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법학2. 신법과 실정법

오피니언·칼럼
기고
류현모 교수

하나님은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인 신법(divine law)을 인간에게 주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이 주류를 이루는 세상에서는 하나님을 신화 속의 존재로 취급하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절대적 기준을 인정하지 않는다. 무신론자들의 세계관은 진화론의 패러다임 위에 세워져 있어 인간이 진화하고, 세상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법도 따라서 변화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들은 기독교의 도덕률이 인간을 너무 억압하고 특히 성적인 자유를 억압하기 때문에 이 절대적 도덕률을 버려야 자유롭고 건강한 사회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무신론자들에 의해 만들어져 세상에서 인간중심으로 시행되는 법체계를 실정법(positive law)이라고 한다. 이들은 세상의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하고, 절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믿기에 법의 기반도 구체적인 법률도 지속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법 제정의 궁극적 권위가 국가에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법을 규정하는 것은 권력을 잡은 자들이기 때문에 인간중심의 법체계, 특히 집권당이라는 이익집단 중심의 법체계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실정법 체계에서는 법전이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진화론과 혼합되면서 더 큰 가변성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법은 일반적 지침일 뿐, 각 사건의 전후 맥락과 연관되어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해석되고 집행되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미국의 법률가이며 작가인 존 화이트헤드는 “법에 영속성이 없고 절대적 기준이 없을 경우, 그 법은 판사나 행정관이 해석하고 집행하는 대로 될 것이다. 그러나 법에 영속성이 있다면 어떤 절대적인 판단의 기준이 존재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기독교는 절대적 기반 위에 세워진 법률을 제공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변덕과 이익에 의해 요동하지 않는 법체계를 제공한다. 그 법은 일정하고 객관적으로 유지되며, 그런 까닭에 공정하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의 본성 위에 만들어지고 집행되는 실정법은 항상 권력을 가진 자에게 유리하게 해석되고 집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중심의 실정법 체계는, 하나님이 법률 제정자임을 부인하고, 그분이 주신 신법을 무시하는 사회이다. 살인, 도둑질, 사기, 강도, 간음 등을 금하는 자연법을 부정하는 사회이다. 자연법칙인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20층에서 뛰어내린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같은 맥락에서 자연법을 무시하고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한 독단적 법률을 제정하면 그 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법에 공평성이 사라지고 편파적이 되면 법에 대한 신뢰는 떨어지고 그것을 지키려는 마음도 사라진다. 즉, 법의 구속력이 감소되어 법이 잘 지켜지지 않는 사회로 변해가는 것이다. 이것이 절대자이신 하나님은 부정하면서, 세상이 무질서하고 부도덕하게 변해가는 것을 한탄했던 도킨스가 간과했던 진리인 것이다.

법의 최고의 권위를 국가에 둔 실정법에서 특정 법률에 대해 시민들이 저항할 경우 국가가 취할 두 가지 입장이 있다. 첫째, 국가가 만들어낸 실정법도 절대적인 것이므로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하며 국민의 요구를 묵살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국가가 그 권위를 악용하여 독재를 하며 정권이 국민들의 인권을 억압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들에게 인권은 하나님이 부여한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자연법적 권리라기보다는 헌법적 권리이다. 국가가 부여한 권리이기 때문에 국법에 의해 유보되거나 취소될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둘째, 무한하고 다양한 국민의 욕구에 대해 국가가 급진적 변화를 지속적으로 허용하거나, 국민의 요구를 억압하다가 국민과의 충돌에서 패하는 경우이다. 이때는 심할 경우 국가의 권위가 국민에 의해 휘둘리고 법체제와 사회의 안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된다. 프랑스 혁명이나, 1차 러시아 혁명에서 보듯 혁명주동자들이 반대자를 초법적으로 숙청하며 심각한 사회혼란만 야기하다가 혁명의 에너지가 상실되면 혁명이전의 구체제로 되돌아가는 일이 벌어진다.

그러나 국민들이 국가의 법에 불복종할 가능성보다 더 크고 근본적인 실정법의 문제는 정부가 법과 인권의 근원으로서 자신의 지위를 악용할 가능성이다. 칼 헨리는 “이 세상의 입법, 사법, 행정기관은 절대적 기준을 만드신 하나님 앞에 자신의 행위를 해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라고 주장한다. 만일 기준이 될 만한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기반을 부정하면,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 정부, 스스로의 정당성, 도덕성과 합법성에 대한 비판을 거부하는 독단적인 정부의 탄생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인본주의 실정법은 신의 권위를 가진 국가를 창조하고, 그 국가는 모든 권력을 휘두르며 각 개인을 좌지우지 하려고 할 것이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모든 인간에게 신법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신다. 그 신법에 복종한 인간과 국가에서는 하나님이 부여하신 인권이 보호되고 국가는 번성하였다. 반면,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하는 인간과 국가에서는 하나님이 부여하신 권리체계가 파괴되고 인권도 무시될 것이며, 그런 국가가 건강할 수는 없다. 국가의 지배자들이 신법을 무시할 경우에는 악법, 악한 행정, 편파적인 판결, 부패, 공적자금의 낭비 등 다양한 형태의 악으로 나타난다. 인간 중심의 법체계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법, 정부의 형태, 재판 제도 등을 고안하지만 결국 신법에 순종하는 것 이외의 다른 개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윤리와 마찬가지로 법에도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신법과 무관한 실정법을 통한 지배는 이해 당사자 간의 끝없는 충돌에 의한 혼란이나, 권력자의 독재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성경의 메타네러티브를 통해,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절대자와의 관계가 단절된 인간과 그들이 세운 국가의 결국을 우리는 명확하게 볼 수 있다.

묵상: 절대적 기준이 없는 실정법만으로 질서를 유지하려할 때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류현모(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약리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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