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의 소논문 ‘포스트 코비드 시대, 사역의 변화에 따른 교회 예배와 음악’을 연재합니다.
오늘날 교회 예배에 주는 도전들
4) 현대 교회 예배에서의 찬양
공식적인 회중 찬양의 모체가 되는 미리암과 백성들이 드린 찬양, 그리고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70인이 드린 찬양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을 꾸미려 하거나 인위적으로 만들어 찬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이 드린 찬양의 내용과 그 중심은 경배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기사를 송축(축복) 하는 가사가 있었다. (출15:20-21, 출24:1) 이와 같은 찬양의 모습은 구약에서 언급한 최초의 회중 찬양으로써 오늘날 현대 교회의 예배 찬양이 나가야 할 바른 길을 제시하는 중요한 단서로 삼을 수 있다. 지난 글에 이어 두 번째로 오늘날 현대 교회 찬양의 현실을 진단하고, 예배찬양의 바른 방향을 제시해 찬양의 본질을 확인하고자 한다.
(2)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이한 일들을 자랑하며 축복을 드러내는 찬양
오늘날 예배음악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탐미주의(Aestheticism)에 물들어가고 있다.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려고 복잡한 리듬을 구사한다. 아름다움을 더해 예술의 신비로움을 보여주려고 기본 화성의 단순미를 벗어나, 화려하고 복잡한 화성(Harmony)을 더 많이 구사하려고 한다. 아울러 웅장하고 화려한 연주를 위해 다양한 악기를 등장시켜 오케스트레이션 (Orchestration)을 만들고 있다. 굉음에 가까운 악기들의 소리에 때로는 날카로운 소리를 더해가며 오늘날 예배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소리를 만들어간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음악과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져 가게 한다. 악기들의 소리에 파묻혀 찬양대의 찬양에 담긴 가사를 놓치게 되거나 또 회중찬양에서는 반주 소리가 너무 커 회중의 소리를 덮어버린다. 찬양 안에 담겨진 가사도 놓쳐버리게 된다. 이러한 요소들이 회중들로 하여금 찬양하게 하기 보다는 그저 감상하게 만들고 평가하게 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죤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그가 쓴 기독교 강요에 "우리는 곡조에 더욱 귀를 기울이다가 가사의 영적 의미에는 마음을 덜 기울이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음악이란 하나님을 높여드리기 위한 도구로만 쓰여질 뿐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찬양의 가사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기사들을 고백한 내용을 함께 동감하며 송축하는 찬양이 되어야 하는데, 점점 더 복잡해져 가는 음악과 악기의 반주 소리들에 정작 드러나야 할 가사를 가리우게 된다. 그것이 바로 목적과 수단을 바꾸게 하는 요인이 된다.
서양음악의 역사를 통해 교회음악의 발전사를 보면 르네상스 (Renaissance period) 가 되면서 9세기 말부터 시작된 다성음악이 꽃을 피우며 크게 발전되는 시기를 맞이하게 됐다. 그 요인은 중세 기독교의 절대 신본주의 규범에서 벗어나 고대 그리스의 인간성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사상으로 복귀하게 되면서 문화 예술에 있어 일종의 혁명과도 같은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종교적 속박에서 벗어난 인간성 회복 이라는 전제하에 창의적이고 인본주의적 가치관을 추구하며, 창작 예술을 자유롭게 펼치게 되었던 것이다.
다성음악이 시작 된 이후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약 5세기(11-16C)에 걸쳐 노틀담 악파(Notre Dame School), 부르고뉴 악파(Bourgogne School), 그리고 플랑두르 악파 (Fladour School) 의 음악인들이 다양한 음악적 기법들 (디스칸투스 , 클라우즈라 (Discantus &Clausula) 아이소리듬(Isorhythm), 칸투스 펄미스(Cantus Firmus), 콘트라 팍툼(Contrafactum), 페로디(Perody,) 모방 대위법 (Imitation Counter point) 등을 개발 하여 화려한 음악으로의 탐구가 계속 되었다. 두 개의 성부로 시작한 다성음악이 여섯 성부,팔 성부로까지 확대하며 소위 아름다움을 추구한 예술의 바벨탑을 계속 쌓아나가게 됐다.
