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도 그랬지만 바로 앞에서도 요셉은 선견자 의식을 드러냅니다. 앞날이 어찌 될까 하여 안절부절하는 환관장들에게도 요셉은 이 비슷한 말을 내놓았습니다(창 40:8). 요셉은 높은 직위에 있다고 듣기 좋은 말로 꾸미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대합니다. 하나님은 그가 이런 대답을 할 수 있도록 13년간이나 포로, 죄인으로 옥에 갇혀 있게 하셨습니다. 고난 가운데서 주님과 동행한 신자들에게서만 이렇게 짧고도 단호한 말이 나올 수 있습니다.
박종칠 - 바이블 제네시스
우리는 은혜를 받을 때에도 이 세상의 틀 안에서 은혜를 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나를 실패의 구덩이 속에서 건져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폼 나게 살면서 사람들 눈에 멋져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왜 우리가 그리스도와 복음 안에서 누리는 은혜가 세상의 틀과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성경은 우리가 그런 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말씀을 제대로 받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돈을 축적하는 삶을 살겠다는 틀, 세상에서 성공하겠다는 틀로는 진정한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사랑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생이라는 시간을 주시고, 물질을 주시고, 건강을 주시고, 사람을 섬길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그 밖의 모든 것을 주신 뜻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많이 사랑하는 존재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김형익 - 답 없이 살아가기, 답 없이 사랑하기
C.S 루이스는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새 이름을 주겠다”라는 주님의 약속을(계 2:17), 오직 하나님과 나만 아는 새 이름이 있다고 해석합니다. 다시 말하면, 나만 알고 있는 하나님과의 만남에서부터 생성된 나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야기 속에는 그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는 하나님의 면모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아름다우심을 영원토록 찬양할 수 있는 사람 역시 나일 것입니다.
박성일 - 헤아려 본 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