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로 세계를 평정한 커피 원조의 나라 에디오피아
에디오피아(에티오피아)는 커피의 원조 국가로도 유명하다. 3천 년 전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을 만나러갔던 시바 여왕은 수많은 향신료를 가지고 갔다고 기록되어 있을 만큼, 지금의 에티오피아는 고대로부터 향신료와 향품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다(왕상 10: 2; 사 60:6; 렘 6:20; 겔 27:22).
시바 여왕이 지금의 커피라는 이름의 열매를 정식으로 가져갔을 리는 없다. 성경은 다만 향품에 대한 스바 지역 사람들의 오랜 명성을 알려주고 있다. 혹시 커피 유사 향료를 가지고 갔었을 지도 모른다고 즐거운 상상을 할 뿐이다.
에티오피아에서 민간에 전해지던 커피가 드디어 문헌에 얼핏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에티오피아에서 오랫동안 자생하던 커피나무는 늦어도 9세기부터 에티오피아의 고지대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 문헌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종교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1671년 레바논의 언어학자 파우스트 나이로니의 저서 <잠들지 않는 수도원>에 나오는 6세기 경의 전설에 따르면 목동이었던 카르디(Kardi)는 우연히 방목해 기르던 초원의 산양들이 먹고 심하게 흥분하는 열매를 발견한다. 카르디는 이 빨간 열매를 입으로 씹어보았다. 향긋한 냄새가 입에 퍼지면서 온 몸의 기분이 상쾌해지고 생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그는 이 열매를 마을로 가져왔고 피곤함을 덜어주는 커피의 효능을 알게 된 마을의 수도승은 수행자들을 돕기 위해 이 열매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커피는 일찌감치 수도사들에게 전해 내려오던 향료요 비약(秘藥)이었다.
에티오피아 유대교, 기독교, 토속 종교 등에서 비밀스럽게 사용되던 커피는 마침내 이슬람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슬람의 전파와 더불어 세계로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14세기 초 페르시아 종합의학서인 <의학집성>은 아라비아 의학자 라제스의 말을 빌어 ‘아프리카에 자생하던 분(Bunn=커피)의 생두를 갈아 끓여낸 액체는 위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고 전하고 있다.
볶지 않은 생두를 사용하던 커피는 13세기 중반(1250년 경) 볶는 방식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아라비아 반도와 그곳 메카는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모슬렘 순례객들이 서로 간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커피도 자연스럽게 아라비아 반도를 벗어나 이집트, 터키를 거쳐 유럽으로 들어가 기독교 사회와 온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구스(에디오피아)와 대한민국
함의 아들 구스의 일족이 에디오피아를 이루었다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고조선과 부여와 같은 우리 민족의 시원이 한반도가 아닌 지금의 요동과 만주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것처럼 구스가 단순히 지금의 에디오피아 지역만을 비정하는 것은 아님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우물 구덩이에 갇힌 예레미야 선지자를 용감하게 구한 의리 있는 구스 사람 내시 에벳멜렉(렘 38:7-13)처럼 에디오피아는 우리나라에도 고마운 의리의 국가였다. 1950년 6.25 남침 전쟁 때 에디오피아는 6037명이나 되는 젊은이들을 UN군의 일원으로 파병하였다. 이 가운데 500여명이 부상당하고 150여명이 전사했다. 1인당 국민소득 겨우 80달러의 당시 한국은 에디오피아보다도 훨씬 가난한 나라였다. 하지만 에디오피아 병사들은 이 불쌍하고 가난한 국가에 기꺼이 참전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그 어느 유엔 파견국 병사들보다도 용감무쌍하게 무력 침공과 불의에 대항한 군대였음이 전사(戰史)에 뚜렷이 남아있다.
당시 에디오피아는 왕정 국가였다. 그런데 이후 에디오피아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는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초청으로 한국을 공식 방문한 적이 있다. 1968년 한국 방문 시 셀라시에 황제는 영락교회 주일 예배에 참석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더욱 유명해졌다. 당시 한경직 목사는 "빌립과 에티오피아 내시"(사도행전 8:26-40)라는 제목으로 설교 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일레 셀라시에는 암하릭(에티오피아)어로 "삼위일체의 힘"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시바 여왕의 제 225대 후손이라 알려진 인물이다. 에디오피아 사람들은 시조 메넬릭이 솔로몬과 시바 여왕의 2세라 믿고 에티오피아 제국 헌법에 이를 사실(史實)로 규정하고 있다. 그가 다스리던 시기 에디오피아는 자원 부국으로 국민소득이 3,000달러에 달하였고, 검은 아프리카 유일의 독립국임과 동시에 유일한 기독교 제국이었다.
