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역사는 생산양식의 변천에 따라 수렵과 채집의 원시시대, 왕의 농장이 노예로 운영된 고전시대, 영주와 농노들로 운영된 봉건시대, 대량생산과 무역으로 운영된 자본주의 시대로 나눌 수 있다. 18~19세기에 이르러 자본주의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제어할 수 없이 불안한 시장상황이라는 심각한 폐해를 드러낸다. 그 대안으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제안되었고 지난 세기 동안 많은 나라에서 실험적으로 수행되었지만 또 다른 폐해를 드러내었다. 성경적 경제관이 하나의 경제체제와 일치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각 체제 속에서 포함된 성경적 경제관을 파악하고 어떻게 조합하여 우리 삶에 실행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자본주의(資本主義, capitalism)는 생산, 운송 및 판매 수단의 대부분을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개인 혹은 축적된 자본이 소유하고 경영하는 경제체제이다. 사유재산을 기반으로 그것을 증식하는 것이 경제활동의 목표이다. 모든 상품과 노동력에는 가격이 매겨지는데 보이지 않는 손인 시장이 주된 가격결정권자이다. 이윤획득을 위한 자유경쟁 때문에 개인과 기업은 창의력을 발휘하여 생산성을 향상시킴으로써 사회전반의 공급이 풍요롭게 된다. 반면 빈부격차가 커지고, 무계획한 상품생산은 생산과잉으로 인한 가격폭락 혹은 생산부족으로 인한 가격폭등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런 일이 반복, 심화될 경우 경제공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능력만큼 일하고 일한만큼 분배 받는데 개인의 능력과 일의 가치는 시장이 결정한다.
사회주의(社會主義, Socialism)는 생산수단을 집단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협동경제와 모든 사람이 노동의 대가로 평등하게 분배받는 사회를 지향한다. 소유권은 국가, 집단 및 협동조합이 전체 혹은 지분의 일부를 소유하는 다양한 형태의 사회주의가 존재할 수 있다. 초기 사회주의는 1826년 로버트 오웬이 최초로 용어를 정립했다. 그는 영국에서 섬유제조업으로 모은 재산을 미국의 소도시들에서 실험적 사회주의 이상향 건설을 위해 투자하였으나, 2~3년 이내에 모두 실패하였다. 이후 유토피아를 꿈꾸는 진보학자들에 의해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변화를 촉진하려는 민주사회주의 분파와 자본주의의 긍정적인 면은 살리고 부정적인 면을 해결하려는 사회민주주의 분파로 분화되어 간다. 시장의 자유보다는 조율과 계획을 위한 정부의 간섭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사회주의의 슬로건은 능력만큼 일하고 공평하게 분배 받는 것이며, 능력과 공평의 가치는 컨디셔너(conditioner)가 결정한다.
공산주의(共産主義, Communism)는 생산수단을 집단이 소유하고 모든 사람은 노동에 대해 평등하게 분배받는 사회를 지향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주창되고 레닌, 마오, 김일성 등에 의해 실험적으로 수행된 경제체제이다.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분배 받는데 능력의 가치와 필요한 양은 컨디셔너가 결정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켜 사회전반의 부 축적에 기여한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임금착취로 인한 빈부격차의 심화와 제어할 수 없는 시장의 불안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가 곧 붕괴할 것을 예상했다. 그 때 사회주의 체제를 거쳐 자연스럽게 공산주의 체제로의 변증법적 상향발전을 예상했다. 20세기 초, 중반에 독립 혹은 근대국가로 변환한 많은 나라들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경제체제를 도입하였으나, 소련을 비롯한 중남미, 아시아,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이 경제체제 실험을 통해 처참한 경제적 실패를 맛보았다.
어떤 정치체제도 완벽하지 못한 것처럼, 어떤 경제체제도 완전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없음에 분명하다. 우리의 경제활동은 다른 사회활동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생육/문화명령을 따르는 것이다. 우리 경제활동의 결과가 완전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하나님과 이웃과 주변세계와의 관계의 뒤틀림 때문일 것이다. 자본주의는 칼빈의 가르침을 따르던 청교도들의 근면한 직업관에서 유래하였다. 청교도들은 삶의 모든 측면을 성경의 기준에 맞추려는, 즉 성경적 세계관으로 세상을 살아내려는 실천가들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의 이점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파되어 국가 전체를 움직이는 경제체제가 되었을 때는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 타락한 인간들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악한 방법을 사용하고, 자본에서 발생한 이익을 사회나 직원과 나누는 일에 인색하게 된다. 이런 부작용은 자본이 모여서 커질수록 익명성이 증가해 자본주의의 문제가 점점 쌓여가게 된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제안된 것이지만 역시 인간의 타락을 간과하는 실수를 하였다. 이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생산량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 그 과실을 골고루 분배하면 모든 사람이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이상주의적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보상 없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다른 사람보다 더 편하고 싶은 이기심으로 생산성은 점점 떨어지게 된다. 반면 자기 몫을 더 많이 분배받고 싶어 하는 이기심으로 분배요구는 점점 늘어나게 된다. 이런 부조화는 갈수록 심화되어 결국 국가부도 사태에 까지 이른다. 랭던 길키는 <산둥수용소>에서 수용소라는 환경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 욕망 그리고 도덕적 딜레마의 경험을 서술하는데, 이것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경제체제가 유발한 공급부족이라는 압력이 인간의 악함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예시한다.
정치에서 보수는 자유를, 진보는 평등을 핵심가치로 여기는 것처럼 자본주의는 경제활동의 자유를,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분배의 평등을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성경의 정의가 보수와 진보의 가치를 넘나드는 것처럼, 경제적 측면 역시 성경은 특정 경제체제의 가치에 머물러 있지는 않을 것이다. 라인홀드 니버가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주장한 것처럼 타락한 개인의 회심은 가능하나, 집단에게 도덕성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성경적 경제정의의 실현은 거듭난 개인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며, 주변으로 전파되어야 한다.
묵상: 내 주변에서 성경적 경제정의의 회복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류현모(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약리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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