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제나 저제나 소식만 기다리던 중 주일 오후 2시 반쯤 대구서문교회의 제자 집사가 메신지로 이성헌 원로 목사님의 소천 소식을 알려왔다. 작년 가을인가 요양원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실 때 대구에 설교세미나 차 들러서 뵙고 오려고 갔는데, 코로나 때문에 가족도 면회가 안 된다 해서 아쉽게도 발걸음을 돌린 적이 있다.
[2] 마지막으로 목사님을 뵌 것은 3년 전, 대구서문교회 106주년설립 기념예배 강사로 가서 18년 만에 123부예배 설교를 했을 때다. 2부예배를 마친 후 맨 뒤에 사모님과 같이 서계시는 목사님 앞에서 큰 절을 올렸던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론 너무도 영광스럽고 감개가 무량한 날이었다. 그때 내게 하셨던 말씀은 “좋은 교회 맡았으면 좋겠다!”였다.
[3] 그분과의 처음 만남은 신대원 1학년 말 대구서문교회의 교육전도사 사역을 위해 면접을 보았을 때였다. 첫 질문이 “어떤 책을 즐겨 읽습니까?”였다. “성경을 좋아합니다”라고 답했다. 연이은 질문이 “성경 다음으로 어떤 책을 즐겨 읽으세요?”였다. “성경 다음으로는 수필을 좋아합니다”라고 답했다.
[4] 나중에 “나는 부교역자들 면접을 볼 때 무슨 책을 많이 읽느냐 물어서 수필집을 즐겨 읽는다고 하면 웬만하면 거의 뽑습니다”라는 <목회와신학>에 실린 그분의 인터뷰 내용을 읽으면서 그분과의 면접 당시를 회상하게 됐다. 결국 면접에 합격한 후 1989년 새해부터 대구서문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5] 그분을 만날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분이 얼마나 대단한 설교자인지를 알지 못했다. 처음 들은 그분의 설교는 단숨에 나를 매료시키고 말았다. 이후로 나는 똑같은 설교를 123부 연속해서 듣곤 했다. 원래 성경을 좋아하던 나로 하여금 성경만큼이나 설교에 빠지게 만든 분이 그분이다.
[6] 그래서 지금 설교학 교수까지 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5년간 사역 후 목사 안수를 받고 미국 유학을 떠나면서 존경하는 목사님과 이별을 하게 됐다. 유학을 갈 때도 “우리 교회 부교역자 중 첫 유학이니 모두가 정성을 모아달라!”고 광고하셔서 당시로는 꽤 많은 액수의 현금을 모아주셨다.
[7] 총신 신대원 시절 설교학을 가르치던 정문호 목사님이 당신의 교재에다 이성헌 목사님의 별명을 세 가지로 붙여주신 것을 보았다. ‘대구서문교회 이성헌 목사-설교의 대명사, 설교의 예술가, 설교의 요리사.’ 정말 딱 맞는 별명이었다. 나는 그분을 ‘LeePurgeon’이라 부른다. 젊은 시절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를 달달 외우셨기 때문이다.
[8] 이분의 설교를 설교학적으로 분석하자면, 설교에 관해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분으로 평가할 수 있다. 우선 성경을 보는 눈에 남다르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수년간에 걸친 그분의 로마서와 요한복음 연속설교는 우리를 무지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수준 높은 설교를 들을 수 있다는 자체가 엄청난 특권이었다.
[9] 다음 장점은 빼어난 언어 구사력이다. 그분은 남들이 흉내 내기 힘들 정도로 탁월한 표현력을 지니고 계셨다. 예를 들어, ‘절벽’을 설명하실 땐 이렇게 묘사하셨다. “깎아지를 듯한 절벽이 평풍같이 둘렀고.” 그러면 청중들 눈앞에 수직으로 된 낭떠러지 절벽들이 파노라마처럼 쫙 펼쳐지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10] 목사님은 성도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설교를 아주 싫어하셨다. 그래서 늘 강조하신 게 ‘논리’(logic)다. 나는 설교자들이 논리뿐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감정도 잘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목사님은 논리에만 신경 써서 설교하시는데도 청중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대단한 능력을 갖고 계셨다.
[11] 그분이 구사하는 논리가 얼마나 탁월하고 대단했으면 사람의 감정까지 완전히 사로잡았겠는지 상상해보라. 그분은 전달에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갖고 계셨다. 정말 ‘타고난 이야기꾼’, ‘천재적인 스토리텔러’셨다.
[12] 조곤조곤 조용하고 잔잔하게 논리적으로 시작하다가, 파도가 치듯 광풍이 몰아치듯 절정에 달할 시에는 듣는 이들의 마음이 삽시간에 흥분과 감동의 도가니로 가득 차게 된다.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기도 하셨지만 후천적인 노력도 대단하신 분이셨다. 주무실 때엔 천정에 줄을 달아 연필과 종이를 연결해놓으셔서 번개처럼 번뜩 지나가는 생각과 아이디어들을 간단하게 적어두셨다.
[13] 그러다가 날이 새면 그걸 노트에 상세하게 기록해놓으실 정도로 설교에 미친 분이셨다. 김형석 에세이를 즐겨 애독하셨고, 철학과 인문학 서적을 탐독하셨다. 그분이 자주 말씀하시던 얘기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한 권의 책을 읽는 사람은 열 권의 책을 읽는 사람에게 지배를 당하고, 열 권의 책을 읽는 사람은 백 권의 책을 읽는 사람에게 지배를 당하고, 백 권의 책을 읽는 사람은 천 권의 책을 읽는 사람에게 지배를 당한다.”
