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하나님이 모든 인간에게 박탈할 수 없는 기본적인 권리, 즉 인권을 부여했다고 이해한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흙으로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른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대리인으로 임명하셨다. 비록 선악과 사건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와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가 뒤틀어졌으나 피조세계에서 하나님 대리인으로서의 권한과, 율법 아래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삶을 누릴 권리를 모든 인간에게 주셨다. 성육신하신 예수님께서 모든 인간의 구원을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로 인권의 보편성은 더 명확해지며,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것이기에 누구도 그것을 뺏을 수 없다.
현대 무신론에서는 인권도 정부가 제정한 실정법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 때문에 정권이나 정당의 변덕에 의해 임의로 추가 혹은 삭제될 수 있는 것으로 변하고 있다. 심지어 인권의 정의조차 정권의 입맛에 맞게 변해 버린다. 이러한 정부들에서 인권이 상실된 사례는 소련과 중국의 공산당, 히틀러의 인본주의적 전체주의 등에서 볼 수 있다.
노아 웹스터는 “성경에서 발견되는 도덕적 원리와 교훈은 모든 국가의 헌법과 법의 기반이 되어야 마땅하다. 이 원리와 교훈들은 불변의 진리를 그 기반으로 가졌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랭던 길키는 법은 타락한 인간의 이기심을 제어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단순히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추상적으로 말하려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이기심을 통제하여 사회를 파괴하는데 사용되기 보다는 창조적으로 이끄는데 사용되도록 만드는데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정부에게 요구한 정의인 것이다.
캘빈 바이스너는 “정의는 올바른 기준에 근거하여 각 사람이 받아 마땅할 보응을 선사하는 것이다. 올바른 기준이란 하나님이 주신 도덕률인데 하나님의 성품 그 자체에 기반하고 있다. 즉, 규칙을 잘 지키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부여하신 인권을 향유할 권리를 주시고, 그 규칙을 범하는 자에게는 그에 합당한 응징을 함으로써, 악한 자로부터 무고한 시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정의란 인간관계 속에서 진리를 행사하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국가가 존재하는 첫 번째 이유라고 보는 것이다.
국가가 정의를 바로 세우는 방법은 하나님의 도덕률에 근거한 법이 사회의 각 기관 즉, 가정, 교회, 직장, 국가 속에서 공정하게 집행되도록 하는 것이며, 그 결과로 각 기관들이 자유롭고 안정된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각 사회기관들의 영역을 침범하면 안 된다. 각 사회기관은 하나님께 부여받은 고유의 기능이 있고 그 사명을 착하고 충성되게 실행할 청지기의 임무를 가지고 있다. 정부가 가정의 임무인 출산, 양육, 교육에 관여하는 것, 회사와 시장에 의해 운영되는 경제를 마음대로 조정하려는 것, 세금으로 특정종교를 돕는 것 등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정부는 각 사회기관이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공정한 규칙을 제정하여 활동과정에서 생기는 충돌을 조정하는 역할에 만족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의 세계관에서는 가정, 교회, 직장과 같은 전통적 사회기관들이 이미 그 기능을 상실했으며, 개인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정부가 기존의 자기영역을 넘어서 기능을 상실한 다른 기관들의 영역까지 강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주의 국가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이들 세속정부에게 훨씬 더 많은 권한을 양도해야 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또한 인간의 구원과 인간 공동체의 회복이 개인의 회개와 구속의 복음에 근거하지 않고, 그 권리를 위임받은 정부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게 된다. 이는 개인에게는 책임회피와 권위에 불순종하는 경향을 부추기며, 정부에게는 그 힘과 재정을 편향되게 자의적으로 사용하려는 욕구를 부추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주권을 위임받아 정의를 촉진하려는 정부를 존중하고 그에 순종하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반하는 지도자들에게 맹목적으로 순종할 것을 요구하지는 않으신다. 그 정부에 관리나 유권자로 참여하여, 하나님의 정의를 세우는 일을 위해 영향력 행사, 여론 형성, 선거에서 반대의사를 표현, 탄원서에 서명 등 여러 방식으로 명확한 의사를 표명할 것을 촉구한다. 이것이 영국의 명예혁명과 미국의 독립혁명을 이루어낸 성경적 방법이다. 반면 정부의 권위에 억눌려 반대 의사는 전혀 표시하지도,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한 채 오랜 압제에 굴복하고 있다가 급격하게 폭발하여 정권을 전복시킨 것이 프랑스혁명과 1차 러시아혁명이다. 악한 정부라고 뒤엎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이러한 무신론에 근거한 유혈혁명은 무정부상태, 피의 숙청, 과격한 개혁이 현실에 정착되지 못하고 혼란만 가중시키다가 곧 구체제로 회귀한다.
성경은 국가와 하나님의 공의가 대립할 때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가르친다. 베드로와 요한이 산헤드린에 의해 복음전파를 멈추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의 대답을 상기하라. 프랜시스 쉐퍼는 “우리는 어떤 시점에 국가나 국가를 대리하는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할 권리뿐만 아니라 의무도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악한 정부의 통치하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 될 수 있음을 다니엘과 세 친구, 히브리서의 믿음의 선진들의 고난을 무릅쓴 순종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그들로 인해 정의가 회복될 것을 약속하신다. 그것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방법이며, 하나님은 그런 헌신을 기뻐하신다.
묵상: 하나님의 공의에 부합하지 않는 상급자의 명령에 기독교인은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
류현모(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약리학교실 교수)
#류현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