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전세 매물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오는 5월 결혼을 앞둔 회사원 김모(36)씨는 이달 초 경기도 안양시의 아파트(전용면적 59㎡)를 보증금 1억6000만원, 월세 60만원의 '반전세'(보증부 월세)로 계약했다. 매달 갚아야 할 대출 이자도 있어 가능한 한 전세를 얻고 싶었지만, 서울에서 1억원대 전셋집을 찾는 건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었다.
김씨는 "회사가 서울이라 출퇴근이 걱정이지만 서울에서 교통 여건 좋은 아파트들의 전셋값은 추가 대출을 받더라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올랐다"며 "매달 월세를 내야 하는 게 부담스럽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7월 말 임대료 인상을 5% 이내로 제한하는 '전월세상한제'와 임대차 계약이 만료됐을 때 임차인이 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계약갱신청구권'이 시행되면서 전세를 월세나 반전세(보증부 월세)로 돌리는 '전세의 월세화' 현상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집값과 전셋값은 여전히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월세 시장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최근 반전세나 월세 거래량이 크게 늘고 있다. 특히 지난달 서울 주택임대시장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육박할 정도로 거래가 증가했다.
지난해 11월 서울 아파트 임대차 중 전세 거래 비중이 올해 들어 최저치를 기록했다. 특히 계약갱신청구권으로 신규 전세 매물 자체가 씨가 마른 데다, 다주택자가 급증한 보유세 부담으로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면서 주거 불안이 가중되는 양상이다.
지난달 서울 전·월세 시장에서 월세 비율이 급등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주택 거래량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주택 전·월세 거래(신고일 기준) 17만9537건 중 전세가 10만5906건, 월세가 7만3631건으로 집계됐다. 1년 전에 비해 전세는 1.1% 줄어든 반면, 월세는 10.7% 증가했다.
전·월세 거래에서 월세 비율도 지난해 1월 38.3%에서 지난달 41%로 상승했다. 특히 서울 아파트는 같은 기간 26.8%에서 39.5%로 급등했다.
서울 32만 가구를 포함해 전국에 83만 가구를 공급하기로 한 정부의 2·4 공급 대책 발표 이후 집값 상승세가 둔화됐지만, 여전히 상승세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주간 아파트가격 동향에 따르면 이달 둘째 주(15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0.08% 상승했다. 3주 연속(0.1%→ 0.09%→0.08%) 오름폭이 소폭 감소하고 있다.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격 역시 전주(0.33%) 보다 0.03% 하락하며 상승세가 둔화됐다.
다만, 사상 최악의 전세난으로 반전세나 월세 등의 임대 거래가 증가하면서 주거비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급등한 전셋값이 좀처럼 내리지 않고, 매물도 줄어든 상황에서 새 임대차보호법 시행으로 기존 세입자들은 일단 한숨을 돌렸지만, 신혼부부나 집을 새로 임대해야 하는 세입자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정부는 지난해 9월29일부터 계약 갱신 과정에서 전세 보증금을 월세로 바꿀 때 적용되는 전월세전환율이 4.0%에서 2.5%로 낮췄다. 이전 전월세전환율은 4%다. 기준금리에 3.5%를 더한 것으로, 이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10억원의 전세를 보증금 5억에 반전세로 돌린다고 가정하면 전환율 4% 기준에 따라 매달 약 167만원의 임대료를 낸다. 전환율을 2% 낮추면 매달 약 83만원으로 임대료가 낮아진다. 세입자의 주거비 부담이 그만큼 줄어든다.
하지만 전월세전환율을 낮춰서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전월세전환율이 지켜지는 않는 경우가 많고, 신규 계약 때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세입자를 내보내고 새로운 세입자를 받는 과정에서 전월세전환율을 초과하는 수준까지 월세를 올려도 이를 제지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또 전월세전환율은 지역과 아파트, 동호수, 층별에 따라 다른데, 일괄 적용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새 임대차보호법 시행과 세금 부담 강화로 전세의 월세화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새 임대차보호법 시행과 저금리, 세금 부담 강화 등으로 집주인의 수익성이 줄어 전세를 월세나 반전세로 돌리는 움직임이 확산하면서 주거비 부담이 높은 월세 거래 비중이 높아졌다"며 "임대차보호법이 단기적으로 임대시장으로 안정시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전세의 월세화를 가속화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권 교수는 "부동산 보유세 등 늘어난 세금 부담을 세입자에게 전가하기 위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사례가 이어질 것"이라며 "전셋값 급등과 전세 품귀 현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신규 임대 수요자들의 주거비 부담이 커졌다"고 덧붙였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