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도 수치도 당신을 하늘 아버지께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다.
교만은 말한다. “넌 하나님을 찾기에는 너무 착해.”
수치는 말한다. “넌 하나님께 가기에는 너무 추해.”
교만은 당신을 몰아낸다.
수치는 당신을 가둬둔다.
교만이 넘어짐의 앞잡이라면 수치는 넘어진 뒤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
맥스 루케이도, 예수가 선택한 십자가
찰스 스펄전과 그의 아내 수잔나는 침실에 이사야서 48장 10절(“보라 내가…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이 적힌 액자를 걸어놓았다고 한다. 시련이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생생하게 상기시켜주는 말씀이 아닐 수 없다. “면류관을 얻기 위해 달려가는 사람은 비가 와도 그렇게 신경쓰지 않는다.” 우리의 시련을 완벽하게 계획하고 그것을 이용해 우리를 정화하며 자신의 형상을 더욱 닮게 하는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와 힘이 되시며, 고난의 용광로가 영원히 사라질 때까지 우리를 보존하시며, 의인들이 태양과 별처럼 찬란하게 빛나며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실 것이다.
조엘 R. 비키, 기독교적 삶의 아름다움과 영광
하나님과 율법에 대해 전문가인냥 행동했던 바리새인들은 믿음이 약한 자를 판단하고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믿음이 약한 자, 죄인으로 낙인찍힌 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친구가 누구입니까? 그의 입장을 나의 입장으로 삼고 그가 기뻐할 때 같이 기뻐하고 그가 울 때 같이 울어주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12절에서 우리가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남을 대접하라” 소위 황금률이죠. 예수님의 황금률을 예수님의 생애와 연결해서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게 된 것은 예수님이 먼저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대접하셨기 때문입니다. 진정 강한 자라면 사람을 그렇게 대해야 합니다. 그와 나 사이에 차이와 거리를 만들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게 아니라.
김재흥, 평등과 영원의 복음, 로마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