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진리의 수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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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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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균 목사

본문 : 사도행전 17장 16~23절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살아온 환경과 전혀 다른 곳에 가게 되면 아무래도 낯설어지고 주눅 들게 마련이다. 대인 관계 속에도 ‘낯을 가린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은 이만저만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그 상황을 회피하거나 도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바울은 누구를 만나던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흔들리지 않는 일관된 모습으로 대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나? ‘진리의 수호자’라는 정체성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17장의 전반부애서 바울은 자신을 해하려는 유대인들 때문에 아덴으로 피신했다.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로, 데살로니가에서 베뢰아로 옮겨지는 상황은 너무나도 급진적이었다. 너무 다급하고 위험한 일이라서 전도일행은 먼저 바울만 아덴으로 피신시킨 상황이었다. 그리고 난 그 뒤에 디모데와 실라가 뒤 따라갈 예정이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아덴에 도착하고 난 뒤에 일어난 일이다. 우리가 잘 알듯이 아덴은 지금의 아테네 도시로 교육, 문화, 과학의 중심지였다. 아테네 도시는 19절에서 말하는 ‘아레오바고’ 지역을 말하는데 아레오바고는 “아레스의 언덕”이라는 말이다. 아레스는 헬라어 “전쟁의 신”이라는 의미로, 역사적으로 이 지역은 전쟁이 끊어지지 않는 곳이었다. 시간이 지나 전쟁이 없는 시절에는 여러 철학자들이 논쟁을 벌였던 곳으로 바뀌기도 하였다. 특별히 아테네는 철학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진 도시였는데 그 대표적인 학파가 18절에 나오는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였다. 에피쿠로스학파는 BC 3~4세기 에피쿠로스가 창시한 것으로 선은 쾌락에서 온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쾌락을 즐길 때 고통과 죽음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학파가 있었는데, 스토아학파이다. 스토아학파는 같은 시기에 제논이 주장한 것으로 이성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가장 선한 삶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이성적인 판단과 생각이 이상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들은 상반된 주장은 끊임없이 논쟁을 벌여 왔던 것이다.

이러한 도시에 바울이 들어가게 되었다. 바울은 아덴에 들어가자마자 격분했다. 철학 논쟁을 벌이는 그들의 사람들의 모습이나 철학에 물들어 진리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확한 이유는 23절에 나온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그곳에 우상숭배에 빠져 있던 아덴 사람들을 모습을 지적한 것이다. 철학적 논쟁, 사상의 다툼의 근본적인 원인은 우상숭배의 문제로부터 나왔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주되심을 인정하지 않고 살기 때문에 각자 자기 소견대로 우상을 섬겼던 된 것이다. 아테네는 철학의 중심지이기도 하지만 신화의 중심이기도 했다. 때문에 웅장한 신전들, 수많은 신의 형상을 보면 곳곳에서 제사가 드려졌다. 바울은 그들을 무덤덤하게 바라볼 수 없었다. 가슴에서 불붙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곳에서 예수의 부활을 가감 없이 전했던 것이다. 이러한 예수의 부활 메시지는 저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19절) 그들은 말씀을 그들이 논쟁하는 철학사상이나 교훈으로만 이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전혀 흐트러짐 없었다.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복음을 전하였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사람도 가라지 않았다. 데살로니가나 베뢰아에서 처럼 전도 팀이 함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덴에서는 혼자 있기에 더 위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그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진리를 전하였던 것이다. 어떻게 가능했는가? 진리를 지키는 정체성이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정체성 혼란의 시대이다. 성에 대한 정체성도 무너졌다. 남성과 여성의 정체성이 무너졌다. 동성애, 퀴어 축제를 보아라. 또한, 가정도 무너졌다.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자식을 부모를 죽여도 죄의식이 없다. 교권도 무너졌다. 종교에 정체성도 무너지고 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으로 천국에 이르기 위해서 당신의 종교와 우리의 종교가 다 맞다고 하자라고 한다. 우리는 북한 인권을 위해서 타협할 수 있다. 아이티 가난을 위해서 손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수 생명, 진리와 복음은 양보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 많이 생명이심을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려고 몸부림칠 것이다. 이때 우리는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정체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 내게 익숙하지 않고 적대적이기까지 한 한 문화에 들어가서라도 그곳에서 단 사람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무가치한 것을 추구하다가 무의미한 죽음을 맞이한다. 참 진리를 소유한 우리가 저들을 향해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떤 행동을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홍석균 목사(한성교회 청년부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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