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강의로 유명한 김지윤 소장의 강의를 재미있게 들은 적이 있다. 소개팅을 많이 하는데 에프터를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문제는 경직이다. 상대가 괜찮을수록 경직된다고 한다. 경직이 되면 긴장이 돼서 횡설수설하게 된다. 묻는 말에도 대답을 못 하고 소통의 부재가 생겨, 대화가 재미없어지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소개팅할 때 남자를 만나러 간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동성을 만나러 간다고 생각하란다. 교회 청년이나, 편의점 동생하고 얘기하러 간다고 생각하면 편하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매력은 자연스러움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도 저도 안되면 반응만 잘해도 좋단다. 상대가 와서 누구 때문에 힘들었다 그러면 잘 받아주란다. 반응만 잘해도 에프터 들어온다는 것이다. “세상에 저런 얘기를 소개팅에 나와서 하다니….” 이러지 말고, 그냥 웃어주고 반응해주라는 것이다. “아~그랬어요. 왜 그런 거예요.” 받아주면서 추임새를 넣어주라는 것이다. 너무 많은 말을 하면 실수할 수 있으니, 소개팅은 짧게 만나고 첫인상의 느낌을 좋게 주는 게 필요하다.
소개팅을 할 때도 상대의 마음을 얻는 원리가 있다. 소개팅에도 사람의 마음을 얻는 원리가 있는 것처럼 복음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작동되는 원리가 있다는 것을 아는가? 복음은 말 그대로 복된 소식이다. 왜 그럴까? 복음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복음의 담긴 은혜가 작동되는 원리를 알고, 그 원리에 주목해서 살아간다면 복음은 우리 인생에 가장 복된 소식이 될 것이다.
갈라디아 교회 안에 은혜의 복음을 떠나 율법 아래에 있고자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바울은 율법을 의존하는 자들에게 복음의 원리를 깨우치고 있다. 거짓 교사들을 향한 바울의 가르침 속에, 우리가 배워야 할 복음의 원리가 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복음의 원리는 무엇일까?
먼저, 우리는 약속을 저버려도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이다. 바울은 거짓 교사들에게 성경 역사를 통해 복음의 원리를 깨우치고 있다.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22절).
유대인들에게 가장 큰 자랑이 있다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자손, 이스라엘 민족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약속을 주신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12:2)”. 그런데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고 사라도 불임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지 10년이 지나도 아이가 없었다. 그래서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제안을 한다. 자신의 몸종인 하갈과 잠자리를 해서 대를 이어 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마엘이 태어났다.
그 후로 14년이 지나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었을 때 불임이었던 사라를 통해 또 한 명의 자식이 태어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창21:1). 무슨 말이 반복되는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가 반복된다. 여호와께서 말씀대로 사라를 돌보셔서 이삭이 태어난 것이다.
바울은 이삭과 이스마엘의 출생에 관한 차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23절). 여종인 하갈을 통해서는 육체를 따라 났다. 육체를 따랐다는 것은 당시의 관습을 따랐다는 것이다. 세상 관습에 따라 아이를 낳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아니었다. 세상적인 가치로 육체를 따라 진행한 것이다.
그러나 자유 있는 여자. “사라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다.” 100세 가까이 되는 사라에게 불가능한 일이 하나님의 약속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은 것은 아브라함의 공로가 아니었다. 아브라함은 육체를 따라 세상적인 방식으로 이스마엘을 낳았다. 하나님의 뜻과 어긋난 행동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아브라함에게 이루어 주셨다.
고등학교 다닐 때 정부에서 적금을 장려하기 위해서 학교를 통해 은행에 적금을 들도록 한 일이 있다. 그래서 매달 1-2만 원씩 학교에 적금을 해서 졸업할 때 목돈을 주는 것이다. 당시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이 늘 부족했다. 그래서 부모님이 주시는 돈을 매달 받아서 적금을 든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품위유지 비용으로 사용했다. 친구들 사이에는 일종의 관례였다. 관례를 따라 용돈을 유용한 것이다. 대입 시험이 끝나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부모님께 사용한 돈을 드리면 되는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대입이 끝나고, 신나게 놀다 보니까 아르바이트한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결국 나의 만행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어머니가 불러 놓고 야단을 치시는데, 그렇게 마음 아프게 우시는 모습을 처음 봤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아들이 자신을 3년이나 속여왔다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하셨다. 나는 그제야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아들을 믿어온 부모님을 배신하고 너무나 큰 실망을 안겨드린 것이다.
나는 부모님의 사랑과 믿음을 완전히 저버렸다. 그러나 부모님은 불의한 나를 용서해 주시고, 나의 배은망덕한 행동과 상관없이 나를 사랑해 주시고 용납해 주셨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어긋난 행동을 너무나 많이 하며 살았다.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리고, 인간적인 생각과 계획을 따라 행동할 때가 많았지만 주님은 우리의 행동과 상관없이 우리를 용납하시고, 사랑하시며, 우리를 향한 구원의 계획을 성취해 주셨다. 복음 속에 담긴 원리가 무엇인가? 우리는 신실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신실하게 우리를 향한 구원을 이루어 주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해 주신다는 것이다.
최철준 목사(나주글로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