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리머라는 남자아이가 1965년 태어났다. 불행하게도 생후 8개월 때 포경수술 부작용으로 음경에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을 입었다. 당시 미국 존스홉킨스대 정신과에서 근무하던 임상심리학자 존 머니(1921~2006) 교수는 리머가 22개월 됐을 때 부모를 설득했다. 이참에 아예 성전환 수술을 해 주고 여자아이로 키우자는 것이었다.
당시 머니 교수는 1950년대 이래 ‘생물학적 성과 역할로서의 젠더’라는 표현에서 처음 젠더라는 말을 제안했다. 그는 젠더가 사회적 구성(social construct)으로서 어릴 때 교육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젠더 이론을 보완하기 위해 성전환 시술을 통해 성(젠더) 정체성을 인위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브루스는 음경과 고환 제거 수술을 받았으며, 브렌다라는 이름의 여자아이로 컸다. 브렌다는 자신이 여자인 줄 알고 자랐으며, 사춘기 때 성호르몬을 투여받아 유방도 커졌다.
머니 교수는 10여년간 브렌다와 그의 쌍둥이 동생인 브라이언의 성장 과정을 비교 관찰했다. 일란성 쌍둥이였던 두 사람은 같은 유전자를 가졌고, 같은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집안에서 자랐으므로 좋은 비교 연구대상이 됐다.
머니 교수는 매년 두 사람을 검진했다. 그리고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며 정상 아동의 성전환 수술과 양육으로 젠더가 변할 수 있다는 것(gender fluid)을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브렌다는 TV 등에 출연하는 등 머니와 함께 유명해졌다. 이에 따라 미국 전역에선 성기 장애가 있는 소아에 대한 성전환 수술이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그러나 브렌다는 사춘기 때 자신의 남성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남자 같은 행동으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남자 같은 행동이란 브렌다의 뇌가 이미 더 어릴 때 남성호르몬으로 남성화됐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자신의 정체성 혼란에 빠지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브렌다가 15세가 된 어느 날 아버지는 그의 비밀을 알려줬다. 브렌다는 충격에 빠졌고 그때부터 남자로 살기로 했다. 그는 다시 데이비드라는 이름을 가졌다. 21세 때 남성호르몬을 투여받고, 유방을 제거하고 음경성형술을 받았다. 25세에 세 아이의 여성과 결혼했다. 그러나 머니 교수는 자신의 연구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비밀로 했다.
32세 때 데이비드는 다른 사람이 자신처럼 유사한 수술을 받고 겪게 될 후유증을 막고자 하와이대의 성심리학자인 밀턴 다이아몬드에게 자신의 비밀을 공개했다. 그의 이야기는 1997년 롤링 스톤(Rolling Stone) 잡지에 폭로됐다. 그는 머니 교수 때문에 심리적 트라우마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데이비드는 어렸을 때 머니 교수가 쌍둥이 형제인 브라이언과 서로 음부를 관찰하고 상호 성교하는 행동을 흉내내도록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심지어 그런 장면을 주변 연구원들이 보게 했고 사진까지 찍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머니 교수는 건강한 성인 젠더정체성을 위한 ‘소아기 성적 연습 놀이’(childhood sexual rehearsal play)라는 치료방법이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그런 경험이 고문이나 학대였다고 주장했다.
그의 동생 브라이언은 조현병(정신분열병)을 앓다가 36세 때 자살했다. 데이비드도 38세 때 우울증과 부부불화, 경제적 문제로 자살했다. 리머의 부모는 리머 형제의 불행이 머니 탓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머니 교수는 이미 성 전문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다. 관련 학계에서 그는 성역할(sex role)과 구별되는 젠더 역할(gender role)이라는 개념을 창안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성전환 실험 실패가 1997년 폭로됨에 따라 그의 연구는 국제적으로 악명 높은 스캔들이 됐다.
머니 교수는 이런 비난이 우파매체 또는 안티페미니스트 때문이라 항변했다. 그러나 성전환의 실패를 제때 정식 보고하지 않은 것은 윤리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그의 젠더이론이 생물학적 근거가 없는 허구로 밝혀졌지만 여전히 한국사회에 통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민성길(연세대 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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