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불안과 희망을 모두 담고 있는 단어일 겁니다. 아직 이룬 것이 없기에 불안하지만, 그만큼 앞으로 이룰 수 있는 가능성 또한 크기에 그토록 아름다운 시절 아닐까요. 때문에 기성 세대는 으레 청춘들을 우려하면서도 결국에는 부러워하며 응원의 박수를 보내곤 합니다.
영화 <코알라>(2013)는 이 땅의 청춘들을 향한 찬가이자 나지막한 응원가와도 같습니다. 동갑내기 친구 동빈과 종익은 의기투합해서 창업을 합니다. 평소 알고 지냈던 쉐프 스캇 리의 도움을 받아 수제버거 가게를 연 것이죠. 스캇 리는 자신이 만든 버거 패티를 대주고 목 좋은 자리도 알선해 줍니다. 마침 수제버거가 유행하던 차에 유명한 쉐프의 패티까지 받게 되었으니 이들에게는 성공만이 남은 것 같았지요. 부족한 창업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전세금까지 빼면서 패기 있게 장사를 시작합니다. 빠듯했지만 알바생까지 뽑는 호기를 부리기도 하지요.
하지만 장사는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월세를 내기도 힘겨워지자 이들은 스캇 리를 찾아갑니다. 패티 납품가격을 낮춰달라는 부탁을 하지요. 하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합니다. 장사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이번에는 스캇 리가 먼저 찾아와 패티 값을 인상하겠다고 합니다. 결국 이들은 어쩔 수 없이 패티를 직접 만들기로 하지요.
그런데 이들은 맛을 내기 위해서 편법을 쓰고 맙니다. 패티에 캔 햄(‘스팸’이라는 제품명으로 통칭되는)을 넣고 심지어 라면 스프도 넣은 것이죠. 입맛을 자극하는 이 버거는 폭발적인 인기를 끕니다. 하지만, 수제버거에 캔 햄과 라면 스프를 넣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일종의 속임수와도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수제버거란 ‘냉동식품이 아니라 신선한 재료로 직접 패티를 조리해서 만들어낸 햄버거’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죠. 일반적으로 수제버거가 프랜차이즈 버거보다 가격이 조금 비싼 까닭도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고 정직하고 충실하게 조리해낸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꼼수는 맛에 예민한 이들에 의해 곧 들켜 버립니다. 정직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뒤따르게 되지요. 세 사람은 이윤과 상도덕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그러다가 불현듯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들, 차돌박이와 계란 프라이, 깍두기를 넣은 새로운 수제버거를 만들어내지요. 이들의 시도는 성공을 거두고 입소문도 납니다.
이들이 유명세를 타자 스캇 리는 딴지를 겁니다. 다시 자신의 패티를 쓰라고 강요하지요. 이를 거부하면 계약서 조항대로 가게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세 청춘들은 결국 가게를 떠나 막다른 골목에 내몰리게 되지만, 평소 가게를 자주 찾던 단골손님으로부터 푸드 트럭 지원을 받게 되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게 됨으로서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영화의 엔딩 장면은 참 좋습니다. 성공이 보장되어 있지 않지만 꿈을 위해서 도전하는 청춘들의 모습, 지금은 비록 초라하고 궁색하지만 희망을 품고 달려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이란 우리 모두를 미소 짓게 만들지 않나요? 영화는 푸드 트럭이 잘 될 거라는 보랏빛 미래를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그저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이 주어졌음을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죠.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는 근거 없는 낙관론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청춘들의 실패와 아픔을 손쉽게 볼거리로 삼지도 않습니다. 기성세대가 청년세대를 관조하듯이 바라보면서 값싼 동정을 베풀지도 않고요. 밝고 건강한 시각으로 청춘들의 꿈과 열정, 그리고 도전을 유쾌하고 귀엽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렇듯 꿈을 좇아 달려나가는 영화 속 청춘들의 모습이란 기독교의 참된 가르침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의 가르침은 비록 지금 초라하고 비루하게 살더라도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라는 것이죠. 안락하고 손쉬운 길이 아니라 진실되고 참된 삶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이 땅의 모든 청춘들과 우리네 모든 인생들에게 선사하는 잔잔하면서도 묵직한 울림일 겁니다.
노재원 목사는 현재 <사랑하는 우리교회>(예장 합동)에서 청년 및 청소년 사역을 담당하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 <아는 만큼 보이는 성경>을 통해 기독교와 대중문화에 대한 사유를 대중과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