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의 현대적 해석에 의한 ‘알파 창조론’(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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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하나님

허정윤 박사

모세는 하나님이 창조의 마지막에 인간 ‘아담’을 만드시는 모습을 매우 극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모세에 의하면 하나님은 인간 창조에 대하여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יֹּאמֶר אֱלֹהִים נַעֲשֶׂה אָדָם בְּצַלְמֵנוּ כִּדְמוּתֵנוּ וְיִרְדּוּ בִדְגַת הַיָּם וּבְעֹוף הַשָּׁמַיִם וּבַבְּהֵמָה וּבְכָל־הָאָרֶץ וּבְכָל־הָרֶמֶשׂ הָרֹמֵשׂ עַל־הָאָרֶץ׃)고 선포하셨다(1:26).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이처럼 특별하게 땅과 그 안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목적과 권한을 주시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창조 톨레도트에서 인간의 창조목적에 관한 서술은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아는 지식을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알아야 할 부분이다.

이 구절에서 한글성경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라고 번역한 것에서도 보듯이, 하나님은 자신에 대해서 1인칭 복수 대명사로 표현하시고, ‘나아세’(נַעֲשֶׂה: ‘우리가...만들고’)라는 복수 동사를 쓰셨다. 이와 관련하여 하나님을 표현하는 ‘엘로힘’은 기독교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이해하는 복수 명사이지만, 성경에서는 단수 동사를 써서 단수로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구절의 히브리어를 줄여서 직역해보면, 하나님이 ‘우리가 우리들의 형상과 우리들의 모양대로 사람(단수)을 만든다. 그리고 그들(사람의 복수)이 땅과 생물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이 구절의 히브리어 구조를 보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나아세’ 동사의 목적어 ‘아담’(인간, 사람)은 뒤에 나오는 ‘웨이레뚜’(וְיִרְדּו: 다스린다) 복수 동사의 주어가 된다. 다시 말하자면 ‘만든다’의 목적어인 ‘아담’(사람)은 단수인데, 하나님은 단수 ‘아담’을 주어로 하는 ‘웨이레뚜’(다스린다)는 동사는 복수형으로 쓰셨다. 그렇게 되면 ‘아담’이 창조되는 과정에서 단수에서 갑자기 복수로 바뀌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 의문에 대해 모세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וַיִּבְרָא אֱלֹהִים אֶת־הָאָדָם בְּצַלְמֹו בְּצֶלֶם אֱלֹהִים בָּרָא אֹתֹו זָכָר וּנְקֵבָה)라고 서술했다(1:27). 여기에서 모세는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아담에게 단수 명사 ‘첼렘’(צֶלֶם: 형상)을 반복 사용하여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표현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한 인간을 만드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리고 ‘오토’(אֹתֹו)라는 3인칭 단수대명사를 남자와 여자 앞에 붙여놓았다(한글 번역에서는 생략되었음). 그리고 3인칭 복수대명사 ‘오탐’(אֹתָם)을 덧붙여 ‘그들을 창조하셨다’(בָּרָא אֹתָם׃-이 부분도 한글성경에서 번역되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의미는 단수의 ‘오토’를 남자와 여자로 나눠서 복수의 ‘오탐’으로 창조하셨다는 뜻이 된다. 모세는 앞에서 단수 미완료동사 ‘이바라’(יִּבְרָא)를 사용했으나, 뒤에서 창조된 ‘남자와 여자’, 그리고 ‘그들’을 각각 같은 의미의 단수로 표현하기 위해서 ‘빠라’(בָּרָא: 단수 완료형)를 두 번이나 사용했다. 하나님이 1:26에서 ‘웨이레뚜’ 동사를 복수형으로 말씀하신 이유와 그 말씀에 대한 구조적 의문은 인간이 남자와 여자의 복수로 창조됨으로써 해결되었다. 그러나 모세는 거꾸로 남자와 여자를 합쳐서 단수 동사로 표현했다. 여기에 아무런 의문이 없을까?

기독교인들은 성부, 성자, 성령의 세 분 하나님이 삼위일체로서 동일본질(consubstanialis)이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삼위일체의 경륜적 일치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성자 하나님은 자신의 사역에 대해서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한다고 말씀하셨다(요5:19).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는 어떤 불일치도 없었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대 기독교인은 창조 톨레도트(1:27)에서 삼위 하나님 중에서 인간을 직접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하나님이 어느 분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 의문에 대해 기독교적인 관점은 요한의 해석에 따르는 것이다. 요한에 의하면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요1:3). 요한에 의하면 그분은 창조 톨레도트에서 첫날에 빛으로 이 땅에 임재하셔서 창조를 실행하신 성자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요한의 해석과 다른 것은 기독교적인 창조론이 아니다. 그런 해석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과 유대교적 창조론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계속)

허정윤 박사(알파창조론연구소, 창조론오픈포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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