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청년, 답 있수다] 홍해는 왜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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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못하리라”(출 14:13).

김갈렙 목사

때는 BC 1446년 1월 20일 정도로 추정된다. 애굽 땅을 떠난 지 6일째 되던 날 이스라엘은 홍해 옆인 비하히롯이란 곳에 도착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의기양양하게 라암셋에서 출발하여 숙곳, 에담이란 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갑자기 잘 가던 방향에서 직각 각도로 꺾어서 홍해 안쪽 라인을 타고 애굽쪽으로 내려와 애굽 국경 안에 비하히롯에 진 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잘나가던 그들을 정말 이상한 곳으로 인도하여 그들을 최악의 곤경에 처하게 하셨다. 애굽 국경 수비대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상한 곳에 진을 쳤다는 소식을 들은 바로는 신속하게 애굽의 정예병들을 선발하여 가장 빠른 특수병거를 이용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하기 시작했고 이틀 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르렀다. 이것은 하나님의 유인작전이었다. 여호와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스라엘에게는 최악의 곤경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에 믿음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죽게 된 것처럼 부르짖었다. 그것은 신뢰에 기초한 기도가 아니라 불신에서 나온 아비규환의 부르짖음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서 광야에서 죽게 만들었다고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였다. 하지만 모세는 달랐다. 모세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가만히 서서’라는 말은 다 죽게 되었다고 호들갑을 떨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 기초해서 담대하고 평안하라는 것이었다.

모세는 어떻게 그런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까?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홍해를 가를 것이라는 어떤 계시도 받지 않았다. 하나님이 그에게 “어찌하여 부르짖느냐” 하시며 이스라엘 자손에게 바다를 향해 나아가라고 명령하시는 것을 볼 때, 모세가 그런 생각을 꿈에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세는 단지 하나님을 신뢰했고 방법은 몰랐고 중요하지 않았다. 모세는 자신들 가운데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신 하나님이 그것을 이루실 것을 또한 믿은 것이다. 그는 10번의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그 백성 편에 서서 싸우시는 분임을 깊이 체험하였다. 반복된 믿음의 체험은 그 내면에 자리 잡았고 그의 믿음은 인격화되었던 것이다.

모세의 믿음대로 하나님은 그 백성을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구원해 내셨다. 상상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하나님은 홍해바다를 가르셨고 사막의 열풍인 동풍으로 헤어 드라이기처럼 바닷길을 말리셨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노약자도, 우마차도 잘 건너가도록 질퍽한 바닷길이 먼지가 날리는 마른 땅이 되게 하셨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곤경에서 구원해 내셨고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도 교만하고 겁도 없이 바닷길로 따라 들어온 바로의 군대를 완전히 수장시켜 버렸다. 이상은 출애굽 7일째가 밝아오는 새벽에 있었던 일이다.

이 사건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기 상황에서 창세기의 여호와를 경험하게 하는 사건이었으며 누군가의 목격자에 의해서 애굽과 고대근동의 여러 나라에 전파되어 여호와를 경외케 하는 선교적 사건이 되었다. ‘여호와가 영광을 나타낸다는 것’은 그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숨은 여호와의 존재감은 이렇게 종종 사람들에게 계시된다. 이를 위해서는 사람의 힘으로 건널 수 없는 인생의 장애물 곧 홍해와 뒤쫓아 오는 애굽군대를 필요로 한다.

당신은 어떤 홍해 앞에 서 있는가? 요새는 생존도 홍해로 느껴진다. 진학, 취업, 결혼, 자녀교육이 홍해다. 더욱이 생존을 넘어 여호와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우리를 삼킬 듯 넘실대는 찐 홍해바다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홍해는 우리를 수장시키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홍해 앞으로 일부러 인도하셨다. 이곳으로 인도하신 분이 여호와시니 그분이 친히 길을 여시고 그 영광을 나타내실 것이다. 하나님은 상상치 못할 방법으로 그 영광을 나타내시며 홍해가 잊지 못할 추억이 되게 하실 것이다.

‘국화 옆에서’라는 서정주 시인의 시가 있다. 시련과 어려움을 겪고 나서 원숙미를 갖게 된 중년의 내면을 잘 그려낸 시이다. 그처럼 우리가 현재 겪는 홍해는 얼마 후 영적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한마디로 홍해는 ‘홍해 옆에서’라는 시를 쓰도록 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다양한 홍해 앞에 식겁해 서 있는 기독청년들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파이팅하자~

김갈렙 목사 (UBF 세계선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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