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자, 옥한흠’, ‘부활 그 증거’의 감독 김상철 목사가 이천은광교회 고난주간 특별저녁부흥회 넷째 날인 1일 ‘죽음이 죽어버린 시대와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김상철 목사는 “인생의 끝에 기다리는 죽음의 문제는 누구에게도 그 경험을 들을 수 없기에 사람은 두려움으로 죽음 너머의 신을 찾는 과정이 있고, 그 과정은 인생의 지혜가 되고 삶에 나침반이 된다. 끝을 준비하며 사는 사람은 가장 중요한 한 가지에 집중하게 된다. 예수님은 담대하고 자유했으며, 초점을 잃지 않는 삶을 이 땅에서 살아내셨다. 인생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아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죽음이 죽지 않는 한 죽음에 관련된 글이나 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가보지 못한 그 죽음을 생각하며 묵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이 땅이 잠시 머무는 곳이란 걸 알고 있는 사람들, 언젠가 주님이 부르면 그 앞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의 삶은 다르다. 우리가 비교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내 주변 사람을 보고 내 신앙을 점검하는 건 너무나 어리석다. 예수님 때문에 그 마지막 삶을 불태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죽음에 관한 깊은 묵상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어령 교수님은 현대는 죽음이 죽어버렸다고 말씀하셨다. 죽음에 대해서 사람들이 묵상하지 않기 때문에 이곳이 전부인 양 살아간다는 것이다. 옛날엔 죽음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죽음을 볼 기회가 없다. 옛날엔 태어나는 건 감추었지만 지금은 태어나는 것을 자랑한다. 태어나는 것에는 관심이 많아도 죽음은 잊고 살아가는 게 오늘날의 세대이기에 이 교수님은 현대는 죽음이 죽어버렸다고 말한 것이다. 죽음이 죽어버린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가 너무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사실 죽음은 기독교에서 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영역이다. 고난주간을 보내고 있는데, 예수님이 돌아가시는 날, 부활하는 날을 우리는 묵상한다. 죽음 다음엔 반드시 삶이 있다. 인간은 예외 없이 약 10개월을 어머니의 태중에서 양수에 갇혀서, 탯줄을 통해 태호흡을 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탯줄이 잘리는데, 호흡이 끊어지는 것이다. 호흡이 바뀌는 것도 죽음이다. 태호흡하던 아이가 폐호흡을 한다. 죽으니까 사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한 번 죽음을 경험했던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처럼 죽음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진리에 굴복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이고,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묘지이다. 사람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사람이다. 사람이란 단어가 고결하다.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사람을 빚어내시고 만드셨는데, 이 고결함과 순전함이 다 사라진 시대가 오늘”이라고 했다.
김상철 목사는 “부활을 믿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 말세에 있는 일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고 말한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건 내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지 분명히 아는 것이다. 내 인생의 주인이 예수님이라는 고백이 나의 신념이 되고 믿음이 될 때 올바른 고백”이라고 했다.
그는 “부활의 증인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인지하고 살았던 중요한 몇 가지를 나누겠다. 첫 번째, 부활의 증인은 견디는 삶이 필요하다. 항암 90차가 넘은 천정은 자매는 예수를 믿고 부활을 믿은 후 완전히 삶이 바뀌어버렸다. 고통을 이겨내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과 같은 암 환우들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고 있다. 그러면서 ‘암은 선물이요, 죽음은 희망’이라는 말을 했다. 어떻게 그 고통을 견딜 수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불편하지 않고 그 믿음을 더 강하게 지킬 수 있을까? 그것은 십자가의 사랑과 부활을 선명하게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중독사역기관 베텔의 중독자들은 모두 에이즈 환자였다. 그들은 합병증이 오면 죽는다는 걸 알기에 자신들을 ‘Edge Of Eternity’ 영원의 끝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 죽음을 알기 때문에 오늘 사랑하고, 용서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견디는 신앙이 있기에 그 아픔을 견디면서 자기와 같은 중독자들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 시대 견디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교회 내에도 너무나 많다. 왜 견디지 못하는가? 주인을 바꾸는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로마 카타콤을 촬영했는데, 땅을 팔 때 생긴 환풍구를 통해 들어오는 빛이 다인 곳이다. 대낮과 같이 밝은 로마 광장과는 전혀 다른 캄캄한 곳이었다. 카타콤의 교인들이 견뎌낼 수 있었던 이유는 부활의 소망을 가졌기 때문이다. 기독교사 전체를 보면 기독교는 늘 그래왔다. 