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부흥이 다원주의 사회인 미국의 이념적, 종교적 뿌리를 드러낸 현상이라면, 개신교가 무비판적으로, 너무 쉽게 저 부흥을 후원했다면 그 부흥이 사그라든 지금 개신교는 살아남을 만한 신앙, 고결함, 체력, 유효성을 과연 갖고 있는가? 종교 부흥에서 비롯된 좌절, 실패, 혼돈 이후 이 사회에서 (저 종교 부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종교 부흥이 확장되는 데 기여한) 개신교는 개인의 삶이나 공적인 삶의 영역에서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을 대변할 수 있을까? 종교 부흥에 앞서 자본화되고 대중화되고 상품화된 이단들을 너무나도 손쉽게, 무비판적으로 지지함으로써 개신교 교회들에 생긴 구멍은 무엇일까?
윌리엄 스트링펠로우 - 사적이며 공적인 신앙
우리 안에는 거짓과 미혹의 소리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본성 속에 교묘히 숨어 있어서 우리의 생각으로는 분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이 내 생각인줄 알고 행동합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채찍과 울타리로 어린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를 벗어나지 않도록 막으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고난이라고 하지만, 고난이 아니라 죄이고, 하나님은 죄가 우리를 끌고 가지 못하도록, 우리 안에 쓴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생가지를 쳐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우리를 지킨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자들이 자기의 땅에서 무엇을 하든 하나님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남의 나라에 살면서 하나님 나라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이것이 고난입니다.
네게브 야하드 - 광야에서 온 편지
우리를 배부르게 하시는 분이다. 가장 크고 영원한 것으로. 바로 하나님이다. 가장 크고 영원하신 하나님이 나를 채워 주셔서 그분과 함께 살 때 모든 갈급함은 사라지고 영원한 포만감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은 필요로 우리를 채우지 않으신다. 하나님으로 배부르게 하신다.
신재웅 - 페이지 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