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고 탈도 많았던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코로나 확산으로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했던 지난 1년여 시간을 돌아볼 때, 이제라도 우리 사회가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26일(금) 오전 9시에 시작되는 첫 백신 접종 대상은 요양병원·시설 입소자와 종사자들 중에서 65세 미만의 약 27만 명이다. 이들에게는 영국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이, 그리고 다음 달에 추가로 도입되는 미국 화이자 백신은 코로나19 전담 의료진과 119 구급대원들에게 접종된다.
코로나19 확진자 중에 치사율은 65세 이상 고령자들에게서 높게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도 65세 이상은 첫 접종 대상에서 제외돼 4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첫 도입되는 AZ백신에 대한 고령자군의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아 정부가 내린 결정이다.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1차 접종 대상자들의 93.8%가 백신 접종에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접종을 불과 사흘 앞두고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국민 절반 이상이 ‘접종을 미루겠다’고 응답했다. 자신의 접종 순서가 가까워 올수록 점점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 불안 심리가 실제로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행동으로 나타날 경우 올 9월까지 국민 70% 이상의 접종을 완료해 11월 집단면역을 달성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지금 백신을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쟁점의 핵심은 국민은 백신을 선택할 권한이 없으면서, 처음 도입한 AZ백신에 대한 효능과 검증에 대해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러다보니 여야 정치인들 사이에서 “대통령이 1호 접종을 해 국민적 불안감을 해소하라”고 주장하고, “대통령이 무슨 실험대상이냐”며 반박하는 볼썽사나운 장면까지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먼저 백신주사를 맞으라는 일각의 주장을 무조건 정치적 공세라고 깎아내리고 무시해 버릴 때인가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은 K방역을 자랑하며 백신 확보에 늑장을 부린 정부에 있다. 그나마 뒤늦게라도 겨우 확보한 AZ백신에 대한 안전성 검증 발표가 오락가락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의 불신과 불안감을 가라앉히기 위해 대통령을 비롯해 지도자들이 본을 보이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 이스라엘, 인도네시아 등 여러 나라의 총리, 대통령 등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국민 앞에서 당당하게 백신을 맞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것이 솔선수범이다.
모 일간지가 “26일부터 시작되는 백신 접종에 대통령 등 고위 공직자가 먼저 맞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고 독자들에게 질문했다. 22일부터 실시간으로 진행된 투표에 24일 현재 “백신 불신을 잠재우기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이 79%, “특혜없이 원칙대로 접종해야 한다는 의견”이 20%로 나타났다.
물론 백신이 능사는 아니다. 다만 지금으로서는 백신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백신 접종으로 집단면역이 생겨야 코로나19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도 “집단면역을 이루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변수는 접종률”이라며 “이는 정부의 힘만으로는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만큼 정부와 의료계, 전문가, 국민이 서로 신뢰하고 소통하며 협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런데 국회가 중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의사의 면허를 박탈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소위와 상임위에서 통과시키면서 대한의사협회가 총파업을 예고하는 등 또 다시 갈등이 재연될 분위기다.
의사의 면허 자격 요건을 강화해 의료인의 위법행위를 예방하고 안전한 의료환경을 조성하겠다는 법 취지에 잘못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전 국민 백신 접종이라는 대사를 앞둔 중요한 시기에 국회가 긁어 부스럼을 내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의사들이 어떻게 나올지 뻔히 알면서도 법 개정을 밀어붙이는 국회나, 지금 시기에 총파업을 하겠다는 의사협회나 결코 바람직한 자세라 할 수 없다. 지금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정치권과 의료계가 국민을 위해 서로 한발 씩 물러서야 할 때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은 지난해 12월 8일 세계 최초로 영국이 접종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100여 개국에서 2억 명이 접종을 완료했다. 입만 열면 K방역의 우수성을 자랑해온 우리나라는 OECD 37개국 가운데서도 맨 꼴찌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백신 안전성 문제조차 담보하지 못해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백신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전적으로 정부와 방역당국의 책임이다. 지난해 말 백신 확보가 늦어진 것에 대해 비판 여론이 일자 “먼저 맞은 나라들의 백신 부작용” 운운하며 스스로 불안감과 공포를 키웠다. AZ백신을 허가하면서 65세 이상을 포함했다가 닷새 만에 65세 미만으로 수정하는 등 오락가락한 것도 정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18일 신년기자회견에서 “백신 불안감이 높아지면 먼저 맞는 것도 피하지 않겠다”고 했다. 백신에 대해 국민적 불안감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이 때야 말로 피하지 않고 당당히 앞장서야 할 바로 그때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