오늘날의 어려운 시기도 견딤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 그 시간을 견디게 되면 번지점프까지도 가능한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의 줄 하나로도 뛰어내릴 수 있는 믿음이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우리가 다 이 시기를 견뎌내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 목사는 “두 번째, 믿음이 필요하다”며 캠브리지 의대를 졸업 후 28살에 아프리카 콩고에 헌신한 헬렌 로즈비어 선교사와의 만남을 소개했다. 그는 “선교사님에게 목사로서 첫 마음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질문을 했다. 선교사님은 1964년 아프리카 콩고 정글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위해 선교사가 되었고, 그곳에서 사역하는 동안 반군에 납치당해서 성폭행을 당했고, 동료가 죽어가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봤다고 하셨다. 하루는 하나님께서 선교사님을 찾아오셔서 ‘헬렌, 너 나에게 감사할 수 있겠니’고 질문하는데, 그때 하나님 기쁘시기 위한 일을 하기 위해 여기 왔는데 이런 고통을 당하면 누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겠냐고 답하셨다고 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럼 내가 너를 믿고 있는 것에 대해선 감사할 수 있겠니’라고 질문하셨다고 한다. 그때 선교사님은 주께서 맡기신 일을 감당할 사람이라는 것을 믿고 허락된 고난이라면 저를 믿어주셔서 감사하다며 하나님께 엎어졌다고 한다. 선교사님은 저에게 처음 마음을 회복하려면 하나님이 당신을 믿고 있다는 사실에 아멘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고린도후서 4장 7-10절 말씀을 읽어주셨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남편, 아내, 자식, 사업, 질병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할 때도 있고, 교회에서 주어진 일을 감당하다 보면 힘든 때도 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믿음을 주시고, 믿어주신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우리가 그 일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부활의 증인은 하나님이 나를 믿고 계신다는 그 믿음을 가진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또 하나는 사명이다. 굉장히 무서운 단어다. 신앙을 잃어버리면 배교하지만 사명을 잃어버리면 반드시 타락한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예수를 믿는 사람에겐 사명이 주어진다. 하는 일에 차별은 전혀 없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열심히 해서 배를 남겨야 하는 게 사명”이라고 했다.
이어 “아이사 아서 선교사님은 32살에 아프리카에 가장 가난한 나라 기니비사우에서 54년간 사역을 하셨다. 선교사님은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이 분명하고 그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하셨다. 또 주께서 맡기신 일을 감당하기 위해 결혼까지 포기하시고 사명 중심적으로 사셨다. 54년간 그 땅에서 선교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해 선교사님은 전기도 안 들어오는 그곳에 주렁주렁 매달린 성탄절 카드를 가리켰다. 54년 전에 선교사님을 파송한 스코틀랜드 침례교회의 교회학교 아이들이 해마다 보내오는 편지에 힘을 얻는 것이었다. 그 교회는 대대로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를 가르치며, 54년간 선교 후원비를 중단하지 않았다. 사명에 붙들린 선교사, 교회를 생각하면 우리가 얼마나 작아지는가. 다 같이 예수의 부활을 믿고 십자가 사랑을 아는데 우리가 이렇게 있어야 하겠는가. 우리에게는 사명이 있다. 얼마 남지 않은 고난주간, 부활절이 이르기까지 내가 이 교회에서 받은 사명이 무엇이고, 이 사명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 것인가에 관한 질문이 묵상 되어 흘러나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 목사는 “부활의 증인은 복음을 전하며 살아간다. 사도행전 1장 22절에 제자들이 바뀌었고, 요한복음 2장 22절에 에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보고 비로소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을 때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졌던 제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바뀌어서 다 죽을 길로 갔다. 그 가운데 무슨 일이 있었나? 바로 부활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죽을 길로 흩어져서, 예수와 복음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선택하고 죽임 당했다. 그것을 우리는 순교라고 정의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자들이 순교의 과정을 걸어갈 때 왜 상처가 없었겠나.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상흔을 통해서 부활의 증거를 봤기 때문에 그 상처를 모두 다 상흔으로 만들어갔다. 그들의 상흔이 오늘날 우리에게 부활을 믿는 사람이란 것을 증거하고 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우리가 상처만 있고 상흔이 없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상흔이 필요하다. 이 상흔이 우리 몸에 있을 때 세상 사람들은 그 상흔을 보고 예수님을 알게 되는 것이다. 부활절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고난주간, 죽음을 묵상하고 다시 사는 소망을 품어야 한다. 그것이 예수 믿는 사람인 줄 믿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