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강남 리자이나 대학 종교학 명예교수가 최근 문자주의 신앙을 경계하는 취지에서 불트만의 비신화화를 조명했던 자신이 과거에 썼던 페이스북 글을 다시금 곱씹어 눈길을 끌고 있다.
루돌프 불트만은 성경, 그 중에서도 복음서가 기본적으로 "신화적(mythological)"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신화라는 것은 마치 호두(walnut)와 같아서 그냥 그대로 먹을 수는 없고, 껍데기를 깨야만 속살을 먹고 영양분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신화는 일단 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오 박사는 "신화를 대할 때 '호두까기 인형'이 필요하다고 할까. 이처럼 신화가 신화로 남으면 안 되고 깨어져야 하는데 깨어져서 속살을 드러낸 신화를 '깨어진 신화(broken myth)'라고 한다. 이처럼 속살을 드러내도록 하는 것을 불트만은 비신화화(demythologization)이라고 했는데, 'de'이가 마치 신화를 송두리째 없앤다는 뜻으로 오해될 수 있어서 폴 틸리히(Paul Tillich)라는 또 다른 신학의 거장은 그것을 탈문자화(deliteralization)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불트만과 보조를 맞추어 성경을 문자주의적으로 읽으면 안 된다고 강조하는 신학자로는 폴 틸리히가 대표적이다. 오 박사는 "그의 3권짜리 <조직신학>을 보면 '상징(symbol)'이라는 말이 제일 많이 나온다"며 "'십자가의 상징', '천국의 상징' 등등 십자가가 정말로 무엇을 뜻하는가, 천국이 정말로 무슨 뜻인가 그 속살, 속내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오 박사에 따르면 틸리히가 펴낸 <신앙의 역동성 Dynamics of Faith>이라는 책 제3장에 보면 틸리히가 뜻하는 상징이라는 것이 무엇을 말 하는가 나타나 있다. 그 장 첫줄이 "인간의 궁극 관심은 상징적으로 표현되어야만 한다. 상징적인 언어만이 궁극적인 것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 박사는 특히 "여기서 '궁극 관심'이라는 것은 그가 말하는 신앙faith"이라며 "이 문장이 나온 다음 단에서 symbols와 signs가 다 같이 "point beyond themselves to something else."라고 한다. 상징이나 싸인은 그 자체로서는 의미가 없고 그것들이 가리키는 그 너머에 있는 무엇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에 와서 문자주의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하는 분으로 존 쉘비 스퐁 신부를 들 수 있다"며 "그분의 책 대부분은 문자주의에 대한 경고다. 우리 식으로 하면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외친 셈이다. 가장 잘 알려진 책으로 <성경을 근본주의로부터 구해내기 Rescuing the Bible from Fundamentalism>인데 근본주의와 문자주의는 같은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고 밝혔다.
존 스퐁은 특히 『성경 문자주의: 이방인의 이단, Biblical Literalism: A Gentile Heresy』에서 기독교는 2천년 가까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느라 성경의 본의와 관계없이 헛다리를 짚었다고 주장한다는 게 오 박사의 설명이다.
그에 의하면 예를 들어, 유대인을 위해 쓰여진 마태복음이 유대인이면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이른바 '미드라쉬'적 기법으로 기술한 이야기인데 초대 교회에서 유대인들이 사라지고 이방인들이 주류로 자리매김하면서 이런 이야기들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느라 성경 본 저자의 종교적 메시지를 놓치고 엉뚱하게 문자적 뜻에 매달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 박사는 "우리가 무슨 말을 하다가 "그건 호랑이 담배 피울 때 이야기야"라고 말하면 우리는 그것이 오랜 옛날이라는 뜻으로 금방 알아듣지만, 우리말을 모르는 미국 사람이 이 말을 들으면, 호랑이도 담배를 피울 수 있다, 호랑이는 담뱃대로 피울까 권련으로 피울까, 권련으로 피운다면 하루에 몇 갑이나 피울까 하는 등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 박사가 집필한 『예수는 없다』에서도 강조점을 두는 것은 문자에서 해방되라는 메시지였다. 그 책의 제2편 60페이지는 전부 문자주의를 경계하라는 이야기라고 봐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