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개월 된 입양아 정인이 학대 사망 사건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충격과 공분을 일으켰다. 부모의 보호를 받아야 할 아동이 부모의 상습적인 학대로 숨진 사건이 일으킨 사회적 파장으로 관련 법이 제정되는 등 처벌이 한층 강화되었으나 아동학대 사례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정인이는 2020년 10월 13일 의식을 잃은 상태로 병원에 실려와 당일 병원에서 숨졌다. 정인이의 온몸에 난 멍을 본 의료진은 아동학대를 직감하고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 1심 법원은 그로부터 7개월이 지난 5월 14일 양모인 장 씨에게 무기징역을, 양부인 안 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정인이의 죽음이 너무나 안타까운 것은 그동안 주위에서 경찰에 세 차례나 학대 의심 신고를 했음에도 즉각적인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경찰이 내 자식의 일이라고 생각했더라면, 아니 조금만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어린 생명이 그토록 참혹하게 짓밟히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떨쳐내기 어렵다.
국회는 ‘정인이 학대 사망 사건’이 전파를 탄 지 일주일 만에 ‘정인이 법’으로 불리는 ‘아동학대처벌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되는 즉시 경찰이 수사하고, 가해자와 피해 아동을 분리해 조사하는 것이 골자다. 또 올해 1월 8일에는 민법 915조 ‘친권자가 자녀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에서 징계권 조항이 삭제됐다. 이로써 자식에 대한 부모의 체벌이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부모도 처벌받을 수 있게 됐다.
‘정인이 사건’ 등을 계기로 ‘아동학대처벌법’ ‘자녀체벌금지법’ 등 관련 법이 잇따라 제정되고 있는 것은 늦었지만 한편으론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처벌을 강화한다고 아동학대가 과연 사라지겠는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조차 회의적이다. 자녀의 체벌을 금지하는 법이 실행된다고 체벌을 경험하고 자란 부모들이 갑자기 달라지기 어렵다는 점도 현실적인 장벽이다. 전문가들은 올바른 훈육 방식에 대한 학습과 인식개선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올바른 부모교육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실제로 ‘정인이 사건’ 이후에도 유사 관련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은 10일 두 살짜리 입양 아동을 학대해 의식불명 상태에 빠뜨린 양부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12일에는 경남 사천에서 부부싸움 도중 생후 7개월 된 아이를 때려 의식을 잃게 한 친모가 긴급체포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유사 아동학대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당국이 원인을 치유하기보다 처벌과 사후대책에 치중하고 있는 것을 원인으로 지적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과 ‘사후약방문’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법을 만들어 처벌을 강화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왜 학대가 일어났는지, 왜 막을 수 없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진상조사가 있어야 반복되는 비극의 길목을 차단할 수 있다.
현재 국회에는 ‘아동학대 진상조사 특별법’이 발의돼 있다. 처벌을 강화해도 근절이 되지 않는 아동학대에 대해 범정부적 조사를 통해 시스템을 점검하고 정책을 다시 세우겠다는 것인데, 문제는 발의만 해놓고 논의에 진전이 없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최근 3년간 발생한 중대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조사하는 위원회를 대통령 산하에 한시 기구로 설치하는 ‘양천 아동학대 사망사건 진상조사 특별법’도 발의돼 있다. 이 또한 지난 2월 발의 이후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상태다.
그나마 지난 3월부터 아동학대로 2번 이상 신고된 피해 아동을 학대 행위자와 즉시 분리해 보호하는 즉각분리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정인이 학대 의심 신고가 3번이나 되었어도 경찰이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긴급 처방으로 내놓은 제도다.
정인이 관련 특별법 제정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는 아동보호 및 입법 관련 11개 시민사회단체들은 “단순한 처벌 강화나 급조된 대책으로는 아동학대 사망을 막을 수 없다”며 “아동학대 사건들이 관심을 받고 있는 지금 특별법이 제정돼서 진상규명을 하고, 근본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정인이 사건’은 세 번의 학대 의심 신고를 묵살해 버린 경찰의 직무유기와, 사회적 여론이 비등하면 뚝딱 법을 만들어 내고 여론이 식으면 나 몰라라 하는 무책임한 정치권, 어린 생명 하나도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안전 시스템의 문제점이 무엇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 이 삼박자가 만들어 낸 참사이자 인재(人災)다.
그런데도 정신 번쩍 차리고 달라지기는커녕 들끓던 여론이 식으면 또 다시 벌어지는 이런 끔찍한 비극이 일상화된다면 그 책임은 사회적 반성이 부족한 기성세대, 즉 우리 모두에게 돌아오게 됨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경찰, 국회, 정부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지키는 본연의 사명에 충실하도록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계가 나서서 감시하고 협력하는 일에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피어보지도 못한 채 져버린 정인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으려면 법에 앞서 사회안전망을 새롭게 정비하고 모두가 생명 지킴이로 사는 길밖에 없다. 그것이 제2, 제3의 정인이의 비극을 끝내는 길이며, 정인이를 지켜주지 못한 이 땅의 모든 부모들의 책임있는 다짐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