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틴이 정의한 ‘찬송의 3요소’(‘찬미’ ‘노래’ ‘하나님께 드려짐’) 중 세 번째 요소는 ‘하나님께 드려짐’입니다. 아무리 좋은 가사, 아무리 훌륭한 멜로디라 하더라도 하나님께 드려지지 않으면 찬송이 될 수 없습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예배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만남이요, 하나님과의 대화이기에 우리가 부르는 노래가 독백, 독화(獨話)라면 찬송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없는 교회, 하나님 없는 예배, 하나님 없는 찬송에 대하여 생각해 본 일이 있습니까. 찬송은 마땅히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 하나님께 드려져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링카르트(M.Rinkart)의 독일찬송 ‘다 감사드리세’(찬 66장)를 살펴봅시다.
“1.다 감사드리세 온 맘을 주께 바쳐/ 그 섭리 놀라워 온 세상 기뻐하네/
예부터 주신 복 한없는 그 사랑/ 선물로 주시네 이제와 영원히//
2.사랑의 하나님 언제나 함께 계셔/ 기쁨과 평화의 복 내려주옵소서/
몸과 맘 병들 때 은혜로 지키사/ 이 세상 악에서 구하여 주소서//
3.감사와 찬송을 다 주께 드리어라/ 저 높은 곳에서 다스리시는 주님/
영원한 하나님 다 경배하여라/ 전에도 이제도 장래도 영원히”(찬 66장)
찬송 시는 시작부터 “다 감사드리세 온 맘을 주께 바쳐”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말 번역은 “주께”가 한참 뒤에 있지만, 원시(原詩)인 독일어(Nun danket alle Gott)와 이를 번역한 영어(Now thank we all our God)는 처음부터 하나님을 부릅니다. 2절에서도 “사랑의 하나님”을 부르며 하나님께 평화를 기원하고, 3절에서도 “영원한 하나님”, “저 높은 곳에서 다스리시는 주님”을 찾으며 “감사와 찬송을”, “전에도 이제도 영원히” “다 경배하여라”라 노래합니다.
이제는 복음가의 예로, 톰프슨(W.L.Thompson)의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를 살펴봅시다.
“1.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 음성 부드러워/
문 앞에 나와서 사면을 보며 우리를 기다리네//
(후렴)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 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 예수 앞에 오라//
2.간절히 오라고 부르실 때에 우리는 지체하랴/
주님의 은혜를 왜 아니 받고 못들은 체 하려나//
3.세월이 살같이 빠르게 지나 쾌락이 끝이 나고/
사랑의 그늘이 너와 내 앞에 둘리며 가리우네//
4.우리를 위하여 예비해 두신 영원한 집이 있어/
죄 많은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영접해 주시겠네”(찬 528장)
후렴에서 “오라! 오라! 오라”, “죄 있는 자들아”는 누구를 향하여 부릅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향하여 “간절히” 부르며 기다리십니다. 이같이 사람을 향한 노래는 찬송이라 하지 않습니다. 찬송은 하나님을 향하고(Godward), 복음가는 사람을 향합니다.(man ward)
복음가는 가사 내용과 음악의 분위기에 따라 가스펠 송(Gospel song)과 부흥가(Revival song)로 명칭을 달리 부르기도 합니다. 가스펠 송은 대부분 불신자들이 회개하고 참회하는 어둡고 슬픈 분위기여서 다분히 감상적입니다.
예컨대, 크로스비(F.J.Crosby)의 ‘인애 하신 구세주여’(279장)나 커크패트릭(W.J.Kirkpatrick)의 ‘나 주를 멀리 떠났다’(280장)를 보십시오.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가 비오니/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후렴)주여! 주여! 내가 비오니/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279장, 1절)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 나 죄의 길에 시달려 주여 옵니다//
(후렴)나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주여 나를 받으사 맞아 주소서”(280장, 1절)
부흥가는 약한 믿음을 일으켜 세우는 고무적인 내용이다 보니 씩씩하고 경쾌합니다. “성령이(성령이) 오시네(오시내)”식으로 메기고 받아 힘이 돋고 군가같이 활기가 넘칩니다.
