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표적을 구하는 세대를 향한 경고

오피니언·칼럼
설교
홍석균 목사

본문 : 누가복음 11장 27~36절

혼란한 시대에 나타나는 특징이 있는데 표적을 구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시대가 혼란하면 신비로운 체험, 기적, 신유에 주목한다. 그 이유는 눈에 보이는 증거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인들은 열강의 압제를 받으면서 보이는 표적을 통해 안정감을 찾으려고 했다. 오늘 말씀의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12장 38~45절에 보면 에 보면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예수께 나아와서 표적을 구했다.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세대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책망하셨다.

그렇다면 표적을 구하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사사기 6장에 보면 기드온은 미디안과의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께 표적을 구한다. 전쟁에 이기게 하신다면 양털 뭉치에만 밤새 이슬이 묻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때 하나님은 그 표적에 응답하신다. 이 사건을 보더라도 하나님은 표적을 구하는 자체를 거부하지 않으신다. 예수님도 공생애 기간에 많은 표적을 보이셨다. 병자도 고치시고,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죽은 자도 살리셨다. 이처럼 표적을 구하는 세대에게 얼마든지 표적을 보여 주실 수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책망하신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바리새인들은 외적인 현상만 구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적인 회개가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적 회개가 사라진 세대에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은 그 예로 두 가지를 말씀하셨는데, 첫째는 솔로몬의 말을 들으러 온 남방 여인이었고(31절), 둘째는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한 니느웨 사람들이었다(32절). 이 두 그룹의 공통점은 모두 선지자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반응하여 회개했던 자들이었다. 심판 때에 심판주 하나님은 반드시 남방 여인과 니느웨 사람들의 표적을 구하는 세대를 정죄할 것이다. 왜냐하면 솔로몬과 요나보다 더 큰 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미 보이셨는데 믿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믿을만한 증거의 부재’가 아니라 ‘믿으려는 마음의 부재’로 인해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불안해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더 많은 표적을 구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그 어떤 표적보다 더 큰 표적을 주셨다. 망할 인간, 죽을 인생을 위해서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살리셨다는 표적이다. 이보다 더 큰 표적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더 많은 표적을 구하기 전에 겸손한 마음을 구해야 한다. 이미 주신 은혜를 기억해야 한다. 한 번 생각해 보아라. 받은 말씀이 열 가지라면 그중에 실천한 말씀이 몇 가지인가? 주께서 우리에게 회개하라고 하신 말씀 중에 회개한 것을 손에 꼽아 보라고 하면 몇 개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마태복음 11장 20~21절에 나와 있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주께서 우리에게 이미 주신 말씀만 회개하고 실천했다면 우리의 삶은 이전보다 더 큰 능력이 드러났을 것이다.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죽이셨다. 이것 보다 더 큰 기적이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지하고 미련한 우리들을 위해서 성경을 주시며 상세하게 우리에게 행하신 놀라운 증거들을 보이셨다. 주신 은혜를 생각해 보라. 잔잔한 주님의 사랑이 여러분을 덮을 것이다. 성경을 펼치고 곰곰이 묵상해 보라. 우리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기적이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고 표적을 구하는 세대에게 경고하신 것인가? 28절에 그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우리가 표적을 구하기 전에 주신 말씀을 잘 지켜내므로 참된 기적과 복을 누리는 인생이 되길 축복한다.

홍석균 목사(한성교회 청년부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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