[14] 어릴 때부터 독서애호가였던 나로 하여금 더 책의 사람이 되게 하셨던 그분의 가르침이다. 신대원 다닐 때의 일이다. 옥한흠 목사님이 시무하시던 사랑의교회에서 7년 만에 이성헌 목사님을 부흥회 강사로 모신 적이 있다. 사랑의교회에서 설교 깨나 하는 유명한 설교자들을 많이 모셨다고 한다.
[15] 그런데 그 설교들이 너무 실망스러운 나머지 당회에서 앞으로 외부강사 모시지 말고 옥 목사님과 부교역자들로만 설교했으면 좋겠다 강권해서 7년간 강사를 모시지 못했다고 한다. 어느 날 옥 목사님이 이성헌 목사님께 그간의 사정을 말씀드리고선 옥 목사의 설교 외엔 들을 설교가 없다고 교만한 성도들을 말씀으로 혼 좀 내주시라면서 부흥회를 초청하신 것이다.
[16] 3일간의 집회에 사랑의교회 사상 최고의 인원이 모이고, 교회 역사상 최고로 은혜로운 부흥회를 경험했다는 얘기를 거기 사역하는 동기 목사를 통해 직접 들은 바가 있다. 한국에 그런 대설교가가 존재하신 줄 몰랐다는 얘기와 그분 밑에서 설교를 배운 내가 너무 부럽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17] 대구서문교회에서 전도사 사역을 하다가 사랑의교회로 가서 중고등부를 담당했던 이찬수 목사가 어느 여름 수련회 강사로 이 목사님을 모신 때가 있었다. 이 목사님이 아무리 설교를 잘하셔도 당시 연세로는 중고등부 강사로는 적합지 않았을 때였다. 이 목사님이 그 수련회를 앞두고 그들에게 잘 전달되는 설교를 위해 고심을 많이 한 것으로 기억한다.
[18] 중고등 학생들에게 맞는 언어를 활용하기 위해서 서문교회의 중고등부 회장단을 담임 목사실에 부르셔서 맛있는 다과를 대접하면서 요즘 아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언어가 무엇인지를 물어보셨다. 그때 아이들이 목사님께 “썰렁하다!”는 말의 뜻과 함께 다른 내용에 대해서도 설명을 드렸다고 한다. 청소년들에게 어필되는 설교를 하시기 위해서 그처럼 애쓰시는 모습 역시 내겐 놓칠 수 없는 가르침이었다.
[19] 그 결과 수련회를 마친 후 사랑의교회 중고등부 학생들로부터 300통이나 되는 편지를 받으셨다 한다. 정말 역사적인 반응이 아닐 수 없다. 영락교회의 한경직 목사님과 충현교회의 김창인 목사님 교회에서도 부흥회를 인도하신 적이 있으신데, 두 분 모두가 공통적으로 하신 말씀이 “이 목사님이 서울에서 목회하셨으면 우리보다 더 큰 교회를 하셨을 텐데...”라는 아쉬움의 내용이었다고 한다.
[20] 지구촌 교회의 원로이신 이동원 목사님과의 첫 만남에서 그분께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목사님, 제가 설교학 교수로서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우리나라에서 누가 설교 제일 잘하느냐?’라는 건데, 그럴 때마다 저는 늘 목사님을 언급합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목사님께 똑같은 질문을 드린다면 목사님은 누구를 말씀하시겠습니까?”
[21] 그때 이동원 목사님이 딱 세 사람을 언급하셨는데, 그중 한 분이 이성헌 목사님이셔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새에덴교회의 장로 중 <송가네 학습법>으로 유명한 송하성 교수라는 분이 있다. 인천 시장을 역임했던 송영길 전 인천광역시장의 맏형 되는 분이다.
[22]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상업고등학교를 다니던 평범했던 소년 송하성이 고등학교 1학년 시절 호기심으로 찾아간 교회에서 우연히 듣게 된 한 목사의 탁월한 설교를 통해 완전히 거듭나서 공부를 시작한다. 그의 동생들 역시 형을 통해 변화를 받아 한 집안에서 총 5명의 고시합격생들이 배출되었다. 그때 송하성의 가슴에 불을 지른 분이 누군가 했더니 이성헌 목사님이셨다.
[23] 그분에 관한 일화들을 기록하자면 한도 끝도 없기에 이제 매듭지으려 한다. 그분의 강직하고 올곧은 성품과 고매하고 수준 높은 정신과 신학적 탁월함과 성경적 깊이는 한국 교회의 큰 자랑거리이다. ‘설교의 대명사’, ‘설교의 예술가’, ‘설교의 요리사’로 한국 교회 역사의 한 페이지에 굵고 선명한 발자취를 남기신 ‘이성헌 목사님’.
[24] 마침내 그분은 당신의 사명을 다하시고 사랑하는 아내가 앞서 가신 천국으로 떠나가셨다. 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영적 거성이자 설교의 거목 밑에서 배우고 도전받고 영향 받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엄청난 영광과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한국교회 역사에 길이 남을 신실한 목회자요 대설교가를 잃은 슬픔과 아쉬움이 진하게 다가온다.
[25] 이제 그분이 남겨두고 가신 무거운 과제들이 우리 앞에 잔뜩 놓여있다. 그 일들을 성실히 잘 수행하여 천국에 갔을 때 잘했다 칭찬 받는 것은 우리 후배들에게 남겨진 몫이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성헌 목사님, 천국에서 영원히 안식하소서!
신성욱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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