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세월이라는 선물을 칭송하기보다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거치적거릴까 봐 두려워서? 실제로 세월이 흐를수록 주름이 늘고 피부는 처지며, 흰 머리도 늘어나면서, 우리의 복잡한 인생사, 곧 각자의 독특하고 다른 복잡한 인생사가 그 위에 기록된다. 불현듯 거울은 우리에게 지난 세월과 유한성, 종착을 향해 가고 있는 인생사라는 모호한 선물을 비춰 준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완성하려는, 독특한 현대적 환상 속에서 우리 자신의 지혜로 삶의 수수께끼들을 풀어보려 했다. 한때 자유와 운명을 즐기는 노마드였던 우리가 우리 자신을 세월로부터 해방시키려는 헛된 전투에 참가하는 운명이 되고 만 것이다. 어느 현대 시인이 쓴 대로, 세월이란 '폭력배'와 같다. 세월은 '시간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제멋대로 달아나 버린다.'3 우리가 저마다 경험한 세월들은 문자 그대로 우리 인생과 우리의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측정한 것으로서, 만족 없이 명백히 모순된 굶주림으로 대표되는 현대 사회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사주의에 의해서 제기된 자유를 갖고 싶어 하면서 동시에 비역사적 과거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델리아가 경험한 이야기다.
스탠리 하우워어스 외, 그리스도 안에서 나이 듦에 관하여
P.97 우리 중에 고의로 자녀를 학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사랑의 적극적 힘 임에도 경청을 그만두고픈 유혹은 이따금 들게 마련이다. 딱 잘라 말해 경청을 그만두면 사랑을 그만두는 것이다.
P. 325 결국 믿음이란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 내는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다.
P. 332 자녀를 키우는 일은 정말 영성 훈련의 명문 학교다. 이는 놀라운 여정이다. 진을 빼놓지만, 시종일관 만족스러운 여정이다.
P. 349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배움은 계속된다. 그러나 내가 아는 것이 하나 있다. 자녀 양육은 신성한 부르심(소명)이다.
게리 토마스, 부모학교
코로나19 이후 사회도 마찬가지지만 교회도 규모에 따른 양극화가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대형교회는 시스템이 갖춰져서 살아남을 것이지만 소형교회는 존립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교회의 ‘공존’을 질문해야 한다. 교회 공존은 가능한가. 코로나 이후로는 아닐 수 있지만, 대형교회는 평소 매주 개척 교회 수치 정도의 인원이 등록한다. 개척 교회는 성도 한 명이 없어 가슴 아파한다. 코로나19 이후 존립이 위태롭다. 이 모습을 바르게 잡을 수 없을까? 대형교회가 작은 교회를 도울 수 없을까? 이민교회에 특별히 더 나타나는 개척 교회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건물을 빌려 쓰던 교회가 코로나 이후 렌트비 감당이 되지 않아 교회 건물을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 담임목사는 부교역자를 떠나보내고 자신의 가정에서 예배 영상을 찍어 온라인으로 예배드린다. 오프라인 교회가 사라졌으니 교회가 사라진 것인가? 미국에서 교회 출석하다가 한국으로 간 성도들이 온라인으로 미국에서 출석하던 교회 예배를 드린다면 그 성도들은 본 교회 성도인가 아닌가? 전자의 경우, 여전히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니 교회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후자의 경우 비록 몸은 떨어져 있어도 교인으로 갖추어야 할 기본 내규를 지킨다면 교인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건물만이 교회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김재흥, 평등과 영원의 복음, 로마서