예컨대, 생크스(D.M.Shanks)의 ‘내가 매일 기쁘게’(191장)를 보십시오.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요//
내가 주의 큰 복을 받는 참된 비결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후렴)성령이(성령이) 계시네(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찬 191장, 1절)
찬송가와 복음가는 가사의 성격도 서로 다릅니다. 찬송가는 성서적인데 비해, 복음가는 체험적입니다. 찬송가의 가사와 내용은 성경을 닮았습니다. 성경이 공동체적이듯이 찬송도 공동체적이고 객관적입니다. ‘우리’ ‘함께’ ‘다’란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Wir Lieder)
예컨대, 좌르디니(F.de Giordini)의 ‘전능왕 오셔서’(10장)를 보십시오.
“전능왕 오셔서/ 주 이름 찬송케 하옵소서//
영광과 권능의 성부여 오셔서/ 우리를 다스려주옵소서”(10장, 1절)
이에 비해, 복음가는 ‘나’란 단어가 많습니다.(Ich Lieder) 구원과 복음은 개인적이니까요. 찬송가가 공동체적이고 객관적이라면, 복음가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입니다.
예컨대 로우리(R.Rowry)의 ‘나의 죄를 씻기는’(252장)를 보십시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다시 정케 하기도/ 예수의 피 밖에 없네//
(후렴)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 밖에 없네”(252장, 1절)
복음가가 체험적이며 간증적이다 보니 원문이나 번역 가사에 자칫 이단 교설이 침범할 우려가 많습니다. 그래서 가사는 철저히 성경이라는 거울에 비쳐 보고, 전문가의 신학적인 검증이 필요합니다.
후렴(後斂, refrain)은 전도집회나 부흥집회에서 생겨난 복음가 양식으로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캠프 집회에서 설교 후에 복음가를 부르면서, 반복되는 키워드와 매절의 후렴은 노래하는 이의 회개와 결단을 감성적으로 촉구하는 최고 최선의 방법이니까요. 자원하여 조직된 집회 성가대가 여러 절의 앞부분을 불러 회중이 익숙하도록 이끌고, 이어 회중들이 후렴을 부르는 것입니다. 출판된 복음가 악보들을 보면 후렴 전의 멜로디는 건반악기 반주의 독창이나 중창(duet)이 많습니다.(우리 찬송가는 독창이나 중창을 모두 혼성 4부로 편곡) 그래서 후렴을 코러스(Chorus)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찬송가는 후렴이 없습니다. 우리 찬송가에 ‘예배 찬송’으로 분류된 ‘거룩, 거룩, 거룩’(8장)부터 ‘거룩하신 주 하나님’(42장)까지를 살펴보면 거의 후렴이 없습니다. 찬송가는 4분음표(♩)나 2분음표 중심인 리듬과 가사 1음절에 음표 1개인 음절식(音節式, syllabic style) 가사로 예배의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인데 반해, 복음가는 점음표나 당김음(♪♩ ♪) 같은 자유로운 리듬과 1음절 가사에 2-3개의 음표인 네우마식(neumatic style) 등 가사 양식의 제한이 없습니다.
찬송가는 예배를 위한 노래이고, 복음가는 집회를 위한 노래입니다. 선곡(選曲)도 이에 따라 주일예배의 첫 찬송은 ‘예배 찬송’(8-48장, 63-77장)으로, 복음가는 설교 후나 마지막 순서가 바람직합니다.
3회에 걸친 찬송가와 복음가의 비교는 한국찬송가공회 편 ‘21C 찬송가’를 중심으로 다룬 것으로, ‘경배와 찬양’(Worship music)이나 CCM은 이 카테고리에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 이 글은 필자가 진행하는 유튜브 ‘김명엽의 찬송교실’ 동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