그러나 냉전 시대 아프리카 대륙에 불어 닥친 이데올로기 바람으로 인해 1974년, 에디오피아는 공산주의 혁명 속에 3천년 왕조가 무너져 버렸다. 이후 에티오피아는 북부 에리트레아가 완전한 독립국으로 분열되어 나갔으며 1991년 멜레스 제나위가 공산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을 한다. 공산정부는 무너졌으나 공산 통치를 거치며 무너진 이 나라 경제는 안타깝게도 2011년 현재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겨우 350달러(약 37만원)에 불과한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전락해버렸다.
지난 2011년 우리 대통령이 이 나라를 방문한 동안 수도 아디스아바바 인근 달동네를 찾아 공용 화장실을 만들고, 마을회관·진료소 및 공동우물 개·보수 작업에 나선 것도 지금은 너무도 어려워진 이 나라 경제에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든 반드시 도움을 주겠다는 한국전쟁 참전에 대한 ‘보은(報恩)’의 의미가 담겨있었다. 실제로 대통령은 한국전 참전기념비를 찾아 헌화한 뒤 참전 용사를 만난 자리에서 “한국은 에티오피아를 절대 잊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에디오피아는 늘 믿음의 중요한 역사에 동참한 민족으로 성경의 기록에 남아 있다. 성경이 에디오피아인들을 잊지 않는 것처럼 대한민국도 6. 25에 참전한 에디오피아인들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많은 시민단체들과 선교 단체들이 이 나라를 기억하고 빚을 갚기 위해 여러 모로 사역과 봉사에 나서고 기도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가 아닐 수 없다. 백석대 선교학자 장훈태 교수도 그 중 한 분이다.
구스족의 미래
오늘날 구스족은 아프리카 에디오피아와 중동 땅의 주인이 되어 있다. 크게 보면 사하라 사막 아래 검은 아프리카 대륙은 주로 같은 함족인 미스라임과 양분하였고, 중동 땅은 다른 함족 후손들과 셈족 일부가 함께 차지하게 되었다. 결코 가볍게 볼 민족이 아닌 것이다.
성경이 구스족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모세의 아내도 구스 여자요 예레미야 선지자를 살려낸 의리의 사람도 구스 사람이었다. 오히려 모세의 아내가 구스 사람임을 시비 걸고, 그것을 핑계로 모세를 무시하고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던 아론과 미리암은 하나님께 책망과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구스 출신 아내 문제로 모세를 책망한 적은 없었다.
충성스런 구스인 에벳멜렉은 군사 30명과 함께 선지자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건졌다. 여호와 하나님은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이 에벳멜렉의 생명을 특별히 보존하셨다(렘 39:15-18). 사도행전 8장은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 통치 때,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와 이사야서를 읽다가 최초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인 빌립에게 전도 받은 사실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행 8장 26-39). 빌립은 주님의 지시를 따라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광야 길에서 병거를 타고 이사야서를 크게 읽고 있던 내시를 만났다. 에디오피아 왕실 재무를 담당하고 있던 이 내시는 빌립을 통해 자기가 읽고 있던 이사야서 53장 7,8절의 말씀이 고난의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그 자리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빌립에게 세례를 받았다(행 8:35-39). 여전히 이 신앙 전통은 에디오피아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사건은 이방인들에게도 본격적으로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하는 성령의 역사를 알리는 극적 사건이었다. 세상과 사람은 외모를 보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하나님은 한 번도 구스족을 가볍게 여기신 적이 없다. 복음에는 차별이 없다. 하나님의 은총은 우주적이요 보편적이다. 구스족도 당연히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안에 있는 귀한 민족이다.
최근 기독교 혐오증(Christophobia)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 특별히 구스의 땅인 수단의 무슬림 권위주의 정부는 수십 년 동안 수단 남부의 소수 기독교인들과 정령숭배자(animist)들을 세차게 핍박하였다. 언론은 이 상황을 내전이라 보도했지만 그 내막은 수단정부가 소수종교인들을 지속적으로 탄압하고 핍박한 것이었다. 핍박의 절정은 2003년 시작된 다르푸르의 악명 높은 인종살해에서 절정에 달하였다.
이 같은 약탈과 폭력은 기독교인들이 인구의 대다수인 에디오피아에서 조차 교회가 소수의 무슬림들에 의해 방화·약탈을 당하는 테러로 이어지고 있다. 비단 수단이나 에디오피아 뿐 아니라 기독교 혐오증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심각할 정도로 확산 되고 있다.
특별히 구스족의 지역은 종교적 충돌이 대단히 심한 지역이다. 다수 기독교인들이 사는 남수단과 에디오피아 뿐 아니라 기독교인들이 소수에 불과한 시리아, 이라크, 이집트, 이란 등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독교 핍박은 정말 우려스럽다. 구스 족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 같은 핍박을 이겨내고 복음의 선봉에 서는 지혜로운 민족이 되기를 기도한다.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김천대-안양대-평택대 전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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