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준호. 엄마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수영 꿈나무이지만, 매번 4등만 합니다. 메달권이란 손에 잡힐 듯할 뿐, 준호에게는 늘 남의 일입니다. 아들이 1등을 하기를 바라는 엄마는 대회를 마치고 온 아이를 이름 대신 ‘4등’이라 부르며 다그칩니다.
“야! 4등! 너 꾸리꾸리하게 살 거야 인생을?”
아이에게 무섭게 집착하는 준호 엄마는 성적을 올리는 데 일가견이 있다고 소문난 코치 광수를 수소문 끝에 찾아갑니다. 그는 국가대표 출신으로 한때 아시아신기록까지 달성한 적이 있는 유망주였는데요. 코치에게 맞기 싫어 수영을 그만둔 전력이 있지요
준호를 맡기로 한 광수는 준호가 메달을 따게 될 거라고 호언장담합니다. 그런데 준호 엄마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하라고 합니다. 수영장에 절대 들어오지 말라는 것이죠. 교육상 얼핏 타당한 요청 같지만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광수는 체벌을 통해 성적을 올려 왔던 것이죠. 훈련이 시작되고 난생처음 겪는 폭력적 상황에 겁을 먹은 준호에게 광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이 니가 미워서 때린 거 아니거든”
대회를 앞두고 훈련이 계속되면서 광수의 체벌도 반복됩니다. 온몸에 퍼렇게 멍이 들 정도지요. 집에서 옷을 갈아입다가 동생에게 멍 자국을 들키는 바람에 엄마는 광수의 훈련방식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엄마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습니다. 메달을 따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 아픔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사실, 엄마는 광수의 훈련방식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애당초 광수를 소개해 준 지인이 ‘애가 상처받을까 봐’ 소개를 주저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준호 엄마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나, 그 상처 메달로 가릴 거에요”
광수의 조련 덕분에 기록이 향상된 준호는 처음으로 2등이라는 성적을 거둡니다. 난생처음 목에 걸어보는 메달을 들고 준호는 뛸 듯이 기뻐하고, 준호네 가족은 잔치를 벌이지요. 그런데 동생의 한 마디 때문에 산통이 깨집니다.
“형, 예전에는 안 맞아서 맨날 4등 했던 거야?”
광수가 ‘아이를 때려서’ 기록을 향상시켰음을 뒤늦게 알게 된 준호 아빠는 아내와 말다툼을 벌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녀는 요지부동입니다.
“난 솔직히 준호 맞는 거보다 4등 하는 게 더 무서워”
준호 부모의 미온적 태도, 아니 아이를 때려서라도 1등으로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부모의 은근한 기대를 간파한 광수는 더욱 담금질을 합니다. 체벌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게 되지요. 반복되는 매질을 견디지 못한 준호는 반발합니다.
“맞고 싶지 않습니다”
“때리지도 않고 맞지도 않으면서 메달을 따야 진짜 잘 하는 거고,
과정이 중요하다 그랬습니다”
준호는 광수와의 갈등으로 잠시 수영을 그만두게 되지만, 곧 자신이 진심으로 수영을 좋아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고 혼자 힘으로 대회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힘차게 출발하는 것으로 영화 <4등>(2016)은 마무리되지요.
폭력,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한 필요악일까
우리 체육계에서 폭력이란 ‘성적을 향상하기 위해 마땅히 치러야 할 작은 대가’쯤으로 여겨져 왔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결과만 좋다면 그 과정에서 폭력이란 어느 정도 용인 가능하다는 것이죠. 오히려 때려서라도 성적을 올려주는 지도자는 좋은 지도자로 대우를 받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때리는’ 쪽에서 상정한 사고방식일 뿐, ‘맞는’ 피해자에게 있어 폭력은 치러야 할 대가가 될 수 없는, 평생의 상처일 뿐입니다.
체벌로 포장된 폭력은 국가가 주도하는 개발독재 시대의 기치와 맞아 떨어지면서 더욱 정당성을 부여받았던 것 같습니다. 국가라는 집단의 대승적 이익을 위해 힘없는 이들이 겪었던 아픔을 체육계에 만연한 폭력과 연결짓는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폭력, 그 섬칫한 대물림
준호에게 폭력에 가까운 체벌을 가하던 광수가 날카로운 눈빛과 함께 내뱉는 대사는 의미심장합니다.
“하기 싫지? 그때 잡아주고 때려주는 선생이 진짜다”
“내가 겪어보니 그렇드라”
광수는 유망주 시절, 코치의 폭력적 체벌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온 바 있습니다. 그 바람에 그저 그런 문화센터 코치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지요. 그런 그가 자신이 겪었던 일을 제자에게 무용담처럼 늘어놓다니요.
준호는 자신이 없는 사이 물안경을 써보았다는 이유로 동생에게 체벌을 가합니다. 자신이 코치에게 맞은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말이죠. 짐짓 코치 흉내를 내며 동생을 때리는 이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섬찟한 대목일 겁니다. 폭력은 이렇게 대물림되는 것일까요. 영화 <구타유발자들>(2006)은 폭력이 어떻게 대물림되는지를 그려낸 수작인데요. 학창시절 학교폭력을 일삼던 자는 훗날 경찰이 되어 계속해서 폭력을 가하고, 피해자는 경찰의 동생에게 지독한 폭력으로 되갚는 한 편의 지옥도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영화들이 더욱 섬찟한 까닭은 우리가 뉴스에서 마주하는 현실이 너무나도 영화와 흡사하기 때문 아닐까요.
만년 4등 준호는 1등을 할 수 있을까
준호가 수영장 바닥에 떨어지는 빛을 쫓아 유유히 잠영을 하는 모습은 눈부시게 아름다운데요. 이 영화의 시각적 성취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준호가 물에서 가장 즐거워할 때는 기록 달성을 위해 힘을 쓸 때가 아니라, 마치 놀이를 하듯 잠영을 할 때입니다. 이 장면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준호는 마침내 자신이 수영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맞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실력을 향상할 동력을 얻게 됩니다.
폭력은 단시간에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해 줄지는 모르나, 용인되어서는 안 될 악입니다. 게다가 폭력을 불사하면서까지 이뤄야 할 목표가 우리에게 과연 있을런지요.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무력을 써서라도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해 줄 메시아를 기대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겸손의 왕, 평화의 왕으로 오셨고 힘없이 십자가에 달리셨죠. 최근 뉴스 지면을 장식하고 있는 학교 폭력 내지 체육계의 폭력을 목도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떠올린다면 지나친 비약일런지요.
노재원 목사는 현재 <사랑하는 우리교회>(예장 합동)에서 청년 및 청소년 사역을 담당하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 <아는 만큼 보이는 성경>을 통해 기독교와 대중문화에 대한 사유를 대중과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