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근 목사(삼일교회)가 27일 주일예배 설교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과 달리 간질 증세가 있는 아이를 치유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밝혔다. 이날 '너희 믿음이 작기 때문이다'(마17:14-20)이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송 목사는 "성경을 유심히 보면 강조점이 다르다. 마가복음의 경우 제자들이 묻는다. 우리는 어째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는가. 기도와 금식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그 말은 기도에 초점을 두었었다. 그런데 누가는 초점이 좀 다르다. 예수님이 그렇게 영광을 드러내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받으실 우주적 영광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그러면 남은 한 기자의 관점은 뭘까? 마태의 관점은 같은 사건을 보고 무엇을 드러내고 싶었고 강조하고 싶은 것일까? 믿음이 그 주제다. 믿음이라는 주제가 손에 들어오거나 만져지거나 잡히는 주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어려움이 있다. 마태가 밝히고자 하는 믿음의 실체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송 목사는 예수님이 귀신 들린 아이를 낫게 해주시기 전 제자들과 변화산에 올랐던 것을 짚었다. 그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무리가 산에서 내려다. 산위에서는 어떤 놀라운 광경이 있었는가. 예수님의 옷에서 빛이 나고 모세와 엘리야 대화를 나누는 어머어마한 광경을 목격했다. 베드로는 여기 텐트 셋 지어드릴테니까 여기 머물자고 했다. 하지만 산에서 내려올 때는 다 사라지고 감격도 황홀함도 신비한 장면도 다 사라지고 오직 예수만 보였다"고 전했다.
송 목사에 따르면 같은 시각 예수님이 부재 중인 상황에서 귀신 들려 고통 받는 아이를 낫게 하고자 찾아온 아이의 아버지는 남은 제자들에게 아이의 병고침을 부탁했던 것이다. 그는 "여기 간질병이라고 나오지만 사실은 귀신에 붙들린 아들을 가진 아버지라 그 뜻이다.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인간의 무능력의 종합적인 세트를 만나게 된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귀신에 붙들려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인생과 삶도 사는 게 아니었을 것 같다. 마침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왔는데 부재중이셨어요. 예수님께서 그 때 변화산상에서 엄청난 영광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선생님이 안계시니 남겨진 제자들에게 당신들이 내 아들 좀 고쳐달라고 한 것이다. 선생님 안 계신 틈에 우리가 어떻게 해보자. 데리고 온 아들을 놓고 제자들이 안수도 해봤겠고 뭐 다 해봤을 거 같은데 아이는 계속 아프고 상황은 변화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마침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온 것이다. 송 목사는 "아들의 아버지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는데 이때 예수님의 반응을 미세하게 살펴봐야 한다"며 "왜 제자들은 이 상황을 어찌하지 못했는가? 예수님의 첫번째 진단이 믿음이 없다. 믿음이 없는 결과는 패역한 세대다. 패역한 세대라는 말은 조금 종합적인 표현인데 피차가 레일 위를 잘 달려야 정상 궤도로 가는데 궤도를 이탈하면 열차 뿐 아니라 열차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인생이 종합적으로 다 망가지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믿음이 없으면 안된다. 여기서 믿음의 실체는 아직 모른다. 어쨌든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이렇게 지적을 하신다.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며 너희를 참으리요. 지금 이제 예수님은 3년가까이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쳤다. 더 이상 무슨 표적을 기사를 보여 줘야겠는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제자들의 상태다. 제자들을 향해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믿음이 없고가 어떤 부분을 지적하는 것인가.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그때부터 아이가 나으니라. 제자들의 질문이자 교회의 질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송 목사는 "어느시대 외형적으로나마 교회 부흥을 경험했던 세대가 있었는가? 어느 직장이나 그리스도인이 없는 곳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맞딱드렸다. 왜 우린 이 귀신들린 세상, 병든 세상을 바꾸지 못했는가? 우리가 가슴을치며 물어야 할 주제다. 이 광란의 세상 한 가운데 교회가 숲을 이루고 곳곳마다 성도들이 있는데 왜 세상은 아파만 가고 미쳐만 가는가? 예수님이 무슨 대답을 하고 계신가?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다. 이때는 믿음이 작은 까닭이다. 앞에는 믿음이 없고 믿음이 없고의 동의어가 믿음이 작은거다. 이것을 선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해서 유비를 쓰셨다"고 했다.
