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가 북한과 중국 등 인권 침해 문제가 제기돼 온 국가들의 종교 자유 억압 실태를 고발하는 보고서를 냈다. 지난 12일에 발표된 ‘2020 국제 종교자유 보고서’에는 북한 중국뿐 아니라 한국의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미국의 우려 시각도 담겨 있어 사흘 앞으로 다가온 한미정상회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이 보고서에는 한국의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정보센터(NKDB)가 탈북민 등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1천411건의 종교 탄압이 북한 내에서 자행되고, 종교와 관련해 126건의 살인과 94건의 실종 사건이 있었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북한 내 수용소에 수감된 기독교인이 5만에서 7만 명, 많게는 20만 명에 이른다는 내용도 있다. 또 지난해 6월 한국의 탈북단체들이 성경과 대북전단지를 북한으로 날려 보낸 후 북한이 김여정의 지시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사실도 적시되어 있다.
미국은 1998년 제정된 ‘국제종교자유법’에 따라 종교 자유를 조직적으로 탄압하거나 위반하는 국가들을 특별우려국으로 지정해 왔다. 그런 종교 자유 특별우려국에 북한은 19년째 단골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제재는 이를 근거로 한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 검토를 마친 새 대북정책을 바탕으로 북한과의 대화 재개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당연히 21일 열릴 한미정상회담에서도 이 문제가 중점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의 인권 문제, 특히 종교 자유 문제를 그냥 넘길 리 없어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바라는 문재인 대통령이 어떤 해법을 제시하게 될지가 관건이다.
그런 점에서 바이든 미 행정부의 인권 우선 정책 기조는 한미정상회담에 임하는 문 대통령의 어깨에 무거운 짐이 될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다만 평화의 시계를 다시 돌릴 기회가 온다면 온 힘을 다하겠다”며 북한에 대한 변함 없는 애정과 희망을 드러냈다. 이는 곧 한미정상회담에서 미-북 간에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될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이 같은 ‘일편단심’이 한미정상회담에서 그대로 통할지는 지금으로서는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다. 다만 청와대는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트는 분수령으로 삼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문 대통령이 남은 임기 1년 안에 꺼져가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불씨를 살리려면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이른 시일 안에 만나는 길밖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은 미국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처음 한-미 정상이 만난다는 점에서 북한 이슈뿐 아니라 흔들리는 한미동맹의 회복과 코로나19 백신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협력, 쿼드 참여 문제 등 정부가 국익 차원에서 풀어야 할 숙제가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이 임기 중에 반드시 성과를 내고 싶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지나치게 집착할 경우 당장 시급한 다른 분야의 협력 문제가 뒷전으로 밀리거나 아예 꼬여버릴 수도 있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이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어떤 식으로든 미-북 대화가 재개되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라는지는 지난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문 대통령이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해 “싱가포르 선언의 토대 위에서 외교를 통해 유연하고 점진적·실용적 접근으로 풀어나가겠다는 방향”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과 정부의 이런 판단에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희망 고문’이 되고 말 것이란 지적 또한 적지 않다. 외교 전문가들은 미국 바이든 정부가 전임 트럼프 정부의 ‘싱가포르 선언’을 이어받기를 바라는 문 대통령과 정부의 바람이야말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는 위험한 현실 인식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미-북 간에 대화 재개를 바라는 문 대통령이 미국의 북한 인권에 대한 우려와는 정반대로 되려 탄압으로 비칠 강경한 목소리를 직접 낸 것도 문제다. 문 대통령이 ‘대북전단금지법’과 관련해 “남북 합의와 현행법을 위반하면서 남북 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엄정한 법 집행”을 언급한 직후에 경찰이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를 소환해 조사한 것이 그 예다.
문 대통령의 시각에서 보면 대북전단 살포는 현행법 위반일 뿐만 아니라 남북 합의를 깨고 남북 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이것이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를 저해하고, 북한 주민들이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를 차단하는 보편적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상반된 시각으로 보고 있다. 이런 너무도 큰 간격이 한미정상회담에서까지 확인된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이에 대해 샬롬나비는 17일 ‘한미정상회담 성공을 위한 제언’을 발표하고 “정상회담 개최 전까지는 미국을 자극하는 발언은 자제하고, 바이든 대통령을 설득해 국익을 관철할 방안(일본과 관계 개선, 대북전단금지법 수정 등)을 세심하게 준비하는 게 옳다”며 “자칫 어깃장을 놓으면 외교적 관계는 국가적으로 무익한 결과를 초래하여 국난을 자초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 대통령이 ‘판문점 선언’ 등 자신의 재임 중에 이룬 북한 관련 성과를 토대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되살리고픈 심정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북핵 폐기’라는 근본적인 차원에서 보면 성과는커녕 사실상 실패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현실을 도외시한 채 오로지 ‘북한 바라기’에 올인하다 한미동맹과 코로나 백신의 안정적인 확보 등 진정한 한반도 평화와 국익 차원의 커다란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게 되지나 않을까 그것이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