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의 향유와 산업의 방향은 사회적 명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데, 이것들은 사회의 목적에 대한 서비스의 성공에 의해 평가되는 기능이 아니라 그 자체의 효력을 지키는 권리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 원칙은 지적으로는 의심받는다 할지라도 여전히 사회조직의 실제적 기초다. 이 원칙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가장 일관되게 보여주는 증거에조차 이것이 얼마나 느리게 굴복하는지는 전시 기간에 경제행위에 부과되는 규제에 대해 재계의 우두머리들이 취한 태도에 나타난다.
리처드 헨리 토니 - 탐욕사회와 기독교정신
율법과 선지자, 그러니까 구약성경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는 거예요. 이걸 오늘날 교회에서 황금률이라고 가르치는데 저는 내가 대접받고 싶은 걸 남에게 대접하는 게 왜 율법이요 선지자인지 참 이해가 안 됐었습니다. … 기브 앤 테이크가 어떻게 사랑일 수 있습니까? … 남이고 원수였던 우리에게 대접을 받고 싶으셨던 예수님이 우리를 먼저 대접하셨습니다. 우리의 사랑을 원해하셔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어요.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을 원하셔서 우리에게 예수님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예수님을 주셨단 말입니다. 이것이 법입니다!
김민규 -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고독을 끌어안아야 한다. 고독을 통해서 들려오는 내면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사람들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는 시간, 하나님의 음성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사람들과의 잡담 끝에서 밀려오는 것은 피곤함과 권태다. 채워짐보다 쏟아 냄으로 공허를 불러온다. 고독은 결핍이 아닌 풍요를 경험하는 시간이다.
고독은 불편한 칩거(蟄居)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는 통로(通路)다. 고독의 경험은 처음에는 고통스럽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풍성해진다. 고독은 단순히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동거다.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상처 입은 영혼들이 많아져 가고 있다. 외로움을 거부하지 말고 끌어안아야 한다. 외로움의 끝에서 다가오시는 주님을 깊이 만날 때 외로움의 수혜자가 된다.
이규현 - 광야, 창조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