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종교사회학회가 13일 오후 3월 정기학회 모임을 온라인 줌을 통해 개최했다. 이날 김민아 박사(인천대)는 ‘1987년 민주화 전후 시기 진보적 개신교 사회운동의 변화’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김 박사는 “한국 진보적 개신교 진영은 1970, 80년대 민주화 운동과 민중 생존권 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1987년 이전 시기 한국의 진보적 개신교 사회 운동은 담론과 조직, 의례의 측면에서 종교적 표현을 드러내는 사회 운동을 전개했다”며 “그러나 1987년 이후에는 두 영역으로 나뉘어져 지역 사회 운동에서는 종교적 표현을 약화시키고 일반 사회 운동으로서의 정체성을 부각시킨 반면 민중교회 운동에서는 신앙을 강화함으로써 종교적 영역을 공고히 하고자 했다”고 했다.
김 박사는 “한국 개신교는 1960년대 4·19 혁명을 계기로 민주화 운동 의식을 각성하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1960년대 중반 이후부터 사회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며 “이 당시 개신교 사회 운동의 특성은 1960년대 개신교 인사들의 개인적 참여가 주를 이루었던 방식에서 벗어나 기독학생 운동 단체, 산업 선교 단체 등 교회나 교단 밖의 단체를 통한 조직적 운동을 전개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의 진보적 개신교 사회 운동의 핵심적 선교론을 꼽는다면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들 수 있다. 하나님의 선교란 ‘선교의 주체를 하나님으로 보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 선교하는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것을 교회의 선교 활동으로 보는 관점’이다”며 “이전까지 교회를 선교의 중심으로 놓고 선교 방법을 논의하던 것에서 탈피하여 교회를 선교의 도구로 본다는 점에서 선교의 개념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것이었다. 교회의 주된 기능은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함으로써 세상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됐다”고 했다.
이어 “총체적 맥락에서의 인간 해방을 목적으로 하는 하나님의 선교 개념은 진보적 개신교 진영의 사회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며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1987년 이전 진보적 개신교 사회 운동은 종교적 표현을 부각시키는 특징을 보인다. 하나님의 선교론으로부터 강력한 영향을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이전 시기 진보적 개신교 사회 운동이 가시적으로 종교적 표현을 부각시켰던 것은 당시 사회 운동이 가능한 영역이 종교 영역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 박사는 “민주화 이후 진보적 개신교 사회 운동은 특정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지역성을 강조하는 지역 사회 운동에 집중하였다는 특징을 보인다”며 “군사 독재 정권이라는 절대 악이 무너졌으나 현실적으로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한국의 진보적 사회 운동 세력은 분열과 무기력, 허탈감 등의 후유증을 겪었고, 그 가운데 진보적 개신교 진영은 새로운 운동 영역으로 ‘지역’에 주목하기 시작했던 것”이라고 했다.
이어 “진보적 개신교인들의 지역 사회 운동은 주로 민중교회를 통해 이루어졌다”며 “민주화 이전에는 주민 교회나 노동 교회들이 단체의 기능을 대신하기 위해 활용되었으나 민주화 이후에는 지역성을 갖고 있는 민중교회를 중심으로 진보적 개신교 사회 운동이 전개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1987년 민주화라는 사회 변동에 대한 진보적 개신교 단체들의 대응 전략은 ‘종교적 표현 약화’ 및 ‘종교적 영역 공고화’라는 이중 트랙이었다고 볼 수 있다”며 “먼저 지역 사회 운동을 중심으로 종교적 표현의 약화, 즉 종교적 정체성의 약화가 발생했다”고 했다.
또 “운동 대상이 민중에서 지역 주민으로 확장되면서 좀 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범주의 언어 및 조직, 실천 방식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지역 사회 기관들은 운동 영역에서 종교적 표현을 약화시키게 됐다”며 “운동의 목표와 근거가 사회과학적 언어로 표현되었다. 진보적 개신교 활동가들이 운동에서 종교적 표현을 사용하는지의 여부에 크게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론에 입각하여 개신교적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운동의 목적과 근거를 이루는 신앙적 차원은 여전히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민주화 이후 진보적 개신교 목회자들은 민중교회 운동을 통해 종교적 영역을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영성’이라는 개념을 재발견했다”며 “이 시기 진보적 개신교인들이 민중교회 운동을 통해 종교적 기반을 탄탄히 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호출된 것이 바로 ‘영성’인 것”이라고 했다.
이어 “민주화 이후 진보적 개신교 사회 운동 진영은 민중교회 내에서 종교 의례를 강화하고자 하였다. 민주화 이전 시기 주민 교회와 노동 교회에서의 예배는 정치적・사회적 집회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었다”며 “그러나 민주화 이후 민중교회 신도들이 기도나 예배, 목회적 돌봄에 대한 욕구를 강력하게 표출하였고 이에 민중교회들은 성서 공부와 기도 생활 등의 기본적인 신앙 활동을 강화했다”고 덧붙였다.
김 박사는 “진보적 개신교 사회 운동 외에도 민주화 이후 복음주의 사회 운동과 전통적인 보수 개신교 사회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며 “복음주의 사회 운동의 특징을 살펴보면 먼저, 교회 조직이나 종교적 색채를 강하게 띠는 운동 단체를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둘째, 복음주의 사회 운동 단체들이나 교회들은 전문가 집단이나 교인 등 풍부한 인적 자원을 활용하여 광범위한 운동을 벌였다”며 “셋째, 이들은 풍부한 자금을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전통적 보수 개신교 사회 운동의 특징을 살펴보면 먼저, 전통적 보수 개신교인들은 한기총이나 기독교사회책임, 기독자유당처럼 개신교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조직을 통해 사회 운동을 전개한다”며 “둘째, 전통적인 보수 개신교 진영은 사회 운동을 통해 종교적 이슈를 운동의 내용으로 전면에 제기한다”고 했다.
또 “셋째, 복음주의 사회 운동과 마찬가지로 전통적 보수 개신교 사회 운동은 막대한 자금 동원력을 갖추고 있다”며 “넷째, 보수적 개신교계는 예배라는 종교적 의례를 사회 운동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특징을 보인다”고 했다.
그는 “복음주의 및 전통적 보수 개신교 사회 운동은 민주화 이후 개신교 사회 운동으로서 종교적·사회적 영역에서 가시적인 효과를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운동 방식을 통해 복음주의 및 전통적 보수 개신교 사회 운동은 종교적·사회적 영역에서 명시적으로 개신교 사회 운동으로 인식될 수 있었다”며 “반면에 진보적 개신교 사회 운동은 종교적·사회적 영역에서 개신교 운동으로서의 성격이 비가시화되는 특징을 보인다”고 했다.
이어 “민주화 이후 진보적 개신교 사회 운동의 이러한 비가시화는 결과적으로 진보적 개신교 사회 운동 진영의 주도권(hegemony) 상실로 이어졌다”며 “민주화 이전까지만 해도 진보적 개신교 사회 운동이 한국 개신교의 사회 운동을 대표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개신교 내에서 사회 운동을 대표하는 분파는 더 이상 진보적 개신교 분파가 아니라 보수적 분파가 되었다”며 “진보적 개신교인들의 사회 운동에 비해 보수적 개신교 사회 운동이 개신교계 내에서 좀 더 선명하게 부각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