이어 "만일 너희에게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더라도 그만한 믿음도 없다는 것이다. 믿음이 없다.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3년 동안 이들이 들었던 말씀, 전부 무엇인가. 믿음은 어디서 나오는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3년 동안 들었던 제자들이 간접적으로 들은 것도 아니고 귓구멍에 직접 들려준 말씀. 오리지널 말씀을 듣고도 이런 말씀을 듣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송 목사는 말씀을 안들어서가 문제가 아니라 말씀을 행함으로 결부시키지 못해서였음을 강조했다. 그는 "말씀을 안들어서가 아니고 그 말씀을 듣기는 들었는데 믿음과 결부시키지를 못한 것이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1:22). 듣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을 속이는 자다. 그 말씀이 어떻게 녹아지고 삶 속에 육화되어야 하는가? 체득되어야 하는가? 행하는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라고 하셨다. 결국 믿음과 결부시키지 못했던 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라고 했다.
아울러 그는 "듣기는 듣는데 공부도 많이 하는데 그 말씀을 가지고 순종의 자리까지 체득하지를 않는 것이다. 머리만 커지고 귀만 나팔귀가 되었다. 이렇듯 몸으로 치자면 언발란스가 나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예수님께서 믿음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유비를 사용하신 점도 들었다. 송 목사는 "성전세에 대한 내용을 마무리겸 볼 필요가 있다. 반세겔 받는 사람은 성전세 걷는 사람들이다. 이 유래는 출애굽기 30장부터 유래가 된다. 반세겔을 요구하거나 드리는 것은 율법이 규정한 것이다. 속전세다. 성인 남자들, 무릇 계수에 드는 자마다 성소의 화폐 단위인 세겔. 사람마다 반세겔을 드리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성전세 받는 사람이 베드로에게 물었다. 이보쇼 당신 선생은 왜 안내는가? 베드로가 낼 것이다. 그랬다. 예수님께 물어보지도 않고"라고 했다.
이어 예수님께서 문답을 통해서 베드로에게 가르침을 주신 부분을 짚었다. 그는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를 받느냐 아들이냐 타인이냐? 세상 임금들은 세금을 자기 아들에게 받냐 타인에게 받냐고 물으신 것이다. 타인에게 받습니다.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성전은 누구의 집인가? 아버지의 집인데. 세금을 낼 필요가 없는게 아닌가. 이게 실은 우리 신앙의 맹점이다. 고백과 실력은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가 고백을 했다고 실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이상하게 믿음 얘기를 하시다가 너희가 겨자씨만한 믿음도 없구나. 갑자기 성전세 이야기로 아버지와 아들의 주제로 넘어간다. 그러면서 믿음을 설명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인간적인 확신을 가지고 밀어부쳐서 업적을 만들고 실력으로 만들어내는가. 그게 아니다. 믿음은 아들로 사는 연습이다. 사복음서를 뒤져보면 예수님의 첫걸음에서부터 마지막 십자가에서 죽으실때까지 전부 아들로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삶이었다"고 했다.
송 목사는 믿음이란 자기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연습을 의미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왜 갑자기 믿음의 주제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전환시켰을까. 왜 아들을 복수로 썼을까? 너희들도 나와 함께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자리로 우리도 초대해서 너희들도 나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딸로 살아라. 자녀로 사는 연습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삶의 걸음이어야 한단 말이다. 내가 어느날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하나님의 딸이다. 느낌과 팩트가 들어오는 순간 그때야 자유로움이 일어난다. 신앙의 자유로움이 일어난다. 그게 일어나기 전까지는 율법의 노예로 살게 된다. 신앙이 부담이 되고 족쇄가 된다. 그런데 아들은 자유를 말해주는 것이다. 신자의 삶은 복잡할 거 없다. 아 내가 아들로 살아야겠구나. 딸이라는 인식이 제대로 들어오는 순간 어떤 사건 앞에서도 당당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단순한 인간적 당당함이 아니다. 비교당할 이유도 없고 비교할 이유도 없다.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고 딸인데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를 찾는 이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러나 그들이 실족하지 않기 위해서 낚시하면 첫 물고기 입에 한 세겔이 있으니까 그거 잡아다가 그거 주어라. 내가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서 너를 구속하고 건지기 위해서 나도 똑같이 성전세를 드린다. 진짜 성전세는 예수님 자신이다. 속전. 죄를 대속하는 값. 예수님이 친히 속전으로 오신 것이다. 너와 나를 위하여. 그것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하늘 아버지의 뜻이었고 그 뜻에 예수님께서는 기꺼이 자기의 몸을 드리며 순종하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