님 그 분만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삶인가 그것을 훈련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 목사는 둘째로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이 담고 있는 믿음의 비밀로 "심판을 통해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기뻐했다"고 주장했다. 이 목사는 "하박국이 처음 왜 하나님께 질문을 던졌는가? 악에 대하여 심판하시는 것은 받아들이겠지만 왜 그 심판의 도구가 자신들 보다 더 악한 바벨론이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 목사는 하나님의 섭리를 깊이 있게 수용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로 그 뜻을 분류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목사는 하나님의 뜻에 단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첫째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이다.
이 목사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구원이라는 것이다. 회복이라는 것이다. 축복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재앙이 아니다. 우리에게 때로 우리의 죄에 대해 징벌하시고 심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허용적인 뜻이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구원이다. 회복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실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의 불순종 때문이다.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허용적인 뜻이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는 것. 바벨론에서 심판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다. 예레미야를 통해서도 말씀하셨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다. 그것은 둘째 단계인 허용적인 뜻일 뿐이다. 섭리적인 뜻일 뿐이다. 하박국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또 한 가지 뜻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시적인 뜻이 있이다"라고 했다.
마지막 단계인 지시적인 하나님의 뜻에 대해 그는 "이것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구체적으로 인도하시는 지시하시는 뜻이다. 예를들어 이 바벨론 심판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뭐라고 지시하셨냐하면 포로로 잡혀가라. 그것이 살 길이다. 그것을 지시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금 우리를 포로로 잡혀가라고 말씀하신 그런 예언은 하나님의 뜻일리가 없다. 그래서 예레미야를 핍박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이렇게 지시하셨다. 너희들이 그 바벨론과 대적하여 싸워도 죽을 것이다. 두려워 도망가도 숨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오직 살 길은 너희들이 순순히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시적인 뜻이다. 참 이해하기 힘들다. 그 상황에 우리가 있었다면 애국심이 불타오르는 사람은 목숨 걸고 나와 싸우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지시적인 뜻은 무엇인가? 포로로 잡혀가라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포로로 잡혀가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을 깨닫게 하신 것이다. 왜 우리가 이런 상황에 처해있게 되었는가? 그리고 하나님께서 왜 이 재앙을 허락하셨는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다시 돌아오게 하셔서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때로 이 하나님의 지시적인 뜻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이 목사는 "하나님의 허용적인 뜻을 깨달으면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왜 이렇게 하나님의 뜻이 이렇게 복잡하게 분류되는가?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의 불순종 때문에 죄악에 익숙한 우리의 습관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 목사는 이러한 섭리 가운데 행하시는 구원의 하나님을을 기뻐하는 하박국 선지자에 대해 "하박국은 이제 구원의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며 기뻐하게 되었다"며 "우리가 기뻐하는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에 익숙해지다보면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격과 기쁨이 점점 사라져 갈 때가 있다. 구원의 감격이 사라지는 것만큼 신앙의 위기가 없다. 구원의 하나님이요. 그것은 예수님 처음 믿을 때 신앙의 기초 과정에서 배우는 거 아닌가? 저는 이제 그 단계는 아니다라는 것만큼 위험한 신앙이 없다. 구원의 하나님이란 말. 구원이라는 단어 이면에 붙어 있는 의미는 나는 심판 받아 마땅한 존재,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길이 없는 존재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를 구원하신 그 구원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들어 있다.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기쁨을 잃어버렸다? 신앙의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목사는 "구원은 우리가 좀 더 나은 교양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죽어 마땅한 존재에서 다시 살아난 생명이 된 것이다. 구원의 하나님, 그 하나님을 기뻐하는 믿음이 우리에게 회복되기를 축원한다. 예수님을 왜 믿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유일한 구원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그 모든 심판을 다 담당하셨기에 그 아들 안에서 이미 심판하신 것으로 간주하시고 그 분의 의로움을 우리에게 덧입혀 주심으로 우리에게 새생명을 주시는 놀라운 구원. 이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전부다. 그것 외에 다른 교리는 없는가? 사실 없다. 우리가 믿는 바는 너무나 단순하다. 사람들이 너무 단순하기 때문에 무시한다. 잊어 버린다. 그리고 그 안에 거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의 믿음의 시작이자 전부는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심판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우리 일평생 우리가 묵상하고 그것을 기뻐하는 우리의 믿음생활이 되어야 할 줄 믿는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하박국 선지자의 믿음의 비밀로 "힘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을 기뻐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강건하게 해주신다는 것이다.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함으로 힘을 얻은 그 영혼의 발걸음은 이렇게 힘있는 발걸음이 된다는 것이다. 거리를 걷다보면 사람들의 발걸음 만으로도 이 사람의 영혼에 힘이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희망으로 가득한 사람의 발걸음과 절망에 사로잡힌 사람의 발걸음이 다를 것이다. 목적이 분명한 사람의 발걸음과 방황하는 인생의 발걸음이 다를 것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