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주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오피니언·칼럼
설교
홍석균 목사

본문 : 누가복음 12장 22-34절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가득 찬 세상에서 살고 있다. 대학생들은 졸업해도 취업이 보장되지 않고, 직장인들은 언제 구조조정 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 노인들은 노후를 보장받지 못하여 두려움만 점점 커져간다. 게다가 이러한 두려움은 염려라는 옷을 입고 나타난다. 무엇을 먹어야 하나 무엇을 입어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로 또다시 표현되어 진다. 어떻게 보면 염려는 인간의 생활과 생존에 일부분가 돼버린 것 같다. 그래서 “무엇을 먹을까”라고 말할 때 “목숨을 위하여”라고 수식어가 붙어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이 전혀 세상 물정을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처럼 보인다. 어떻게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의식주 문제에 초연할 수 있는가? 생(生)에 대한 의지를 내려놓지 않는 한, 먹고 입고 자는 문제는 실존적인 문제인데 말이다. 게다가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지배하에 착취당하고 가난에 허덕이는 시대였다. 이때 예수님의 염려하지 말라는 말은 너무나도 매정하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우리들의 의식주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 보면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 하여 양식을 구하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의도가 무엇인가? 첫째, ‘너희의 정체성이 무엇이냐?’ 질문하신다. 예수님은 우리의 정체성을 가르치기 위해 삼라만상, 자연만물을 통해 예증하신다. 24절에 보면 ‘까마귀를 생각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하나님이 기르시지 않느냐?’ 27절에 보면 ‘백합화를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않는데 자라지 않는가?’ 28절에 보면 ‘들풀을 보아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입히시는데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라고 말씀하신다. 쉽게 말해서 너희들의 신분이 무엇이냐? 물으시는 것이다. 너희는 고아가 아니라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자임을 가르쳐 주셨다. 고아와 자녀의 차이는 무엇인가? 고아는 늘 불안해한다. 내일 어디서 밥을 빌어먹을까, 어디서 음식물 뒤질까, 어디서 신문지 깔고 잘까. 그러나 자녀들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부모가 책임져 주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다. 공중에 새와 백합화도 먹이시는데 우리를 돌보시지 않겠느냐 말씀하신다. 지금 많은 분들이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이 반드시 책임져 주심을 믿으시길 바란다. 그 선하신 하나님을 안다면 오직 자녀들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부모를 어떻게 기쁘시게 할까’라는 고민만 하면 된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민의 차원을 바꾸시길 바란다.

둘째, ‘너희의 지향점이 무엇이냐’ 질문하신다. 세상 사람들은 어디에 염려하는가? 세상 풍조에 염려한다. 이게 좋다고 하면 이리로 ‘우르르~’ 달려가고 저게 좋다고 하면 저리로 ‘우르르~’ 따라간다. 마치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 그렇다고 그것이 ‘옳다.’라는 보장도 없는데 말이다. 이러한 때에 예수님은 너희들은 무엇을 보고 있느냐, 무슨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느냐를 물으신다. 노아의 때를 보아라. 하나님께서 그 시대의 사람들을 심판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음란하고 도적질이 극에 달해서 멸하셨던 것인가? 그러한 이유는 부차적인 이유이다. 그 정확한 이유를 마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마 24:38). 다시 말해 하나님의 백성들마저도 세상 풍조를 따라 아무런 목적과 비전 없이 살아갔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향점이 어디인가를 점검해야 한다. 그 지향점은 31절에 나와 있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의 의미는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채우기 위해서 주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계산 없이 주의 나라를 구할 때 주님께서 덤으로 주신다는 뜻이다.

제가 아는 한 집사님이 계신다. 그분은 얼마나 기쁘게 주님의 일을 봉사하며 사시는지 모른다. 어떻게 그렇게 기쁘게 주님의 일을 봉사하며 사시느냐고 물으니 과거에 힘들 때 드린 기도 때문이라고 하셨다. 사실 과거에 이렇게 마음 놓고 주의 일을 할 수 없었다. 형편이 너무 어려워 일하지 않으면 생계에 위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이런 기도를 했던 것이다. “하나님! 저 정말 주님의 일을 하고 싶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주의 일을 못하니까 ‘주의 일을 하게 경제적인 삶을 좀 책임져 주세요’라고 기도했다는 것이다. 근데 그 기도를 주님이 들으셨다. 그리고 물질을 넘치도록 부어 주셨다. 이 집사님은 자신의 경제적인 형편이 어려우니 해결해 주시면 일하겠다는 일종의 거래가 아니었다. 계산 없이 주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의 나라를 위해서 한번 구해 보아라.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덤으로 채우실 것이다.

홍석균 목사(한성교회 청년부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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