이렇게 발전하는 예술세계에 반해 예배음악의 본질과 목적은 점점 더 퇴색되어 갔다. 화려한 음악에 대한 추구와 관심은 높아진대 반해 가사(Text)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졌다. 당시 대부분의 작곡가들은 가사의 의미를 담아 악상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지 않고, 먼저 음악을 만들어 곡을 완성하고 거기에 가사를 적용하는 작곡기법을 사용했다. 이들에게 있어 작곡은 화려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고, 그 안에 담았던 가사는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급기야 카톨릭 교회에서는 반 종교 개혁(Counter Reformation 1545-1563년) 을 통해 이와 같은 이슈를 하나의 문제로 삼게 되었다. 당시 교황 피우스 4세(Pope Pius IV1499-1565)는 트렌트 종교회의(Council of Trent) 에서 세속화된 교회 음악의 문제점을 제시했다. 그는 교회음악이 샹송을 페러디하고 세속 선율을 정선율에 사용(Cantus Firmus)한 점, 악기의 무모한 사용, 가사를 잘 알아듣지 못하도록 복잡하게 음악을 만드는 모방 대위법(Imitation Counterpoint) 등을 문제로 꼽았다. 여기에 가장 큰 이슈로 지적 된 것이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게 만드는 다성음악이다.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일시적이었지만 다성음악이 폐지되고 한동안 단선율의 음악만을 사용하게 됐다.
이 같은 교회음악의 역사를 통해 오늘날의 예배음악 바라보게 된다. 이 시대 예배 음악이 어찌보면 르네상스 예술의 찬란함 보다 훨씬 더 화려해져 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어떻게 하면 오늘날의 예배음악이 순수하게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이한 일들을 자랑하며, 축복을 드러내는 찬양이 될 수 있는지 깊은 고민이 요구되는 시기이다. 이를 위해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오늘날 예배음악에서 음악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축복하고 삼위 하나님을 송축하는 가사를 위한 도구로만 쓰여져야 한다. 너무 복잡한 리듬이나 하모니를 구성하려 노력하지 말고 단순함으로 돌아가야 한다.
쟝쟈크 본 알멘(Jean-Jacpues von Allemn1917-1994) 은 그의 책 Worship: Its Theology and Practice 에서 "예배를 아름답게 하는 것은 풍부함이 아닌 정결함이다. 참 아름다움이란 정화의 도장이 되고, 자기 중심적인 면을 거부하는 것이다." 라고 이야기 한다. 이것은 심미적, 자기 중심적 미사여구, 비정상적 성장 등 오늘날 예배 찬양이 가진 문제점을 지양하고 예배 찬양의 우아함과 조화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할 것이다.
둘째, 오늘날 예배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축복하고 송축하는 그 외침은 피조물인 인간의 소리 (Human Voice)가 우선되어야 한다. 예배에서 드리는 모든 악기들의 소리가 너무 크다. (물론 악기 혼자 연주할 때는 다른 것이다.) 굉음에 가까운 전자악기들. 그것을 조절하는 음향 기술로 더 크게, 더 크게 만들려 한다. 이런 소리에 묻혀 인간의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원하심은 모든 예배자들 자체의 소리가 우선이지, 인간들이 현대 문명의 기술에 의해 만들어 놓은 악기 소리들이 우선이 아닐 것이다.
베리 리쉬(Barry Liesch) 는 그의 책 The New Worship 에서 "예배음악의 본질과 기준은 어떠한 외적인 형식과 심미적인 내용, 혹은 어느 양식적인 탁월함을 근거로 한 것이 될 수 없다. 아무리 인간의 고상함과 고귀함을 느끼게 해주는 음악이라 하더라도 이들 자체가 예배자로 하여금 예배를 더욱 영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목적과 수단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문명의 발전에 의해 아무리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지라도 분명 인간의 숨소리와 더불어 생기가 들어있는 그 생명의 울림. 그 소리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실 것이다. 비록 연륜이 깊어 노쇠해져 가는 푸석푸석한 쉰 소리가 되어갈지라도 말이다.
미리암과 백성들이 드린 찬양, 그리고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70인이 드린 찬양 속에서 볼 수 있는 찬양은 인위적인 꾸밈이 없었다.
C.S. 루이스는 피고석의 하나님 이란 책에서 "소유하고픈 충동에 절대 복종하는 것은 탐욕이다"라고 이야기 한다. 오늘날 예배음악이 너무나 예술적 아름다움의 깊이를 소유하고픈 탐욕에 빠져서 그 신비로움에 절대 복종하다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음악의 본질을 놓치는 것은 없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계속)
윤임상 교수(월드미션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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