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들은 수십 년 동안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해 왔다. UN 안보리가 이 문제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해야 한다.”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UN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이 지난 10일 UN 인권이사회(UNHRC)에서 한 말이다. 퀸타나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은 또 한국 정부를 향해서는 ‘북한인권법’의 이행을 촉구하면서 “(남북) 통신 자유에 대한 제한을 낮춰야 한다. 북한과 협상할 때 인권 문제도 함께 다뤄야 한다”고 충고했다.
UN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이 북한의 심각한 인권상황을 언급하며 한국정부에 ‘쓴소리’를 했다는 보도는 현재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더구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법이라며 ‘대북전단금지법’을 직접 겨냥한 것을 볼 때 북한의 인권 문제를 외면하고 있는 한국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충격적이다.
UN이 이처럼 한국 정부의 대북인권 정책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분쟁지역 국가의 상황도 아니고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한국이 어쩌다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인권 후진국’으로 비쳐지게 됐는지 절로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 행해온 일련의 북한 관련 정책들을 떠올리면 최근 들어 한국을 향해 쏟아지는 국제사회의 ‘경고음’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UN을 비롯해 미국, EU 등의 인권 전문가들은 지난해 말 거여의 독주로 통과시킨 ‘대북전단금지법’을 거론하며 한국 정부와 여당이 북한 인권을 사실상 방기, 묵인하는 것으로 해석할 정도다. 친북 성향의 정부여당 인사들이 북한 김정은 정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북한 주민에 대한 인권 탄압을 애써 모른 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UN 등 국제사회가 한국 정부를 향해 대놓고 비판하고 있는 것은 11년 만에 국회 문턱을 넘은 ‘북한인권법’이 문재인 정부에서 5년째 잠자고 있는 것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북한인권법’에 명시된 북한인권재단이 출범하려면 여야가 각기 이사 추천을 해야 하는데 야당은 적극적인 반면에 여당은 급할 게 없다며 마냥 느긋한 태도다.
이 뿐만이 아니다. 반드시 짚어야 할 심각한 문제가 또 있다. 1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46차 UN 인권이사회에 EU가 북한인권 결의안 초안을 제출했는데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영국, 호주 등 43개국이 참여한 공동제안국에 또 빠졌다. 한국은 지난 2009년부터 매년 UN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해 왔으나 문재인 정부 들어 2019년, 2020년 2년 연속으로 공동제안국에서 빠지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해 “한반도 정세 등 제반 상황을 고려했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심각한 인권 상황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다고 북한 인권이 당장 달라 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북한과 대화를 통한 교류 협력을 목표로 삼고 있는 정부로서는 나름 합당한 근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UN의 결의는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다. 특히 인권 문제는 국제사회의 인식 공유를 전 세계에 공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 김정은 정권에게는 상당한 압박이 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 눈치를 보느라 대북 인권 결의에 빠지는 것을 북측에서는 당연하게 여길지 모르나 우리 입장에서는 세계적인 ‘인권’ 연대에서 이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그동안 쌓아온 민주주의 가치와 자산에 상당한 손실을 가져 올 수 있다.
더구나 ‘대북전단금지법’은 국제사회 인권운동가들 사이에서 ‘북한인권악화법’이라고 평가될 정도다. 그런데도 외교부 최종문 차관은 UN 인권이사회 석상에서 “(한국 정부가)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향상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이 북한의 인권 탄압을 외면하고 사실상 방조하는 상황에서 외교부 차관이 사석이 아닌 UN에 나와 북한 인권에 기여했다는 식의 자화자찬이나 하고 있으니 나라의 위신이 뭐가 되겠는가.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3년 연속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불참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다. 정부가 23일 경에 이뤄질 결의안 채택 전까지 참여 의사를 밝히면 된다. 다만 그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외교부는 지난해에도 결의안 채택 직전까지 “입장이 결정된 바 없다”고 해놓고 끝내 UN 인권이사회 공동제안국에 최종 불참한 전례가 있다.
퀸타나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은 UN 인권이사회에 “현재 북한에서 절멸(絶滅)과 살인, 노예화, 고문, 감금, 성폭행, 강제 낙태, 다른 형태의 성폭력, 종교와 인종, 성별에 대한 박해가 자행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UN이 이 같은 북한의 반인권적 실태에 대해 결의하는 것은 북한 스스로 달라질 기회를 주되 ‘결의’라는 압박 수단으로 그 시간을 앞당기려는 것이다.
남북관계를 말할 때 흔히 내세우는 말이 ‘화해와 협력’이다. 그런데 진정한 ‘화해 협력’은 ‘일편단심’ ‘일방통행’으로는 되지 않는다. 북한 김정은 정권을 위협하는 것은 남한도, 미국도 아닌 그들 자신이다. 즉 북한 스스로 달라져야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게 된다는 말이다.
정부가 ‘화해와 협력’을 내세우며, 북한 인권을 외면하는 것은 북한 스스로 달라질 기회와 시간을 점점 더 빼앗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 국제사회가 한국정부를 향해 ‘우려’ 수준을 넘어 ‘경고’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전 세계가 북한의 인권 개선을 위해 이토록 애쓰고 있는데 한국정부가 나서서 찬물을 끼얹지 말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