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가 10개 있다면 어느 것부터 먹을 것인가? 어떤 사람은 가장 예쁘고 맛있어 보이는 것부터 먹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상하기 직전인 것부터 먹으려고 할 것이다. 가장 좋은 것부터 먹는 사람은 항상 최고의 사과를 먹는 것이고, 그래서 이런 성격의 사람은 자신의 선택에 만족도가 높고 모든 일에 자신의 선택이 옳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더 나가서 항상 좋은 것을 누릴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에 반하여 가장 나쁜 것을 먹는 사람은 아끼고 절약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항상 맛없고 나쁜 것만을 먹게 되고, 사과뿐만 아니라 다른 일상에서도 비슷한 선택을 해서 삶의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말에 공감이 되어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어린 시절 사과 중에서 가장 좋은 사과만을 골라 집어서 혼났던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괜히 야단맞은 것 같다고, 억울하다고 불평을 했다. 어머니는 그 이유를 설명하셨는데, 어머니의 이야기는 나의 어리석음을 깨닫기에 충분했고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어머니는 가장 좋은 것은 언제 손님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손님을 위하여 남겨놓아야 했다고 하셨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시기였지만 찾아올 누군가를 위하여 가장 좋은 것을 남겨놓는 그 마음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런 섬김의 마음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마음이 아닌가 싶다. 진정한 섬김의 시작은 나도 충분하지 못하지만, 아니 부족하지만 누군가를 위해서 좋은 것을 남기고 준비하는 것이다.
요즘은 물질을 대하는 가치관들이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절약이 미덕이었다면, 요즘은 자신이 지금 행복한 것이 중요하므로 당장 좋은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이 욜로(YOLO·You Only Live Once)를 부르짖으며 소비를 미덕으로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경제적 풍요란 혼자 편하고 잘살겠다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물질로서 선한 일을 계획하고, 그 일로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주는 데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물질에 대한 가치관이다.
얼마 전 우연히 MBC TV 프로그램 ‘사람이 좋다’를 보다가 한 연예인의 팬이 되었다. ‘용감한 형제’ 강동철 씨의 일상을 다룬 프로그램이었다.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그 시간을 통하여 그는 “제가 살아가는 시간이 옳은 길인가 저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고 했다. 또 그가 돈 버는 이유는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것이 먹고 싶을 때 사 먹을 돈이 없을 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자신은 50세가 되면 직접 밥차를 만들어서 독거노인과 청소년 가장을 위한 음식 대접으로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는 말씀을 잊고 살 때가 많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도 대부분 지금 나 자신이 어려우므로 이웃은 내 삶에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그때 돌아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우리의 삶은 내 삶이 먼저이기 때문에 삶의 목표가 이웃에게 향하기는 쉽지 않다.
지금 가까이 있는 약한 자를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시흥시의 한 통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면서. 지하 방에 사는 장애인 한 분을 긴급복지 지원을 받게 했는데, 자신이 그 집에 갔을 때 집에 쌀 한 톨도 없더라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찾아오는 사람이나 지원이 끊어져서 발견하지 못했으면 그대로 돌아가실 뻔했다는 것이었다. 멀리 가서 큰일을 하지 못해도 주변을 살펴보자. 내 주변 한 사람을 세우는 일은 시작할 수 있지 않은가.
안 먹으면 어차피 썩어버릴 사과,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께서 아끼셨던 가장 좋은 사과는 목사님이나 동냥을 청했던 걸인에게 돌아갔다.
노은영 작가(사회복지학 석사, 청소년 코칭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